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성한 말씀을 누려요. ^^

  • 목록
  • 아래로
  • 위로
  • 0
  • 청지기
  • 조회 수 940

하나님을 섬기는 모든 사람들은 언젠가 그의 사역을 저지하는 요인이 다른 사람이 아닌 자기 자신임을 발견할 것이다. 또한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은 자기 겉사람과 속사람의 불일치 곧 속사람은 한 방향을 향하고 겉사람은 다른 방향을 향하는 것을 찾아낼 필요가 있다. 모든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은 다 자신의 겉사람이 영의 통제에 불순종한다는 것과 하나님의 최고의 명령대로 행할 수 없음을 언젠가는 느끼게 될 것이다. 모든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은 다 언제인가 그의 사역에서 가장 큰 문제거리가 영을 사용하는 것을 저지하는 그의 겉사람임을 발견해야 한다.

 

본래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의 영을 사용할 수 있어야 하고, 다 영을 사용하여 하나님과 함께 있을 수 있으며, 영으로써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고 사람의 상태를 만지며, 또한 영을 사용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며, 하나님의 계시를 영으로써 만지고 받을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겉사람의 방해 때문에 영을 사용하지 못한다. 하나님을 섬기는 많은 사람들이 기본적인 일도 할 수 없는 이유는 바로 그의 겉사람이 아직 기본적으로 다름을 받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기본적인 다름이 결여될 때 결국 기본적인 일을 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어떤 흥분이든 어떤 열성이든 어떤 고초이든 모두 헛수고가 된다. 오직 이 기본적인 다룸만이 우리를 하나님 앞에서 유용한 사람으로 만든다.


속사람과 겉사람

 

로마서에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라는 말씀이 있다(7:22). 우리 속사람은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한다. 또한 에베소서는 우리에게,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하는 것을 보여준다(3:16). 또 다른 곳에서 바울은 『겉사람은 후패하나 속은 날로 새롭도다」라고 말한다(고후 4:16).

 

성경은 사람을 속사람과 겉사람으로 나눈다. 하나님이 거하시는 그 사람의 영은 속사람이고 하나님이 거하시는 그 사람 밖은 겉사람이다. 바꾸어 말해서 우리 사람의 영이 바로 속사람이고 보통사람들이 감지할 수 있는 존재가 바로 겉사람이다. 우리 속사람은 옷 한 벌을 입은 것같이 겉 사람을 입고 있다. 하나님이 그분 자신과 그분의 영과 그분의 생명을 두신 곳은 바로 우리의 속사람인 것이다. 이 속사람 밖에는 우리의 생각과 감정과 의지가 있으며 가장 밖에는 우리 전체의 육체인 우리의 몸이 있다.

 

우리는, 하나님을 위하여 일할 수 있는 사람은 속사람이 흘러나오는 사람임을 알아야 한다. 속사람이 겉사람을 뚫고 나올 수 없는 것이 바로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의 기본적인 문제이다. 속사람은 겉사람이 뚫릴 때 비로소 나올 수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서 우리들은 우리의 일의 첫째 되는 문제가 상대편에게 있지 않고 우리 편에 있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우리 속사람은 옥에 갇힌 것처럼 감금된 사람이 되었다. 우리의 영은 덮개로 덮여진 것 같아서 밖으로 나오기가 쉽지 않다. 우리의 영이 겉사람을 뚫고 밖으로 홀러나오는 훈련을 하지 않는 한, 우리는 결코 사역하지 못한다. 겉사람보다 우리를 더 제재하는 것은 없다. 우리의 사역이 효과적인가는 우리 겉사람이 주님에 의해 파쇄되어서 속사람이 파쇄된 겉사람을 통해 나올 수 있는가에 있다. 이것이 기본적인 문제이다. 주님은 속사람이 출구를 얻도록 우리 겉사람을 파쇄하신다. 속사람이 나올 때 많은 죄인들은 축복을 얻게 되고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은혜를 입게 될 것이다.


죽음과 열매 맺음

 

요한복음 12장 24절에서 주 예수님은,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고 말씀하신다. 생명은 밀알 안에 있고 밀알 밖에는 상당히 두꺼운 한 겹의 껍질이 있다. 이 껍질이 갈라지지 않는 한, 밀알은 자라나지 못한다.『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으면』에서 이 죽음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땅 속의 온도와 수분 등이 작용하여 껍질을 갈라지게 한다는 것이다. 껍질이 갈라져야만 밀알이 자란다. 그러므로 문제는 당신 속에 생명이 있는가만이 아니라 밖의 껍질이 갈라졌는가이다.

