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성한 말씀을 누려요. ^^

  • 목록
  • 아래로
  • 위로
  • 0
  • 청지기
  • 조회 수 2045

성경 : 로마서 8:1-4

 

이 네 구절의 성경은 성경 전체에서 가장 중요한 곳이라고 말할 수 있다. 어떤 믿는이는 전 성경을 보석을 끼워 박은 반지에 비유하고, 로마서는 그 반지에 있는 보석에 비유하고, 로마서 8장은 그 보석이 발하는 빛으로 비유했다. 이 말이 조금 지나치게 들리겠지만 체험있는 사람은 다 그가 말한 것이 틀리지 않았음을 인정한다.

 

로마서 8장은 가장 분명하면서도 가장 깊고 가장 쉬우면서도 가장 어렵다. 로마서 8장 1절부터 4절은 이 장에서도 가장 특별하다. 로마서 전체에서도 가장 중요한 네 장이 있는데 바로 5장부터 8장까지이다. 5장은 그리스도 안에서 죄 사함 받은 것을 말하고, 6장은 그리스도 안에서 연합한 것을 말한다. 7장은 육체가 하나님의 율법을 준행할 수 없음을 말하고, 8장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율법의 의를 이룬 것을 말한다.

 

로마서 8장 1절부터 4절은 이 네 장의 뜻을 포함한다. 1절은 그리스도 안에 정죄함이 없음을 말하고, 2절은 그리스도 안에서의 연합을 말하며, 3절은 육체의 연약함이 할 수 없는 것이 있음을 말하고, 4절은 그리스도 안에서 할 수 있음을 말한다. 그러므로 이 네 구절은 우리가 얻은 구원의 결정(結晶)이다.

 

1절부터 4절까지를 말하기 전에, 나는 여러분에게 한 가지 주의를 환기 시키고자 한다. 로마서 7장은 무엇을 말하는가? 로마서 7장은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고 말한다.

 

형제 자매들이여, 이것이 참인가? 많은 때 우리에게 원함은 있으나 해 내지 못한다. 우리가 알지만 해 내지 못한다. 우리는 세상을 사랑하지 않으려 하고 하나님을 섬기려 하지만 해 내지 못한다.

 

로마서 7장은 네 글자 곧 「할 수 없다」로 요약할 수 있다. 모든 사람들은 그들 위에 모두 「할 수 없다」는 네 글자가 씌여져 있음을 기억하라. 당신이 선을 행하려는 결심의 원함이 없다면, 당신은 여전히 당신의 무능(無能)을 알 수 없다. 당신이 이기려고 할 때, 당신은 할 수 없음을 느끼게 된다.

 

하나님을 섬기는 깊은 일은 그만두고라도 작은 일 곧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기도하는 것이나 삼백 육십 오 일 끊임없이 성경을 읽으려 하는 것도 할 수 없다. 극히 작은 일이지만,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할 수 없음을 느낀다. 하루, 이틀, 많아야 한 주는 할 수 있지만 더 이상은 할 수 없게 된다.

 

당신은 죄가 있으면 제거해야 하나 제거할 수 없음을 분명히 안다. 예를 들어, 성질은 가장 이기기 어려운 것이다. 어떤 믿는이는 성질이 아주 좋지 않지만 동시에 그는 이렇게 하지 않아야 함도 안다. 어느 날 그의 집의 가장 좋은 화병이 일꾼에 의해 깨뜨려졌다. 그는 깨진 것을 보면 또 화를 낼까 두려워 곧 이불을 머리까지 둘러 덮고 잤다. 실제 그의 성질은 이불 안에서나 이불 밖에서나 무엇이 달라졌는가?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성실한 말을 하고 사실에 넘게 말하지 않으려 하지만, 할 수 없다. 한 번 넘어지고, 두 번 넘어지고 나서 다시 넘어지고 싶지 않지만 할 수 없다. 세상을 사랑하고 싶지 않지만 할 수 없다. 완전히 하나님을 위해 살려 하지만 할 수 없다. 비록 하나님을 위해서 일하기 원하지만, 일단 다른 사람이 어떠어떠하다는 것을 생각하기만 하면 또 마음이 움직이는 것을 면할 수 없다.

