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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와 주님이 포도원에 내려온 것은 『포도가 움이 돋아 꽃이 피었는지 석류 꽃술이 피었는지』를 보기 위해서이다. 그녀는 주님과 함께 생명의 현상에 주의를 기울이려 하며, 함께 그곳에서 주의하는 것은 열매가 있으리라는 소망이다. 이제 그녀는 이미 자신에서 해방되었으므로 모든 믿는이의 일이 다 그녀의 관심사이다. 아주 어린 믿는이에게서 생명의 증거가 조금이라도 나타난다든가 혹은 결실의 소망이 보이면, 그녀는 관심을 가지고 지켜본다. 현재의 문제는 결코 이러한 사람을 누가 인도하는가가 아니며, 또한 그들이 우리 집회에 속한 사람인가의 여부도 아니며, 다만 그들이 주님께 무엇을 드릴 수 있는가이다. 일에서 주님과 함께 하는 이런 종류의 교통은 생명에서 주님과 완전히 연합된 후에 있다.
『거기서 내가 나의 사랑을 네게 주리라』. 「거기서」는 어디인가? 곧 들 안에서, 동네 안에서, 포도원 안에서, 즉 주님의 일 안에서이다. 주님의 일 안에서 「내가 나의 사랑을 네게 주겠다」는 것은 당신의 일 안에서 내가 당신에게 사랑을 나타내겠다는 것인데, 이 얼마나 기묘한가! 과거에는 일이 항상 그녀로 마음이 나뉘게 했다. 돌보아야 할 일이 많으므로 주님의 발 앞에서의 교통을 잃었다. 어린 믿는이들에게 있어서 일은 그녀로 주님에 대한 사랑을 나타내게 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오히려 그녀로 하여금 주님과 거리가 생겼다고 느끼게 하는데, 이것은 다 불완전한 연합의 현상이다. 그러나 여기에 이르러서 그녀의 체험은 이미 완전한 단계에 들어갔으므로, 그녀는 능히 주님과 주님의 일을 연합시키고, 세상 사람과 주님을 연합시키며, 형제와 주님을 연합시킬 수 있다. 여기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그녀는 주님이 일하시는 곳에서 주님을 향하여 그녀의 사랑을 나타낼 수 있다. 이제 그녀는 비로소 그녀의 일을 그녀의 주님을 향한 사랑의 표시로 삼을 수 있다. 이제 그녀는 일을 한 후에 자기가 어떤 일에서 주님의 어떠함을 잃었다고 생각하는 자책을 느끼지 않게 되었다...
이제 그녀가 주의하는 것은 똑같은 열매만이 아니라 각종 열매이다. 그녀가 아직 자신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때에는 그녀가 인정하는 종류의 현상이 아직 어떤 사람에게서 나타나지 않았을 때, 그녀는 아마도 결코 이 사람이 열매 맺었다고 시인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제 그녀는 아름다운 실과는 한 가지만이 아니라 다양하다는 것을 안다. 새 것이 있고 낡은 것도 있다. 그녀는 이제 각양의 사람이 결실하는 열매가 각양이라는 것을 안다. 그녀는 이제 각종의 사람들이 영접하는 주 예수님은 오직 한 분이고, 그들이 얻은 새 창조도 하나이지만, 그들은 오히려 한 종류의 열매를 맺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참으로 빛이 결실케 한 열매는 모든 양선과 공의와 성실이다. 그리고 이러한 모든 수확은 다 주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다. 일의 결과는 본래 자기의 자랑을 위한 것이 아니다. 일 안에서 우리가 주님과 동역했지만, 영광은 오히려 주님의 것이다.
워치만 니
[워치만 니 전집 2집 23권 - 노래 중의 노래, p.140-142, 한국복음서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