- 1
- Eugene
- 조회 수 130
새 천을 사모하는 이들이 있고
새 옷을 입은 것으로 만족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새 옷과 현실의 괴리는
우리를 새 포도주로 인도합니다.
새 포도주를 마실 때에야
두 벌의 옷을 가질 수 있기에
그러나 그 새 포도주를
개인이 담기에는 너무 부족해
새 포도주를 누린 만큼
새 가죽 부대의 필요를 보게 됩니다.
새 포도주를 새 가죽 부대에 담을 때
혼인 잔치는 준비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이야기의 끝은 아니니
새 포도주를 누리지 않은 채
새 가죽 부대 안에서 새 포도주를 누리려는
사람들이 있게 됩니다.
그들은 새 가죽 부대를 주장하는 것이
곧 새 포도주를 마시는 것으로 여기게 됩니다.
그러므로 여기에 마지막 요청이 있게 됩니다.
그 새 가죽 부대를 버릴 필요는 없지만
점점 낡아지고 있는 그 가죽 부대 안에
누군가 새 포도주를 넣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새 포도주를 넣을수록
이 가죽 부대는 새로워질 것입니다.
모두가 잔치를 누리기에 충분한..
몸의 이상 가운데 '생명'을 추구할 수 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