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성한 말씀을 누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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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이상

 

주님은 1920년 이래로 주로 워치만 니 형제님을 통하여 참으로 그분의 말씀을 열어 놓으셨다. 주님이 그분의 거룩한 말씀을 통하여 우리에게 보여 주신 것에 따르면, 나는 신약 시대에 주님의 간증이 만유를 포함한 분이신 그리스도라고 말하고 싶다. 그분은 삼일 하나님의 체현이실(골 2:9) 뿐 아니라 옛 창조의 머리인 사람이시기도 하다(엡 1:22, 골 1:15下). 우리의 구원을 위해 구속을 성취한 그분은 구속주이시며(요 1:29, 벧전 1:18-19) 또한 구주이시다(눅 2:11, 요 4:42).

 

그분은 육신 안에서의 죽으심과 그 영 안에서의 부활을 통하여 생명 주는 영이 되셨다(고전 15:45下). 그분은 부활 안에서 하나님의 새 창조의 머리가 되셨다. 그분은 하나님의 옛 창조의 머리이셨다. 부활한 그리스도이신 그분은 교회를 산출하시고 그분의 몸인 교회의 머리가 되셨다(골 1:18). 그분은 지금 보좌 위에 계시며, 그리스도와 만유의 주로서(행 2:36, 10:36) 관 쓰시고 보좌에 앉히신 바 되었다.

 

그분은 교회에게는 신랑으로서(요 3:29, 계 19:7), 세상에 대해서는 심판자로서(딤후 4:1),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인 이스라엘에게는 그 구주로서 돌아 오신다(롬 11:26). 그 때에 그분은 천년 왕국에서 온 우주의 왕이 되실 것이다(계 2O:6, 19:16). 이것으로 우리는 그리스도가 만유를 포함한 분이심을 볼 수 있다.

 

하나님의 의도는 이 그리스도를 그분이 택하신 사람들 안으로 역사하여 (갈 1:16上, 2:20上, 4:19), 그들로 그분의 새 창조가 되게 하고(고후 5:17, 갈 6:15), 그들에게 신성한 아들의 명분을 주고(엡 1:5, 갈 3:26), 그들로 거듭나고(요 3:6) 변화된(고후 3:18)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들이 되게 하는 것이다(고전 12:27). 이 몸은 이 시대와 이 땅에서 조직도 없고 옛 창조의 본성도 없는 지방 교회들(계 1:11)로 표현되는 교회이다. 그 조성은 부활하신 그리스도이다(골 3:11, 고전 12:12). 이것이 지난 수년 동안 주님이 우리에게 보여 주신 것이다.


하나의 큰 모순

 

주님은 그분의 긍휼로 우리의 눈을 열어서 그러한 이상을 보게 하셨다. 기독교계를 우리가 본 주님의 이상과 비교할 때, 우리는 하나의 큰 모순, 즉 하나의 큰 차이를 보았다. 우리는 세 범주의 것들을 보았는데, 그것들은 전혀 성경적이지 않았으며, 주님이 그분의 거룩한 말씀을 통하여 우리에게 보여 주셨던 이상에 따른 것이 아니었다.


분열

 

우리가 본 첫번째 모순은 분열의 문제였다. 주님이 그분의 거룩한 말씀으로부터 이 이상 안에서 우리에게 보여 주셨던 것은, 하나의 유일한 사람들이 한 분 유일한 하나님에 의해 택함받고 구원받고 거듭나서 하나님의 유일한 교회인 하나의 유일한 그리스도의 몸이 되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기독교계를 볼 때 우리는 인근의 모든 도시에서 분열에 이어 분열이 계속되는 것을 보았다. 때때로 우리는 심지어 같은 거리들에서도 분열을 보았다. 하나의 특정한 거리가 소위 교회 시장이 되었다. 이것은 우리가 보았던 것과 실제의 상황을 비교할 때 우리에게 충격을 주었다. 우리는 그분의 거룩한 성경을 따라 순수하게 주님 자신을 추구하는 젊은이들이었기 때문에 이것에 충격을 받았다.