 

우리의 많은 체험들이 모두 우리의 할 수 없음을 증명한다. 로마서 7장에서 바울이 우리에게 말하는 것은 오직 하나, 「할 수 없다」이다. 그는 절망했으므로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24절)라고 말했다.

 

형제 자매들이여, 오늘 여기에 앉아 있는 사람들 가운데 누가 교만하고 질투하지 않을수 있는가? 누가 세상을 사랑치 않을수 있는가? 누가 선을 행함에 원함은 있지만 할 수 있는가? 한 번 할 수 없고, 두 번 할 수 없고 마지막에는 이김을 구하지 않는가? 내가 이것을 말하는 것이 어찌 여러분에게 율법을 주어 거울처럼 비춰 보는 것뿐이겠는가? 아니다. 여기에 복음이 있다.

 

8장 1절 :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제」, 어제는 지나갔고 방법이 없다. 이제는 그리스도 안에 방법이 있다. 이 얼마나 귀한가!

 

헬라어를 잘 아는 어떤 사람은 믿을 만한 옛 기록에 근거해 「정죄(定罪)」라는 두 글자에 두 가지 용법이 있음을 증명했다. 하나는 법률적인 용법이고 하나는 일반적인 용법이다. 일반적 용법은 곧 통상적인 용법이다. 여기에서 「정죄」의 일반적 용법은 「무능(無能)」, 「방해하다(견제하다)」의 뜻이다.

 

형제 자매들이여, 이렇게 말할 때 우리는 이 성경 구절에서 무한한 안위를 얻는다! 참으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은 율법 방면에서 정죄할 수 없다. 육체 방면에서 다시 무능할 수 없다.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는 어떤 방해가 없다. 바울이 로마서 7장에서 말한, 할 수 없음은 이제 그리스도 안에서 다 할 수 있다.

 

8장 2절 :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여기서 말한 두 가지 법을 주의하기 바란다. 곧 생명의 성령의 법과 죄와 사망의 법이다. 여기에서 왜 「생명의 성령의 법」이 그리스도 안에서 나를 「죄와 사망의 법」에서 벗어나게 했다고 말하고 「생명의 성령」이 그리스도 안에서 나를 「죄와 사망」에서 벗어나게 했다고 말하지 않는가? 「생명의 성령」과 「생명의 성령의 법」은 어떤 차이가 있는가? 「죄와 사망」과 「죄와 사망의 법」은 어떤 차이가 있는가?

 

죄는 곧 안의 능력이다. 죄의 법은 곧 죄의 습관이다. 예를 들어 땅에는 중심인력(引劣)이 있다. 어떤 물건을 떨어뜨리기만 하면 인력에 의해 이 물건은 아래로 떨어진다. 이 인력은 법이 되었다. 그것의 습관은 어떤 것을 만나면 끌어서 내려오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책 한 권을 여기에서 떨어뜨리면, 결과는 땅에 떨어지고 만다. 장소를 바꾸어서 떨어뜨린다 해도 결과는 여전히 땅에 떨어지는 것이다. 이것이 곧 법의 적용이다. 책 한 권을 여기에서 떨어뜨리면 떨어지는데 저기에서 떨어뜨리면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면, 이러한 상황은 법이 아니다. 그러므로 무릇 습관에 있어서 서로 같고 결국에도 서로 같은 것이 바로 법이다.

 

죄가 하나요 죄의 법이 또 하나이다. 우리의 범죄는 우리 안에 죄의 법이 있기 때문이다. 마치 책 한 권을 떨어뜨리면 땅에 떨어지는 것이 땅의 중심에 있는 인력의 법으로 인한 것과 마찬가지이다.