 

이 구절에 이어서, 자기 혼을 사랑하는 자는 잃을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 혼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존하리라는 말씀이 있다. 여기서 주님은 밖의 껍질이 바로 우리 자신의 생명이고, 안의 생명은 그분이 우리에게 주신 영생하는 생명임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속에 있는 생명이 나오게 하려면 밖의 생명은 반드시 해를 입어야 한다. 밖의 것이 파쇄되지 않는 한, 속의 것은 나올 수 없다.

 

이 세상 사람들 중에 주님의 생명을 소유한 한 무리가 있다. 주님의 생명이 있는 많은 사람들 중에 두 가지의 다른 상태가 있다. 하나는 생명이 제한받고 감금되고 포위되어 밖으로 나올 수 없는 유형이고, 다른 하나는 주님께서 그의 몸에서 길을 뚫어서 그에게서 생명이 밖으로 나올 수 있는 유형이다. 오늘 문제는 어떻게 생명을 얻는가에 있지 않고 생명이 어떻게 우리 몸에서 나가느냐에 있다. 우리가 주님에 의해 파쇄되어야 한다는 말은 한낱 지나가는 말이나 교리가 아니다. 이것은 사람인 우리가 정말 파쇄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문제는 주님의 생명이 온 땅을 충만케 할 수 없는 데 있지 않고 그분의 생명이 우리에게 봉쇄되어 있는 데 있다! 주님께서 교회를 축복하시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생명이 우리 안에 봉쇄되고 우리 안에 감금되어서 나갈 출구를 얻지 못하시는 것이다. 겉사람이 파쇄되지 않을 때 우리는 결코 교회의 축복이 될 수 없다. 또한 세상 사람들이 우리로부터 하나님의 은혜를 얻기를 바랄 수도 없다!


옥합을 깨뜨려야 함

 

성경은 우리에게 순전한 나드 향유가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하나님의 말씀에 특별히 「순전한」이라는 단어가 추가되었다. 그러므로 이 향유는 순전한 나드 기름이고 진실로 신령한 것이다. 그러나 옥합이 깨지지 않으면 결코 순전한 나드 기름이 흘러나올 수 없다. 기묘하게도 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향유보다 옥합을 더 감상하고 향유보다 옥합을 더 값어치 있는 것으로 느끼며 속사람보다 겉사람을 더 보배롭게 생각한다. 이것이 교회 안의 어려움이다.

 

어떤 사람은 자기의 총명을 귀히 여기어 자신을 놀라운 사람으로 생각하며, 어떤 사람은 자기의 감정을 귀히 여기어 자신을 놀라운 사람으로 생각한다. 많은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귀히 여기어 자신을 남보다 낫다고 생각하고 남보다 구변도 있고 남보다 일도 빨리 처리하며 일에 있어서 남보다 더 결단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는 골동품을 가지고 노는 사람들이 아니다. 우리는 옥합을 감상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향기 냄새를 맡는 사람들이다. 겉의 것이 파쇄되지 않고 속의 것이 나오지 않으면 우리 자신에게 갈 길이 없을뿐더러 교회에도 또한 갈 길이 없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자신을 귀히 여기지 말아야 한다.

 

성령의 역사는 멈추지 않는다. 많은 사람에게서 성령의 역사가 멈춘 적이 없었다. 한 가지 환경 뒤에 따라오는 다른 환경, 한 가지 일 뒤에 발생하는 다른 일들은 성령의 통제로서 그 목적은 오직 우리 겉사람을 파쇄하여 우리 속사람으로 뚫고 나올 수 있게 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문제는 약간의 괴로움을 당할 때 불평하고 약간의 좌절이 있을 때 원망하는 데 있다. 주님은 우리를 사용하시기 위해 길을 예비하시는데 우리들은 주님의 손이 우리를 한번 만지기만 해도 그것을 싫어하고 심지어는 하나님과 의견을 달리하며 소극적이 되어 버린다.

 

구원받은 때부터 오늘날까지 주님은 수차 여러 모로 우리 몸에서 역사하셨다. 그 목적은 우리 자신들을 파쇄하시려는 데 있다. 우리가 알든 모르든 주님의 목적은 우리 겉사람을 파쇄하는 것이다. 보배는 질그룻 안에 있다. 누가 당신의 질그릇을 원하겠는가? 교회 안에 필요한 것은 질그릇이 아니라 보배이다. 세상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도 질그릇이 아니라 보배이다. 그러나 질그릇이 파쇄되지 않는다면 누가 그 속의 보배를 볼 수 있겠는가?