조직

 

이것에 근거하여 우리는 또한 우리가 성경에서 발견할 수 없었던 또 다른 문제-조직-를 기독교계 안에서 보았다. 성경에는 사람의 조직이 없다. 하나님의 택함받은 사람들인 우리 모두는 그분의 신성한 아들의 명분을 얻도록 하나님께로부터 거듭났다. 그 후에 우리는 그리스도의 유기적인 몸이 된다. 그 몸은 유기적이며, 조직이 아니고 전적으로 유기체이다. 유기적인 그 몸이 어떻게 조직화된 어떤 것이 될 수 있겠는가? 이것을 우리가 본 계시와 비교해 볼 때, 우리는 괴로웠다. 우리가 받아들인 이상에 따른다면, 기독교의 조직은 우리가 확실하게 동의할 수 없던 두번째 범주의 것이었다.


전통

 

우리가 성경에서 본 이상과 부합되지 않는 세번째 항목은 전통의 문제였다. 주님의 긍휼로 주님은 우리가 학생이었을 때 우리를 사로잡으셨다. 우리는 주님을 사랑하였고 성경을 사랑하였다. 우리가 성경을 매우 사랑하였기 때문에 주님은 수년 내에 우리에게 분명한 이상을 주셨다. 그 후에 우리가 기독교를 돌아보았을 때, 우리는 분열과 조직과 전통을 보았다.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 관해 조금 들었고, 초보적인 복음에 대해 조금 들었다. 우리는 어떤 진리도 거의 듣지 못하고 단지 많은 전통을 보았을 뿐이다. 이것이 주님이 우리를 일으키시기 위해 어떤 일을 행하신 이유로서, 우리로 분열들에서 떠나 조직과 비성경적인 전통들이 없이 어떤 일을 시작하게 하시려는 것이었다.


되돌아온 남은 자들로서 하나님의 간증을 짊어지기를 실행함

 

그래서 우리는 성경에 따라 아주 순수하고 매우 용감하게 모이기 시작했다. 이것이 출발이었다. 우리는 많이 알지는 못했지만, 순수한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우리가 따를 수 없는 분열과 조직과 전통이 기독교 안에 있는 것을 보았다. 우리는 주님을 사랑했고 그분의 말씀을 사랑했다. 우리는 우리의 생명을 그분께 드리기를 원했다. 우리의 첫번째 사랑은 주님과 그분의 진리였다. 이것이 우리의 시작이었다. 그 후 주님은 우리가 몇몇 최고의 선교사들을 접촉하도록 이끄셨다. 우리는 그들을 통하여 2세기부터 그 시기까지의 고전적인 책들과 교회사와 전기(傳記)들을 포함한 기독교 서적들을 섭렵하게 되었다. 이 모든 서적들은 우리에게 더 전진된 확증을 주었다.

 

바로 그 시작부터 우리는 분열과 조직과 전통에도 불구하고 이 분열 안에 아주 많은 참된 그리스도인들이 흩어져 있다는 것을 알았다. 우리는 주의 몸이 이런 모든 참된 믿는이들을 포함하고 있다는 것을 보았다. 심지어 천주교 안에서도 우리는 많은 참된 믿는이들을 보았으며, 우리는 그들 또한 교회의 지체들로 그리고 우리의 귀중한 형제 자매들로 여겼다.

 

한편으로 우리는 우리 스스로 모이기 시작했으며, 우리는 천주교와 개신교 종파들 안에 흩어져 있는 귀중하고 참된 믿는이들이 우리의 형제들이라는 것을 충분히 깨달았다. 우리는 그들을 인정했고 그들을 사랑했다. 우리는 하나님의 교회인 주의 몸이 우리뿐만 아니라 모든 참된 믿는이들을 포함하며, 우리는 작은 한 부분에 속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다른 한편으로 우리는 또한 그들이 합당한 교회 생활 안에 남아 있지 않다는 것도 알았다. 초기에 우리는 참된 교회의 입장을 보지 못했지만, 그러나 우리는 많은 우리의 귀한 형제들이 여전히 합당한 교회 생활 안에 머물러 있지 않은 것을 알았다. 그들은 모든 전통에 따른 그들의 조직 안에 흩어져 분열되어 있었다.