 

형제 자매들이여, 이것을 보았는가? 우리의 범죄가 하나의 법이 된 것은 기회를 잘못 만나서 실수하거나 넘어진 것이 아니다. 범죄는 일종의 습관이요 넘어짐도 일종의 습관이다. 범죄와 넘어짐 모두 법이 된 것이다. 하나의 법은 어떤 곳, 어떤 상황이든지 같은 작용에 대해서 모두 같은 결과가 있다. 만약 우리가 범죄하는 것이 우연에 지나지 않는다면, 그것은 결코 죄의 법이 아니며 우리에게는 방법이 있게 된다.

 

예를 들어 당신이 범죄한 까닭이 환경이 좋지 않고 직업이 좋지 않기 때문이라면, 당신이 환경을 바꿀 때 직업을 바꾸면 범죄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형제 자매들이여, 성경이 우리에게 말하는 것은 우리의 범죄가 우연적인 것이 아니요 죄의 율(律)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당신이 자주 쉽게 화를 낸다 하자. 당신이 상해(上海)에서 쉽게 화를 낸다면 항주(杭州)에 가더라도 쉽게 화를 낸다. 당신이 장사하는 사람으로서 쉽게 화를 낸다면 직업을 바꾸더라도 여전히 쉽게 화를 낼 것이다. 어느 때 어떤 곳에서든지 건드리기만 하면 화가 나온다.

 

형제 자매들이여, 성경에서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은 죄의 법이 깊이 우리를 붙잡고 있다는 것이다. 죄는 이길 방법이 있고 죽음도 이길 방법이 있을지 모르지만 죄와 사망의 법은 이길 수 없다!

 

왜 성경은 「죄와 사망의 법」만을 말하고 「죄의 법」과 「사망의 법」을 말하지 않는가? 왜냐하면 죄와 사망은 실제로 하나의 법이기 때문이다. 죄와 사망의 법은 두 가지의 법이 아니라 한 가지 법이 두 방면으로 나뉘어졌을 따름이다. 이 법을 죄의 방면에서 말한다면, 안에 하나의 습관이 있어 적극적인 방면에서 많은 죄를 범한다는 것을 뜻한다. 이 법의 사망의 방면은 안에 율법의 요구를 준행하는 능력이 부족함을 뜻한다. 그러므로 이것은 소극적인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사망」이 도대체 무슨 뜻인지를 알지 못한다. 사망이란 곧 연약함이 극점에 달하여 조금의 힘도 없으며 생명을 잃은 것이다. 사망이 하나의 법인 것은, 연약하고 무능함이 우리가 항상 가지고 있는 습관이기 때문이다.

 

로마서 7장에서 가장 주의하는 것은 바로 이 두 가지이다. 바울이 말한 바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행치 아니하고」는 사망을 가리켜 말한 것이다. 「원치 아니하는 바 악은 행하는도다」는 죄를 가리켜 말하는 것이다. 우리 안에서 매일매일 느끼는 어려움이 바로 이 죄와 사망의 법이다. 많은 때 우리는 좋아하는 일을 할 능력이 없으며, 우리가 좋아하지 않는 일을 하지 않을 능력이 없다.

 

형제 자매들이여, 우리는 이 죄와 사망의 법이 얼마나 미운가를 본다! 우리는 죄를 미워해야 할 뿐 아니라 또한 죄와 사망의 법을 미워해야 한다. 우리는 이 법에 대하여 결국 방법이 없다. 그러나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양한다. 그분은 근본적인 구원의 방법이 있으시다. 그분의 구원의 방법은 당신의 자질구레한 죄들을 처리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방법은 당신의 근본적인 법을 해결하는 것이다. 본래 당신은 같은 시험을 만나면 항상 같은 결과였다. 그러나 이제는 그렇지 않다. 이는 성령의 법이 있는 것과 성령의 법이 없는 것의 차이이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에게는 이길 방법이 없게 된다.

