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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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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절의 이러한 부르심은 많은 믿는이에게 예기치 못한 일이다. 그들은 결코 십자가에 수욕의 방면이 있음을 알지 못한다. 그들은 결코 십자가에 대한 체험이 없는 사람들이 아니다. 십자가에 대한 그들의 체험은 심지어 아주 깊다고도 할 수 있다. 비록 그들이 십자가를 위하여 약간 고난도 받고 핍박도 당하고 사람에게서 수욕도 받아 보았겠지만 그들은 줄곧 십자가는 그들의 영광이요, 그들의 생명이요, 그들의 능력이라고 느꼈을 것이다. 그들은 십자가가 참으로 그들에게 수욕이 된다는 것을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을 것이다. 십자가는 그들로 세상의 명성을 잃게 할 뿐 아니라 영적인 명예도 잃게 하며, 그들은 뜻밖에도 사람에게서와 하나님에게서 조차도 싫어 버린 바 된 자로 보여진다. 하나님은 그들로 시련을 거치게 하시고, 친근한 사람의 위로와 동정을 얻지 못하게 하시며, 오히려 그들이 하나님에 의해 치심을 당하고 학대받는다고 생각하게 하신다. 세상에 속한 수욕은 아마도 그들이 이전에 받아보았겠지만, 영에 속한 수욕은 그들에게 완전히 새로운 체험이다. 이러한 오해로 생긴 수욕은 그들과 하나님 사이의 관계에 연관된 것이기 때문에, 그들로 깊은 느낌을 갖게 할 수 있다. 여기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그들은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채운다』(골 1:24)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알 수 있게 된다.
이 부르심은 얼마나 새롭고 놀라운가? 또 얼마나 잔혹한가? 그러므로 이 부르심을 듣는 사람은 위축된다. 그녀는 아마도 하나님의 영광이 어떤 것보다도 중요한 것이 아닌가고 생각하며 의문을 제기할지 모른다. 『나는 지난 날에 어떻게 나의 생활과 일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는가를 항상 생각했다. 이제 만일 하나님이 참으로 나로 하여금 오해를 받게 하시면, 사람 사이에 있는 나의 아름다운 이름을 빼앗아 가시고, 사람에게서 수치를 당하게 하시어 나와 하나님 사이에 문제가 생겼다고 생각하게 한다면, 하나님이 어떻게 영광을 얻으실 수 있는가?』 아마도 그녀는 자신을 위하여 그리 많이 생각하지 않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더 많이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여기서 그녀가 생각한 것은 그녀 자신이 하나님을 어떻게 영화롭게 하는가였음을 보지 못한다. 그녀는 반드시 하나님의 박탈하심에 이르러야 하는데, 즉 자신의 선한 마음을 의지하여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려는 의도가 모두 제해질 정도로 하나님의 박탈하심을 받아야 한다. 십자가가 반드시 깊은 단계까지 역사해야 하는데, 즉 당신이 단 마음으로 기꺼이 하나님이 당신에게 주신 분깃을 받아 들이고 하나님으로 자신의 영광을 돌보시게 하는 단계에까지 십자가로 더 깊이 역사하게 해야 한다.
워치만 니
[워치만 니 전집 2집 23권 - 노래 중의 노래, p.108-109, 한국복음서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