 

이 때에 주님은 우리에게 구약에서 이스라엘 자손들이 아람과 애굽과 바벨론에 흩어져 있는 예표를 보여 주셨다. 하나님이 오셔서 그들에게 그분이 택하신 땅으로 돌아오라고 부르셨을 때 극소수의 사람들이 반응하였다. 대다수가 그들의 포로 됨 안에 머물렀다. 우리가 구약으로부터 깨달은 것은, 파괴된 성전을 건축하기 위해 되돌아온 이런 사람들이 하나님의 백성들의 남은 자들이었다는 것이다. 이스라엘 자손들의 대다수가 이방 땅에 머물렀지만, 그러나 오직 적은 수의 사람들, 즉 남은 자들만이 하나님이 택하신 땅으로 돌아왔다.

 

우리는 이 예표를 이해하였으며 우리 자신을 그 예표의 성취로 여겼다. 하나님의 백성들의 남은 자들로서 우리는 그분의 본래의 의도로 돌아왔지만, 아주 많은 참된 믿는이들이 흩어져 있었으며 여전히 포로 됨 안에 머물러 있다. 우리는 우리의 형제들을 사랑하며 그들이 이 길로 오기를 갈망한다. 마찬가지로 구약에서도 되돌아온 남은 자들이 여전히 포로 됨 안에 머문 자들을 사랑했다. 그들은 포로 됨 안에 있는 많은 사람들이 돌아와서 그들과 함께 하나님의 간증을 위하기를 기대했다. 되돌아온 이 사람들은 즉시 성전을 건축하기 시작했다. 이 성전의 크기는 원래의 것만큼 크지 않았지만, 원칙상 그것은 동일하였으며 하나님의 간증으로 여겨졌다. 하나님은 그들이 행한 것을 존중하셨는데, 그 이유는 그분이 그들과 함께 계셨고 그분의 영광이 거기에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이상과 이해가 우리의 믿음을 강화시켰다. 우리는 비록 우리가 매우 적은 무리이지만 우리가 회복된 하나님의 간증이라고 믿었다. 이 간증은 하나님의 영광이 충만한 하나님의 거처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이 우리와 함께 있다는 확신이 있었다. 나는 우리가 그 당시에도 우리 형제들이 우리와 함께 모이지 않는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태도에 있어서 분명했다는 것을 볼 수 있기 바란다. 우리는 그들 모두가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들이라는 것을 알았다. 우리는 그들을 사랑했지만, 그러나 그들은 흩어져 있었고 여전히 그들의 포로 됨 안에 머물러 있었다. 우리는 그들을 사랑했을 뿐 아니라 그들이 와서 우리와 연합하여 하나님의 간증을 짊어지게 되기를 기대했다.

 

이것이 다른 그리스도인들을 향한 우리의 태도의 두번째 중점이다. 첫번째 중점은, 우리가 하나님의 이상을 보았고 하나님의 이상에 의해 오늘날 기독교계의 실지적인 상황을 깨달았다는 것이다. 이 이상에 근거하여 우리는 되돌아온 남은 자들로서 하나님의 간증을 짊어지는 실행을 하였다.

 

의심할 바 없이 하나님은 그분의 진리들을 우리에게 주셨다. 우리는 어떤 구절을 해설할 때 직접 헬라어 원문으로 돌아가기를 원했다. 우리는 헬라어를 공부하지 않았지만,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연구에 도움이 될 만한 사전들과 성경 어휘 사전과 성구사전을 가지고 있었다. 니 형제님은 주님이 이 시대에 우리에게 진리들을 주셨으므로 우리는 반드시 나가서 이 진리를 교파에 전해야 한다고 말하는 데 앞장섰다. 나는 아마 이 일을 가장 많이 한 사람이었을 것이다. 나는 보내심을 받고 중국 북부 지방의 각 도시를 돌아다녔다. 나는 가는 곳마다 따뜻한 환영을 받았는데, 그 이유는 내가 제시한 진리가 대부분 그들이 이전에 결코 들어 보지 못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내가 본 결과는 고무적이지 않았다. 이것은 마치 깊은 우물에서 물을 길어 그것을 땅에 쏟아붓는 것 같았다. 땅은 아마 하루 동안은 젖어 있게 될 것이다. 그랬다가 그 다음 날 모든 물은 길어 올려진 그 동일한 곳으로 되돌아갔다.