 

로마서 8장 2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죄와 사망에서 벗어나고 해방받는 것은 어디에서인가? 그리스도 안에 있음으로 인해 나는 「할렐루야!」라고 외칠 수 있다. 그리스도 안에서는 다 좋은 것이다. 성경은 그리스도 안에서 정죄받고, 그리스도 안에서 범죄할 것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는 정죄함이 없고 곧 자유함이 있다.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것이 무엇인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은 바로 그리스도와 연합하는 것이다. 우리가 자신을 의지해서 그리스도와 연합할 방법은 없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죽으실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그분의 죽음 안에 연합시키셨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죽음 안에서 죽었고, 그리스도의 부활 안에서 부활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믿은 그날,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 있게 되었다.

 

요한복음 3장 16절은,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한다. 믿음은 「...안으로 믿는다」는 뜻이다. 우리는 믿음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연합한다. 로마서 6장 3절은,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 ...알지 못하느뇨』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은 후에 침례를 받는 것은 그리스도 안으로 침례받는 것이다. 이것이 믿음이다.

 

비록 당신이 어떻게 그리스도 안에 연합되었는지 모를지라도 이것은 결코 중요한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바로 당신이 믿음으로 침례를 받을 때, 하나님은 당신을 그리스도 안에 연합시켰기 때문이다. 구원받은 믿는이라면 그리스도 안에 있지 않은 이가 없다. 각각 모두 그리스도 안에 있다.

 

그리스도 안에서 무엇을 얻는가? 로마서 8장 1절부터 2절에 있는 두 개의 「완료형」은 매우 귀하다! 우리는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양할 수 있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심은 이미 우리의 죄를 처리하신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죽음에서 부활하심은 이미 우리의 사망-영적인 것에서의 지극히 연약함-을 처리했다. 그리스도께서 죄를 이기신 것처럼 우리도 마찬가지로 죄를 이겼다. 그리스도께서 죽음을 이기신 것처럼 우리도 그와같이 사망을 이겼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해방을 얻은 것은 바로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함을 얻은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미 죄와 사망의 법에서 벗어났기 때문이다.

 

나는 당신에게 있는 하나의 법이 전적으로 무엇을 하는지 모른다. 그러나 나는 당신 안에 죄와 사망의 법이 있음을 안다. 당신에게는 분명 당신의 특별하고 독특한 죄와 사망의 법이 있다. 그러나 내가 당신에게 이르거니와 생명의 성령의 법은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당신으로 하여금 그 죄와 사망의 법을 벗어나게 했다. 이 생명의 성령의 법은 곧 부활의 법이요, 주님을 사망에서 부활케 한 그 법이다.

 

우리가 주님을 믿은 그날 얻은 생명이 곧 부활의 생명이요, 거듭남의 생명이다. 우리가 처음 주님을 믿을 때 얻은 생명은 부활한 생명일뿐 아니라 또한 동시에 생명의 성령의 법으로써 이 법은 우리로 하여금 해방을 얻게 하고 죄와 사망의 법에서 벗어나게 한다. 우리가 주님을 믿을 때 성령은 우리의 마음에 들어오셔서 죄를 이기고 사망을 이긴 주님의 그 생명을 우리에게 나눠주시며 우리로 이 생명의 성령의 법을 의지하여 죄와 사망을 이길 수 있게 한다.

 

형제 자매들이여, 여러분은 어쩌면 이것을 잘 모를 수도 있다. 그러나 조급할 것이 없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말씀만 붙잡으면 된다. 당신은 하나님께 『주여, 당신의 말씀은 생명의 성령의 법이 그리스도 안에서 저를 해방하셨고 죄와 사망의 법에서 저를 벗어나게 하셨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다. 성경은 우리에게 곧 해방될 것이라고 말하는가? 아니다. 장차 해방될 것이라고 말하는가? 아니다. 성경은 「해방되었다」고 말한다.

 

나는 예전에 마치 감옥에 앉아 있는 것 같았다. 죄와 사망의 법이 나를 가둠이 감옥의 가둠보다 더 심하게 나를 가두었다. 죄와 사망의 법이 나를 둘러쌈은 감옥이 나를 둘러쌈보다 더 심했다. 그러나 이제 생명의 성령의 법이 그리스도 안에서 나를 해방했다. 마치 나는 감옥으로부터 관청의 석방을 받은 것과 같았다.

