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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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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속에서 진리를 갈구하고 받아들이거나 전파하는 것이 혼에 속한 가장 큰 표시이다. 가장 영적인 체험과 가장 높고 깊은 진리가 생각을 훈련하는데 사용될 수 있다. 절대로 생명에 영향을 주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생각을 살찌게 하는 것이 최종적인 목적이다. 믿는이들이 혼에 속하고 생각의 지배를 받을 때 그들의 생각엔 영성의 오락이 가득하다. 그들은 하나님의 계시보다 자기의 사상을 더욱 의지한다. 그들이 생각으로 궁리하는 것이 기도와 하나님을 앙망하는 것보다 더욱 많다. 가장 믿는이들이 영적인 체험으로 착각하기 쉬운 것은 감정이다. 혼적이되 감정에 치우친 믿는이는 그의 생명 안에서 언제나 느낌을 추구한다. 그들은 마음 속으로 또는 신체의 기관으로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려 하고, 「사랑의 불길」이 타는 것을 느끼게 하며, 즐거움을 느끼려 하고 영성의 높은 상태를 느끼려 하고 일에 순조로움을 느끼려 한다. 실지로 영적인 믿는이에게는 때때로 이러한 느낌이 있을 때가 있다. 그러나 그들은 이러한 느낌을 의지하여 전진하거나 즐거워하지 않는다. 감정에 속한 믿는이는 이러한 느낌이 있을 때에만 주님을 섬길 수 있다. 그에게 이러한 느낌이 없을 때에는 한 걸음도 전진하지 못한다...
혼 안에서 살 때 믿는이는 늘 생각 속의 사상과 상상과 계획과 이상(異像)에 따라 행한다. 또 그는 자기의 원하는 바와 자기 느낌에 따라 행한다. 이러한 결과로 그에게 감각상의 체험이 있을 때에는 기뻐하고 그러한 체험이 없을 때에는 억압을 당하여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듯하다. 그러므로 그는 영의 생명 안에 살지 않고 감각 안에 살며 감정의 변화에 따라 생활한다. 이로써 믿는이는 더이상 그의 중심 곧 그의 영 안에서 행하지 않고 외적인 혼과 몸의 감각 안에서 사는 데에 떨어진다. 이러한 영의 지각은 몸과 혼에 의해 정복되어 믿는이를 영의 지각에 대해 무감각하게 만든다. 그 결과로 믿는이는 혼이나 몸 안의 지각을 가질 뿐 하나님에 대한 참된 지각을 잃게 된다. 이럴 때 영은 하나님과의 동역을 잃게 되고 영적 생명의 성장은 억압을 당하게 되며 영은 믿는이들로 하여금 능력을 얻고 인도함을 받아 가서 싸우고 경배하도록 역사할 수 없다. 만일 그 사람 속에서 영이 온전하고 자유로이 권세를 잡을 수 없고, 그가 영의 능력으로 세상에 살지 않으며 영을 모든 것의 주로 삼지 않는다면, 그는 장성한 사람이 될 수 없다. 본래 영의 지각은 가장 섬세한 것으로서 사람이 영을 좇기를 배우고 살피지 않으면 알 수 없을진대 하물며 혼 생명의 거칠고 강한 감각이 방해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혼의 감정은 영의 지각을 혼란스럽게 할 뿐더러 또한 영의 지각을 억압한다.
워치만 니
[영에 속한 사람, p.206-207, 212-213, 한국복음서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