 

중일 전쟁으로 우리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흩어졌을 때, 나는 그 사역이 주의 회복에 그렇게 유익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므로 나는 나의 관념을 바꾸었다. 나는 외지로 나가지 않고 1938년부터 1943년까지 대략 오 년 동안 나의 고향인 치푸에 머물렀다. 이로 인하여 치푸에서 부흥이 있었다. 이 모든 체험들을 통하여 우리는 많은 것을 배웠다. 전쟁 이후의 정치적인 상황으로 인해 나는 북부에 머물 수 없었다. 그래서 형제들이 나에게 남부로 가서 남경과 상해에서 그들과 함께 머물기를 청했다. 상해에서 나는 니 형제님을 다시 만나 실제적인 교회 생활에 관한 것들을 포함하여 내가 체험하고 보았던 모든 것을 그에게 제시했다. 그는 내가 그와 함께 교통한 모든 것들을 절대적으로 확증해 주었다.

 

치푸와 상해에서의 그러한 성공적인 교회 생활의 실행으로 인해 나는 완전히 점유되었다. 나는 1946년 말부터 1949년 초까지 이 년 반이 조금 못 되는 기간 동안 상해에 있었다. 나는 주로 상해에 머물렀고 남경에서 부분적으로 나의 시간을 보냈다. 나는 너무 점유되어 있었기 때문에 다른 어떤 일을 행할 시간을 갖지 못했다. 나는 우리와 함께 모이지 않는 다른 그리스도인들과 더이상 어떤 접촉을 가질 시간이 없었다. 나는 복음을 전파하는 것과 성경을 가르치는 것과 성도들을 세우는 것과 교회를 건축하는 것에 완전히 점유되어 있었다. 그 이 년 반 동안에 나는 비록 내가 장로는 아니었지만 절대적으로 장로 직분 안에 있었다. 비록 내가 손수 모든 일을 행하지는 않았지만, 나는 교회 사무도 돌보았다. 나는 완전히 점유되었다.

 

그 후에 정치적인 상황이 바뀌어서 나는 중국 본토를 떠나 대만으로 가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가 대만에 도착했을 때 우리는 사역을 시작했는데, 그것이 주님에 의해 매우 많은 축복을 받음으로 인해 나는 다시 한번 더욱 많이 점유되었다. 나는 또한 대만과 필리핀 사이를 자주 왕래했다. 나는 나의 시간의 약 삼분의 이를 대만에서 그리고 그 나머지는 필리핀에서 보냈다. 1950년부터 나는 중국어 잡지 「말씀의 사역(話語職事)」을 발간하기 시작했다. 이 잡지는 현재까지 계속 발간되어 왔다. 초기에 나는 이 잡지에 실어야 할 글들을 작성하거나 메시지들을 고쳐 썼다. 나는 또한 형제들로부터 도움을 받아 교회사에 관한 글들과 얼마간의 복음 메시지들을 썼다. 이것은 내가 완전히 점유되어 있었다는 것을 다시 한번 말해 준다.

 

이것은 내가 밖에 나가서 그리스도인들을 접촉할 의도가 없었다는 말이 아니다. 단지 나에게 시간이 없었던 것이다. 한번은 대북에서 어떤 부인들의 기도집회가 있었다. 그 부인들 대부분이 정부 고위 관리들의 아내였다. 이 무리의 인도자는 대통령의 영부인이었다. 나는 두 차례 초대되어 이 무리에게 말씀을 전하였다. 기도 중에 그들은 간절하게 주님께 부르짖었다. 그들은 그들의 죄들을 자백했고, 주님의 긍휼 구했고, 대만 땅을 위해 기도하였다. 그들의 기도 후에 나는 그들에게 말씀을 전하였다. 나는 매우 바빴기 때문에 우리와 함께 모이지 않는 어떤 그리스도인 무리에게 말씀을 전하러 간 것이 몇 번 안되는데, 이것이 그 중 한 번이었다. 그렇지만 이것 역시 우리가 우리 자신을 다른 그리스도인들과 단절하지 않았으며 또한 우리가 그들을 단절시키지 않았다는 것을 강하게 말해 준다.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물을지 모른다. 『당신은 왜 그들과 하나가 되려고 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사실상 우리는 실제로 그리스도 안에서 그들과 하나이다. 분열과 조직과 전통 때문에 우리는 실제적으로 그들과 하나 될 길을 얻지 못하고 있다. 또한 우리는 구약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의 남은 자들이 하나님의 간증을 짊어지는 것에 관한 예표의 이상을 보았기 때문에, 여전히 그곳에서 포로 되어 있는 우리의 귀한 형제들과 연합하기 위해 돌아가서 포로 될 수는 없는 것이다. 우리가 행할 수 있는 것 그리고 우리가 기대하는 것은, 많은 주의 자녀들이 그분의 말씀을 취하고 포로 된 데서 돌아와서 우리와 연합하는 것이다. 그럴 때 우리는 그들과 함께 기뻐할 것이다. 이것이 우리의 입장이고, 이것이 우리의 상황이며, 이것이 우리의 태도이다.

