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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절에서 주님은 이미 함께 가자고 그녀를 부르셨으므로, 과거의 체험과 현재의 사실을 모두 그녀 앞에 진열해 놓으실 것이다.
「겨울」은 메마르고, 춥고, 성장하지 않고, 시련을 당하는 시기이다. 바꾸어 말하면, 앞 단락의 체험에서 주님은 이미 그녀를 인도해 오셨다. 사망과 같은 각종 시련과 추위와 메마름에서 주님은 아주 분명하게 그녀를 인도해 오셨다. 주님은 아주 분명한 임재로 그녀로 하여금 부지불식 간에 겨울을 지나게 하셨다.
이 「비」는 결코 봄비가 아닌 겨울비로, 당신을 춥게도 할 수 있고 눈으로 변할 수도 있다. 겨울비는 사람을 가두어두며, 사람으로 일하지 못하게 한다. 그러므로 여기의 비는 틀림없이 시련을 가리키는 것이다(창 6-7장, 마 7:25-27). 주님은 우리에게, 과거의 너희의 그 많은 시련이 느낌에서의 임재로 인해 이미 지나갔다고 말씀하신다. 겨울비에는 두 방면이 있는데, (1) 현재의 십자가가 이미 지나갔음을 말하고(시련이 이미 지나간 것을 가리킴), (2) 주님의 십자가가 이미 지나갔음을 말한다(주님의 십자가의 역사는 이미 이루어졌으므로 계속 죽음의 방면을 주의할 필요가 없음을 가리킨다).
12절과 13절에서 주님이 이같이 말씀하시는 뜻은, 이제 너는 마땅히 부활의 위치에 서야 한다는 것이다. 「봄」은 죽고 부활한 것으로, 너는 이제 부활의 경지(境地)를 알아야 한다는 뜻이다. 이 두 구절은 모두 부활의 광경인데, 이는 이것이 겨울 이후의 봄이기 때문이다. 만일 겨울을 말하지 않고 봄을 말했다면, 단지 「살아 있음」일 뿐이겠지만, 먼저 겨울을 말하고 나중에 봄을 말했기 때문에 「부활」인 것이다. 주님은 그녀에게, 그분의 부활 안에 이렇게 많은 것이 있으니 다시는 겨울의 죽음과 차가움과 메마름과 건조함을 주의하지 말라고 알려 주신다...
주님은 부활의 풍성에 근거하여 그녀가 나갈 것을 권하신다. 그녀는 단지 느낌에서 즐거움만 고려해서는 안 되고, 이제는 부활의 능력을 체험해야 한다. 지금은 소극적일 때가 아니라 적극적이어야 할 때요 나가야 할 때로서, 세상에서 그분의 생명을 나타내야 한다.
워치만 니
[워치만 니 전집 2집 23권 - 노래 중의 노래, p.56-57, 한국복음서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