 

어떤 사람이 감옥으로부터 석방의 명령을 받았을 때 그는 기뻐서 즉각 나오겠는가 아니면 한바탕 울고서야 나오겠는가? 그는 석방받은 그 때 그날로 곧 기쁘게 나올 것이다. 생명의 성령의 법은 나를 해방하였고, 나로 죄와 사망의 법에서 벗어나게 했다. 해방은 성령의 역사이며 벗어남은 우리가 얻은 결과이다.

 

형제 자매들이여, 당신은 담대히 믿음으로써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을 수 있는가? 당신은 이 생명이 얼마나 큰 것을 포함하고 있는지 아는가? 하나님은 단지 당신을 죄와 사망에서 벗어나게 구원하신 것이 아니라 당신으로 하여금 죄와 사망의 법에서 벗어나도록 구원하신 것이다. 당신에게 당신을 붙잡고 있는 더러운 사상, 질투, 성질이 있는가? 당신은 담대히 믿음으로써, 「생명의 성령의 법이 그리스도 안에서 나를 죄와 사망의 법에서 벗어나게 했다.」고 말할 수 있는가?

 

내가 당신에게 묻겠다. 당신은 「그리스도 안에」 있지 않은가? 만약 당신이 그리스도 안에 있다면 당신은 이미 해방을 받았고 이미 죄와 사망의 법에서 벗어났다. 당신은 어제 당신을 붙잡은 그 죄가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해방받았음을 믿을 수 있는가? 당신은 백만 명의 사람 가운데 가장 큰 죄인인데, 만약 당신이 이 구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나를 해방했다.」는 말씀을 붙잡는다면 당신은 곧 할 수 없는 것이 없다는 것을 믿을 수 있는가?

 

만약 내가 오늘 당신에게 선행하기를 권한다면, 세상 사람들이 덕 닦는 것을 권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당신에게 하나님의 율법을 준행하라고 권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우리는 하나님께 감사한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위하여 무엇인가를 행하셨다고 말하므로 우리는 다만 믿기만 하면 된다.

 

온 세상에서 이기는 둘째 방법은 없다. 당신이 수신극기(修身克己) 할 수 있고 죄와 사망을 이길 수도 있지만 결코 죄와 사망의 법을 이길 수는 없다. 다른 것이 없다. 믿기만 하면 된다. 하나님께서 내가 구원받았을 때 성령을 통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나를 해방했고 그 더럽고도 연약한 법에서 벗어나게 했음을 믿는 것이다.

 

믿기만 하면 이기게 된다. 당신이 믿을 때 성령은 즉각 역사하시며 본래 당신을 붙잡던 그 법은 당신을 주관할 방법이 없게 된다. 나는 나에게 죄가 있음을 안다. 나는 또한 죄와 사망의 법이 지독한 것을 안다. 그러나 나는 그리스도 안에서 죄와 사망의 법이 나를 붙잡을 수 없음을 믿는다.

 

지구의 중력이 비록 하나의 법이지만 손으로 책을 들고 있으면 손의 힘은 중력의 법을 이길 수 있다. 중력의 법이 제거된 것이 아니라 또 다른 법이 그것을 이긴 것이다.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우리를 벗어나게 한 것은 마치 이러한 이치와 같다. 죄와 사망의 법이 폐해진 것이 아니라 또 다른 하나의 법이 나로 죄와 사망의 법에 붙잡히지 않을 수 있게 하고, 나로 죄와 사망의 법이 있음을 느끼지 않을 수 있게 한다.