 

우리는 수없이 많은 참된 믿는이들이 모든 종파들 가운데 흩어져 있다는 것을 부인하지 않는다. 그리고 우리는 그들을 사랑하며, 만일 그들이 문을 열려 한다면, 우리가 주님으로부터 받은 모든 진리들을 그들과 함께 나누고 싶어한다. 내가 1937년에 중국 북부를 여행하고 있었을 때 모든 종파들이 나에게 문을 열었다. 중국 내지 선교회는 특별히 나에게 문을 열었다. 나는 앤드류 머리(Andrew Hurray)의 책 「지성소(The Holy of Holies)」를 기초로 하여 그들과 처음으로 히브리서 수업을 가졌다. 나는 또한 장로교도들과 남침례교도들과 감리교도들 가운데서도 환영을 받았다.

 

그들은 모두 나에게 열려 있었다. 심지어 오늘날에도 나는 교회들을 위한 사역으로 크게 점유되어 있다. 그렇지만 만일 종파들이 나에게 문을 연다면 나는 얼마간의 시간을 할애하여 그들에게 가서 주님이 우리에게 계시하신 진리들을 그들과 함께 나눌 것이다. 우리는 분파가 아니며, 마음이 좁은 사람들도 아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그들은 우리에게 마음을 열려 하지 않는다.

 

우리는 확실히 모든 참된 믿는이들이 주 안에서 우리의 형제들과 자매들임을 인정한다. 또한 우리는 우리만이 오직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들인 것은 아니라는 것을 시인한다. 우리는 단지 작은 한 부분에 불과하며, 그것은 마치 구약에서 되돌아온 포로들이 하나님의 모든 택하신 자녀들 중에 적은 수의 남은 자들에 불과한 것과 같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모든 귀한 그리스도인들에게 열려 있다. 만일 시간이 허락된다면 그리고 그들이 우리에게 열려 있다면, 나는 앞장서서 그들에게 가서 그들과 함께 진리를 나눌 것이다. 우리는 참으로 주님의 자녀들을 사랑하며 우리가 주님에게서 받고 체험하고 누린 모든 진리들을 그들과 함께 나누기를 좋아한다.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물을 것이다. 『당신은 왜 다른이들을 말씀을 전하도록 당신의 집회에 초청하지 않습니까?』 우리는 과거에 이렇게 하였다. 한 특별한 형제가 수주 간 나의 훈련에 함께하였다. 나는 그에게 매일 말씀을 전하도록 청하였다. 이것은 우리가 다른이들에게 열려 있음을 보여 준다. 또한 대만에서도 나는 런던에 사는 스팍스(T. Austin-Sparks)에게 초청장을 보내었고 그가 두 차례 우리를 방문하였다. 그러나 우리가 그를 더이상 초청하지 않은 이유는, 그가 그의 두번째 방문에서 교회 실행의 하나 됨의 유일한 입장인 우리의 사역의 입장을 헐려 하였기 때문이다.

