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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은 부활의 주님이시다. 그리스도는 이미 부활하셨고, 그분은 이미 모든 어려움과 장애를 이기셨다. 어려움과 장애는 모두 지난 날에 속하고 그분은 이제 다른 날 안에 사신다. 그러므로 현재의 이러한 어려움과 장애는 모두 그분의 발 아래에 있을 뿐이다. 그분이 뛰어넘으시기만 하면 어려움과 장애는 모두 사라진다.
그러므로 이 단락은 주님이 그분의 부활 능력으로 나타나 활력 있게 그녀에게 말씀하시는 것이다. 1장에서의 그녀의 체험에는 결코 이러한 것들이 없었다. 그녀 자신도 뛰어 보았지만, 그녀는 아직 「산을 뛰며 언덕을 넘는」 것이 무슨 뜻인지를 알지 못한다. 주님은 이제 그녀가 이 공과를 배우기 원하시므로, 그녀를 향하여 소리를 발하며 부르시는 것이다. 그녀가 주님과 매우 친밀하기 때문에, 주님의 음성을 알기란 매우 쉬운 것이다.
여기에서 분명히 드러나는 결점은 그녀와 주님 사이에 벽이 있다는 것인데, 벽이 그녀를 속에 가두고 주님은 밖에다 두는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결코 이 벽의 해로움을 느끼지 못한다. 그러므로 그녀는 나의 벽이라고 말하지 않고 우리의 벽이라고 말하는데, 그 뜻인즉 나와 나의 주님의 벽이라는 것이다. 그녀는 원래 이 벽이 그 속에 그녀와 그녀의 주님을 가두고 세상과 기타의 모든 것은 밖에 두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많은 때에 그녀는 주님과 안에서 교통하며, 안식도 있고, 그 안에서 기쁘고 통쾌한 나날을 보낸다. 그녀는 항상 자기의 마음 안에서 그녀의 주님을 찾을 수 있다. 그녀는 환경을 고려하지 않고, 사람을 개의치 않으며, 모든 형제 자매를 개의치 않으며, 모든 일상적인 본분을 개의치 않고, 많은 시련을 개의치 않을 수 있다. 그녀는 안으로 들어가 주님과 함께 있으면서 세상을 잊어버릴 수 있다. 그녀는 단지 교통의 달콤함을 알 뿐, 결코 일의 능력과 전쟁의 흉악함을 알지 못한다. 산 위에 세 개의 초막은 있는데, 산 아래의 한 무리의 죄인은 잊어버렸다. 주님은 산에서 그녀와 함께 계시고, 귀신은 산 아래서 죄인과 함께한다. 그녀는 여전히 주님과 함께 있으나, 그녀의 「초막」 안의 생활은 죄인으로 하여금 귀신의 능력에서 벗어나게 하지 못한다. 바꾸어 말하면, 그녀는 계속해서 주님의 임재의 기쁨만 찾는다. 이것이 그녀의 벽이며, 이것이 믿는이가 그리스도께서 마음에 내주하심을 깨달은 이후에 갖는 하나의 위험이다.
워치만 니
[워치만 니 전집 2집 23권 - 노래 중의 노래, p.53-54, 한국복음서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