 

예를 들어, 정부에는 사람이 강도짓을 할 수 없는 법률이 있다. 그러나 내가 지금까지 강도짓을 하는 경향이 없다면 그 법률은 나와 관계를 발생시키지 않는다. 정부의 그 법이 없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지금까지 강도짓을 하려고 생각하지 않았으므로 나는 그러한 법이 있음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죄는 밖에 있는 행위이고, 법은 안에 있는 요구이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이 죄를 이기는 것은 한 가지 한 가지 일을 이기는 것에 불과하다. 만약 죄의 법을 이긴다면, 그것은 곧 이 죄의 법의 요구를 이긴 것이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술 마시기를 좋아한다면 그는 강한 노력으로 한 번 두 번 마시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그는 그의 안에 술을 탐하는 요구를 없앨 수는 없다.

 

내게 한 친구가 있었다. 주님을 믿지 않았을 때, 중국 연극을 보는 것이 버릇이 되어 있었다. 징과 북소리가 울리는 것을 듣기만 하면 그의 안은 즉각 움직였다. 그가 한번 연극을 보러가면, 결국 삼일 밤 낮을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 보다 너무 피곤하면 땅에 쓰러져 자고, 깨어나면 다시보고 하기를 삼일 밤낮 동안을 했다.

 

주님을 믿은 이후, 주님은 그를 죄와 사망의 법에서 벗어나게 구원하셨다. 그는 이제 자신을 강하게 억제하여 보러가지 않는 것이 아니라, 안에서 절대적으로 보러 가기를 좋아하지 않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로 죄와 사망에서 벗어나게 하신 것은 모두가 다 이러한 구원의 방법이다. 하나님께서는 먼저 사람의 안을 구원하시고 그로 안에서 이 법의 지배를 받지 않게 하신다. 그러므로써 그들에게는 자연히 좋은 외적 행위가 있다.

 

하나님께서 우리로 죄와 사망의 법에서 벗어나게 하셨지만, 그분은 결코 죄와 사망으로 하여금 우리를 벗어나게 하지는 않으셨다. 예를 들어, 내가 만약 책 한 권을 땅에 떨어뜨리지 않으려 한다면, 나의 방법은 결코 대단한 힘을 들여서 지구의 중력을 없애지 않아도 된다. 나는 다만 나의 손으로 이 책을 들기만 하면 된다. 지구의 중력이 여전히 존재할지라도 내 손의 쥐는 힘이 그것을 이겨서 지구의 중력이 비록 존재할지라도 조금의 효력도 없게 한다. 지금까지 하나님의 구원의 방법은 불뱀을 없앤 것이 아니라 놋뱀을 세우신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양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죄와 사망의 법의 요구를 이기는 데까지 구원하실 수 있다. 오늘 내가 말한 것이 좋지 않을지라도 다급해 하지 말라. 여러분이 하나님의 말씀을 잡을 수 있기만 하면 충분하다. 하나님께서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그리스도 안에서 나를 해방했고, 나를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시켰다고 말씀하셨다. 나는 이미 해방을 얻었고 죄와 사망의 법에서 벗어났다. 그러므로 이제부터 나는 해방받은 사람이다.

 

그러나 당신이 이렇게 믿고 집에 돌아갔을 때, 죄의 법은 여전히 똑같이 존재하는 듯하다. 어쩌면 당신은, 『집회 중에서 나는 이미 죄와 사망의 법에서 벗어났다고 믿었는데, 어째서 지금도 존재하는 것 같은가?』라고 자문할지 모른다. 이 때 사탄은 당신에게 와서, 『무엇이 달라졌는가? 믿지 않아도 이러하고 믿어도 여전히 이러하지 않은가?』라고 참소한다.