 

우리의 태도는 우리가 모든 성도들에게 열려 있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만이 오직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들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는 다만 우리를 원래의 하나 됨의 유일한 입장에 돌아와 하나님의 남은 자들로서 여기에 서 있는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들로 생각할 따름이다. 다른 그리스도인들과 우리 사이의 차이는, 그들은 여전히 포로 됨 안에 머물러 있지만 우리는 합당하고 유일한 하나 됨의 입장에 돌아와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모든 믿는이들에게 열려 있지만, 그러나 우리는 그들이 머물고 있는 포로 됨의 위치를 취하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가 그 위치에서 그들과 연합할 수 없는 이유는, 그것이 분열과 조직과 전통이 가득한 포로 됨의 위치이기 때문이다.


복음을 전파하고, 진리를 가르치고, 생명을 사역함

 

최근 이십 년 동안에 주님은 그분의 회복을 미국에서 견고케 하셨다. 주님은 특별히 신약을 한 권 한 권 우리에게 열어 주심으로써 계속하여 우리에게 말씀해 오고 계신다. 우리는 주님이 그분의 거룩한 말씀으로부터 우리에게 보여 주신 이 모든 보배들을 책임을 지고 확산시켜야 한다. 우리는 구원받지 않은 자들에게 복음을 전파하고, 구원받은 자들에게 진리를 가르치며, 추구하는 자들에게 생명을 사역함으로써 이런 보배들을 확산시켜야 한다. 합당하고 유일한 하나 됨의 입장으로 돌아와 있는 모든 성도들이 반드시 이 책임을 짊어져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반드시 모든 성도들을 우리가 주님으로부터 받은 보배로운 진리들로 훈련시켜서 자격과 능력을 갖추게 하여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파하고 진리를 가르치고 생명을 사역하게 함으로써 이런 진리들을 확산시켜야 한다. 우리는 우리 외부의 그리스도인들을 사랑할 뿐 아니라 모든 인간들을 사랑한다. 주님이 세상(사람들)을 사랑하셨기 때문에 우리도 동일하게 그러해야 한다. 우리는 그들에게 복음을 전파함으로써 세상을 사랑한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의 동료 그리스도인들이 우리와 함께하지 않을지라도 그들에게 진리를 가르치고 생명을 사역함으로써 그들을 사랑해야 한다.

 

우리 모두는 주의 회복 안의 그분의 실행에 관하여 분명한 이상을 가져야 한다. 그럴 때 우리가 합당한 태도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결코 분파가 되어서는 안 되며 항상 모든 사람들에게 열려 있어야 한다. 우리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열려 있어야 할 뿐 아니라 모든 불신자들에게도 열려 있어야 한다. 우리는 주님의 긍휼을 입었고 지금은 우리가 그분의 진리와 그분의 생명 안에서 하나님의 간증을 짊어지고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반드시 언제나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열려 있어야 하며 그들에게 진리를 가르치고 생명을 사역함으로써 그들을 공급해야 한다. 당신이 다른 그리스도인들을 만날 때, 그들이 분열 안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이라는 것으로 인해 고심하지 말라. 당신의 태도를 바꾸지 말고 여전히 그들에게 마음을 열라. 그들에게 진리를 제시하고 생명을 사역하라. 그들이 우리와 함께하는 성도들과 다르다고 여기지 말라. 왜냐하면 그들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동료 믿는이들이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결코 그리스도인들을 분열로부터 전향시키려 해서는 안 된다. 다른 한편으로 우리는 반드시 최선을 다해 복음을 전파하고 진리를 가르치고 생명을 사역해야 한다. 다른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교회의 문제에 관하여는 그들 자신이 선택하게 해야 한다. 주의 간증은 많은 인수가 아닌 그분의 생명의 실제에 달려 있다. 비록 우리의 인수가 적지만,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의 생명의 실제를 산다면 이것이 예수의 간증일 것이다. 심지어 우리 가운데 이천 만의 성도가 있다 할지라도 그리스도의 생명의 실제가 없이는 간증이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이것이 내가, 우리가 숫자상의 인수에 그렇게 많은 주의를 기울여서는 안 된다고 느끼는 이유이다.

 

나는 만일 우리가 참으로 그리스도의 생명을 실제로 산다면 인수 증가가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우리는 그러한 간증을 살아내야 한다. 그럴 때 온 지구상의 모든 교회들이 그리스도의 몸과 동일한 신약 교회를 세우기 위해 동일한 간증을 짊어질 것이고 동일한 신약 사역을 수행할 것이다. 그럴 때 사람들은 어디를 가든지 동일한 것을 볼 것이다. 그들은 다른 민족들, 다른 인종들, 다른 계층들, 다른 사회들이 함께 모여서 동일한 간증을 나타내며 항상 동일한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그들은 사람들이 다른 많은 언어들로 동일한 것을 말하며 참된 예수의 간증을 나타내고 있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비록 우리의 인수가 적을지라도 이것은 여전히 하나님 보시기에 유력한 어떤 것이다.

 

나는 이 교통이 우리가 합당한 영을 가지며 우리의 모든 동료 믿는이들을 향하여 올바른 태도를 취하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우리는 반드시 그들을 사랑하며 심지어 모든 사람들을 사랑하기를 배워야 한다. 우리의 실행은 우리가 우리의 이웃들, 우리의 학교 친구들, 우리의 동료들, 우리의 모든 친구들을 사랑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다른 그리스도인들이 우리에게 우리가 교통하는 곳을 물을 때, 우리는 다른 어떤 사람으로 가장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솔직해야 하며 그들에게 우리의 어떠함을 말해야 한다. 그들이 우리에게 계속하여 열려 있을 것인지 혹은 닫힐 것인지는 그들에게 달려 있다. 그들의 반응에 관계 없이 우리는 여전히 그들을 사랑할 것이고 그들과 논쟁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반드시 우리의 책임을 져야 한다. 우리는 반드시 그들에게 복음을 전파하고 진리를 제시하고 생명을 사역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만일 우리가 이 세 가지를 행하려 한다면, 우리 주변의 사람들이 뭔가를 영접할 것이다.

 

우리는 소극적인 이야기에 대해 우리 자신을 방어할 필요가 없다. 바로 처음부터 사람들로 하여금 당신이 위트니스 리의 사역의 도움을 아주 많이 받고 있는 지방 교회 안에 모이고 있다는 것을 알게 하는 것이 더 좋다. 그들이 당신에게 소극적인 어떤 것으로 반응할지라도 그들과 논쟁하지 말라. 당신은 주님이 우리에게 보여 주신 성경적인 진리에 대한 분명한 조망을 그들에게 제시할 필요가 있다.

 

아마 당신은 요한복음 3장 14절을 그들과 함께 나눌 수 있을 것이다. 당신은 그들에게, 주 예수님이 놋뱀의 비유를 그분 자신에게 적용하셔서 그분이 육신 안에 계셨을 때 그분이 「죄 있는 육신의 모양」(롬 8:3)-그 모양은 놋뱀의 형체였음-안에 계셨음을 보여 주셨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들에게 우리의 구속주이신 그리스도가 십자가 위에 계셨을 때 그분이 광야에서의 놋뱀처럼 들리우셨다고 말해 주라. 이 성경적인 진리에 대한 당신의 제시가 그들에게 충격을 줄 것이다. 만일 당신이 이런 식으로 매일 당신의 동료에게 진리를 제시한다면, 그는 정복당하고 빛 비춤을 받게 될 것이다. 결국 그가 당신이 받고 있는 사역에 완전히 마음을 열게 되는 이유는 진리가 거기에 있음을 그가 깨달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내가 이 긴급 훈련을 소집한 주된 요인들 중에 하나이다. 교회들에 대해 책임을 짊어지고 있는 사람들인 우리는 성도들을 하나님의 신약 경륜의 진리들 안으로 완전히 이끌기 위해 우리의 길을 바꾸어야 한다는 것을 깨닫지 않으면 안 된다. 만일 우리가 성도들을 훈련한다면, 그들이 능히 복음을 전파하고 진리를 가르치고 생명을 사역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우리는 사람들이 수년 동안 함께 모여도 여전히 다른이들에게 사역할 만큼 온전케 되지 않는 우리의 낡은 실행 안에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된다. 그들은 집회들과 사역을 감상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여전히 진리를 제시할 수 없을 것이다. 주님께서 모든 교회들 안의 모든 성도들을 완전하게 진리 안으로 이끄시기를 바라며, 주의 회복 안의 모든 성도들이 능숙하게 복음을 전파하고 진리를 가르치고 생명을 사역함으로 하나님의 신약 경륜을 수행하여 그리스도의 몸의 건축에 이르게 하시기를 바란다.