 

믿음의 시험은 바로 여기에 있다. 만약 당신이 이때 느낌을 상판하지 않고 참소를 상관하지 않는다면, 당신은 승리하게 된다. 당신이 조금 조심하거나 방비해서 당신을 보호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당신을 보호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으면 책임지실 수 있다. 처음으로 시험이 당신 앞에 임할 때, 당신이 설 수 있다면 곧 이긴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당신의 믿음이 참된 것인가를 시험하신다. 당신 또한 하나님의 말씀이 당신을 구원하시는 것이 참인가를 시험해야 한다. 믿음이 참이 아니면 하나님의 축복을 얻을 수 없다. 우리가 믿는다면 하나님께 대하여 『나는 당신의 말씀을 붙잡습니다 당신이 말씀하셨으므로 책임지십시오. 그러므로 나는 내가 이미 죄와 사망의 법에서 벗어났음을 믿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 휘장을 여신다면 당신은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진 것들이 어떠한 사실인가를 보게 될 것이다. 당신의 눈은 하나님을 보고 자신을 보지 말아야 함을 기억하라. 성경은 또 한 번도 당신에게 당신 자신을 보고 당신의 체험을 보라고 하지 않았다.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사는 것이다. 구원받음에는 믿음이 필요하고, 이김에도 믿음이 필요하다. 우리는 시험이 올 때, 하나님을 영화롭게 해야 한다. 사탄은 당신이 믿으나 믿지 않으나 같지 않느냐고 말한다. 당신은, 『네가 한나절을 그렇게 해도 나는 여전히 믿는다.』고 말해야 한다. 사탄은 하나님의 말씀이 참되지 않을 수도 있다고 말한다. 당신은, 하나님의 말씀은 참되며 오직 마귀만이 거짓을 말한다고 말해야 한다.

 

형제 자매들이여, 나는 참으로 사람들에게 선행을 하라고 권하는 것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으라고 권하는 것이 더 어렵다고 느낀다. 그러나 내가 진실로 여러분에게 이르거니와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는다면, 이김이 없다.

 

1절은 왜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는 할 수 없음이 없다고 말하는가? 2절은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고 우리는 이미 죄와 사망의 법에서 벗어났다고 이미 분명하게 말한다. 우리가 할 수 없고 방해받는 까닭은 모두 죄와 사망의 법 때문이다. 이 법은 우리를 묶고 우리로 기뻐하지 않는 일을 하게 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을 때, 그분의 부활 생명과 성령은 우리를 해방시키고 우리로 죄와 사망의 법에서 벗어나게 한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는 할 수 없음이 없다.

 

그렇지만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이 벗어남이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더이상 할 수 없음이 없는 것 역시 그리스도 안에 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대신해서 우리 안에서 어떤 것을 해주사 우리로 하여금 스스로 잘 지나갔으며 이제는 여유 있게 승리할 수 있다고 느끼게 해 주기를 바랄 수 없다. 이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우리가 더이상 할 수 없음이 없는 것은 그리스도 안에서이다. 그리스도를 벗어나기만 하면, 우리는 여전히 예전과 같이 연약해진다. 이 때문에 요한복음 15장에는 항상 그리스도 안에 살라는 명령이 있다.

 

8장 3절 :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를 인하여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죄를 정하사」는 원문에 따르면 「죄의 죄를 정하사」이다). 이 구절은 우리 사람들이 육체의 연약함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율법을 준행할 수 없으므로, 하나님께서 주 예수님을 세상에 오게 하사 구속의 역사를 성취하셨다고 말한다. 주님은 한면으로 우리의 속죄제물이 되사 우리를 위하여 죽으셨으며, 다른 한면으로 우리의 죄를 십자가에 가지고 가사 심판하셨다. 이렇게 하여 죄가 다시는 힘이 없게 되었다.

 

8장 4절 : 『육신을 좇지 않고 그 영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이 구절은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을 때, 율법의 요구를 이룰 수 있으며 하나님의 뜻을 준행하고 하나님의 기뻐하심을 얻을 수 있다고 말한다.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양한다. 우리가 오늘 믿으면 우리는 오늘 곧 능력이 있고 이김이 있게 된다.


워치만 니
[워치만니 전집 제9권, "죄와 사망의 법", 한국복음서원]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kakao talk
퍼머링크
다음글 : 거함의 비밀

댓글 0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찬양노트의 말씀방입니다. image 청지기 12.02.20.18:01 4916
82 하나님이 산에서 지시하신 식양대로 청지기 12.03.21.19:16 1367
81 회중, 권속, 몸, 새 사람 1 청지기 12.03.21.19:09 1335
80 거함의 비밀 청지기 12.03.21.19:04 1072
죄와 사망의 법 청지기 12.03.21.19:00 2045
78 교회의 입장 문제 청지기 12.03.08.15:15 970
77 구원의 후사 청지기 12.03.08.14:59 1102
76 선악이 아니라 생명임 청지기 12.03.08.13:32 884
75 계시를 구하는 기도 청지기 12.03.08.13:11 983
74 본질적인 삼일성과 경륜적인 삼일성 청지기 12.03.08.13:01 961
73 한 성경―한 계시 청지기 12.03.08.12:59 1012
72 진리의 기둥과 터 청지기 12.03.08.12:43 1194
71 그리스도인이 주의해야 할 네 가지 일 청지기 12.03.08.12:39 1104
70 새어버림과 떠돌아다님 청지기 12.03.08.12:32 968
69 사랑의 말씀 청지기 12.03.08.12:10 866
68 희년 청지기 12.03.08.11:37 1171
67 너희는 그리스도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느냐? image 청지기 12.03.08.11:24 991
66 주 예수에 대한 두 종류의 인식 청지기 12.03.08.10:22 990
65 배우면서 하라 청지기 12.03.08.10:17 830
64 혼과 영의 구분 청지기 12.03.08.10:13 1696
63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청지기 12.03.08.10:09 1143
62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청지기 12.03.08.10:00 1645
61 인격이신 그리스도를 사랑함 청지기 12.03.08.09:50 927
60 잠언에 대해 가져야 할 건전한 태도 청지기 12.03.08.09:46 898
59 영 안에 생명이신 그리스도 청지기 12.03.08.09:31 921
58 성경 해석의 원리 청지기 12.03.08.09:21 948
57 성령의 통제 청지기 12.03.08.09:16 981
56 십자가를 통한 사역 청지기 12.03.08.09:12 1004
55 만유를 포함한 그리스도 청지기 12.03.08.09:08 863
54 하나님의 건축을 위한 어린양의 일곱 눈 청지기 12.03.08.09:04 866
53 육체의 탄식―휴거되기 전 청지기 12.03.08.09:01 965
52 합일과 분열의 근거 청지기 12.03.08.08:57 938
51 교회들이 세워진 근거 청지기 12.03.08.08:55 862
50 어떻게 내면의 인도를 따르는가 청지기 12.03.07.16:33 810
49 모든 사람을 사랑함 청지기 12.03.07.16:24 931
48 성경 해석을 지배하는 원칙 청지기 12.03.07.16:22 839
47 하나님이 계심에 대한 체험과 토론 청지기 12.03.07.16:06 993
46 네 가지 소극적인 요인들을 주의하라 청지기 12.03.07.15:59 954
45 십자가에 못박힌 생활을 삶 청지기 12.03.07.15:52 1076
44 가정집회들과 이주와 전시간 사역자들 청지기 12.03.07.15:42 944
43 동료 믿는이들을 향한 우리의 태도 청지기 12.03.07.15:37 758
42 성도들을 진리 안으로 이끎 청지기 12.03.07.15:24 806
41 구속과 하나님의 완전한 구원에 대한 이상 청지기 12.03.07.14:02 1169
40 사역의 하나에 대한 공과 청지기 12.03.06.12:48 776
39 하늘에 속한 이상―몸에 대한 이상 청지기 12.03.06.12:23 1174
38 하늘에 속한 이상―그리스도에 대한 이상 청지기 12.03.06.12:16 1448
37 복음을 위해 바울이 고난받고 은혜를 누림 청지기 12.03.06.11:47 2349
36 권위의 기도 청지기 12.03.06.11:42 1385
35 교회의 기도 사역 청지기 12.03.06.11:36 1345
34 주님의 사역자의 성격―진리의 절대성 청지기 12.03.05.15:43 9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