위트니스 리
[장로훈련(Ⅳ) 주의 회복의 실행에 관한 몇가지 중점들, "동료 믿는이들을 향한 우리의 태도", 한국복음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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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 거함의 비밀 청지기 12.03.21.19:04 1072
79 죄와 사망의 법 청지기 12.03.21.19:00 2045
78 교회의 입장 문제 청지기 12.03.08.15:15 970
77 구원의 후사 청지기 12.03.08.14:59 1102
76 선악이 아니라 생명임 청지기 12.03.08.13:32 884
75 계시를 구하는 기도 청지기 12.03.08.13:11 983
74 본질적인 삼일성과 경륜적인 삼일성 청지기 12.03.08.13:01 961
73 한 성경―한 계시 청지기 12.03.08.12:59 1012
72 진리의 기둥과 터 청지기 12.03.08.12:43 1194
71 그리스도인이 주의해야 할 네 가지 일 청지기 12.03.08.12:39 1104
70 새어버림과 떠돌아다님 청지기 12.03.08.12:32 968
69 사랑의 말씀 청지기 12.03.08.12:10 866
68 희년 청지기 12.03.08.11:37 1171
67 너희는 그리스도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느냐? image 청지기 12.03.08.11:24 991
66 주 예수에 대한 두 종류의 인식 청지기 12.03.08.10:22 990
65 배우면서 하라 청지기 12.03.08.10:17 830
64 혼과 영의 구분 청지기 12.03.08.10:13 1696
63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청지기 12.03.08.10:09 1143
62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청지기 12.03.08.10:00 1645
61 인격이신 그리스도를 사랑함 청지기 12.03.08.09:50 927
60 잠언에 대해 가져야 할 건전한 태도 청지기 12.03.08.09:46 898
59 영 안에 생명이신 그리스도 청지기 12.03.08.09:31 921
58 성경 해석의 원리 청지기 12.03.08.09:21 948
57 성령의 통제 청지기 12.03.08.09:16 981
56 십자가를 통한 사역 청지기 12.03.08.09:12 1004
55 만유를 포함한 그리스도 청지기 12.03.08.09:08 863
54 하나님의 건축을 위한 어린양의 일곱 눈 청지기 12.03.08.09:04 866
53 육체의 탄식―휴거되기 전 청지기 12.03.08.09:01 965
52 합일과 분열의 근거 청지기 12.03.08.08:57 938
51 교회들이 세워진 근거 청지기 12.03.08.08:55 862
50 어떻게 내면의 인도를 따르는가 청지기 12.03.07.16:33 810
49 모든 사람을 사랑함 청지기 12.03.07.16:24 931
48 성경 해석을 지배하는 원칙 청지기 12.03.07.16:22 839
47 하나님이 계심에 대한 체험과 토론 청지기 12.03.07.16:06 993
46 네 가지 소극적인 요인들을 주의하라 청지기 12.03.07.15:59 954
45 십자가에 못박힌 생활을 삶 청지기 12.03.07.15:52 1076
44 가정집회들과 이주와 전시간 사역자들 청지기 12.03.07.15:42 944
동료 믿는이들을 향한 우리의 태도 청지기 12.03.07.15:37 758
42 성도들을 진리 안으로 이끎 청지기 12.03.07.15:24 806
41 구속과 하나님의 완전한 구원에 대한 이상 청지기 12.03.07.14:02 1169
40 사역의 하나에 대한 공과 청지기 12.03.06.12:48 776
39 하늘에 속한 이상―몸에 대한 이상 청지기 12.03.06.12:23 1174
38 하늘에 속한 이상―그리스도에 대한 이상 청지기 12.03.06.12:16 1448
37 복음을 위해 바울이 고난받고 은혜를 누림 청지기 12.03.06.11:47 2349
36 권위의 기도 청지기 12.03.06.11:42 1385
35 교회의 기도 사역 청지기 12.03.06.11:36 1345
34 주님의 사역자의 성격―진리의 절대성 청지기 12.03.05.15:43 9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