 

주님이 우리 안에서 하시는 역사는 대체 무엇을 위한 것인가? 그 목적은 바로 질그룻을 깨뜨리고 옥합을 깨뜨리며 밖의 껍질을 깨뜨리는 것이다. 주님은 그분께 속한 사람에게서 그분의 축복이 세상으로 통하는 하나의 길을 얻고자 하신다. 그러므로 겉사람의 파쇄가 얼마나 중요한지! 파쇄되지 않고서는 결코 사역이 있을 수 없다. 우리가 자신을 주님께 헌신하고 주님을 섬기기 원한다면 반드시 파쇄될 준비가 되어야 한다. 여기서 우리의 겉사람이 완전히 파쇄되고 주님의 사역으로 길을 얻게 하기 위하여 우리는 우리 자신을 풀어놓지 말고 우리 자신을 보류하지도 말아야 한다.

 

우리는 주님께서 우리 몸에 대해 의도하시는 바가 무엇인지를 찾아 내야 한다. 한 가지 안타까운 것은 많은 사람들이 주님께서 그들에게 어떤 역사를 하시며 그들에 대해 어떤 의도를 갖고 계시는지를 모른다는 것이다. 우리 모든 사람들이 자신에 대해 주님이 갖고 계신 의도를 찾아낼 수 있기를! 주님이 우리 눈을 열어 주실 때 비로소 우리가 일생 동안 거친 모든 일들이 다 의미가 있다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주님은 어떤 일도 헛되이 하시지 않으신다. 주님의 목적이 우리 겉사람을 파쇄하는 것임을 깨달을 때 우리는 모든 환경이 다 의미가 있고, 그것들이 다 주님의 동일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것이며 우리 자신을 파쇄하기 위한 것임을 보게 될 것이다.

 

그러나 주님께서 손을 대기도 전에 즐거워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 우리는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모든 체험들과 혼란과 환경들이 다 우리의 최고의 유익을 위한 것임을 알아야 한다. 이것들이 가장 좋은 것들이므로 우리는 주님에게 그것보다 더 좋은 것을 주시도록 요구할 수 없다. 만일 어떤 사람이 주님 앞에 나와서, 『주여! 가장 좋은 것 한 가지를 택하도록 허락해 주소서! 』라고 간구한다면, 주님은 그에게 이렇게 말씀하실 것이다. 『내가 네게 준 것이 가장 좋은 것이다. 매일 네가 만난 환경이 네게 가장 큰 유익이 된다. 』 주님이 우리를 위해 안배하신 모든 것들은 우리 겉사람을 헐어 버리기 위한 것이다. 우리 겉사람이 파쇄되고 영이 나올 때 비로소 우리는 영을 사용할 수 있다.


파쇄와 시간

 

주님은 우리의 겉사람을 파쇄하기 위하여 두 가지 서로 다른 방법을 사용하신다. 하나는 점차적인 것이고 하나는 돌연적인 것이다. 어떤 사람에게는 주님이 먼저 그를 돌연적으로 파쇄하시고 그런 다음 다시 점차적으로 파쇄하신다. 이것은 돌연적인 것이 먼저이고 점차적인 것이 나중인 경우이다. 어떤 사람에게 주님은 날마다 환경과 시련을 주시다가 어느 날 돌연히 대대적인 파쇄를 행하신다. 이것은 점차적인 것이 먼저이고 돌연적인 것이 나중인 경우이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받은 파쇄는 돌연적인 것이 먼저이고 점차적인 것이 나중이거나, 점차 적인 것이 먼저이고 돌연적인 것이 나중이다.

 

일반적으로 말해서 주님은 올바르게 이 길을 가는 사람들 위에 파쇄 작업을 성취하시기 위하여 보통 수년의 기간을 사용하신다. 우리는 이 기간을 연장시킬 수 있을 뿐 단축시킬 수 없다. 어떤 사람에게 주님은 몇 년의 시간으로 이 일을 성사시킬 수 있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십 년, 이십 년을 사용하셔도 이 일을 완성시키지 못한다. 이것은 매우 엄숙한 문제이다! 하나님의 기간을 낭비하는 것보다 더 가련한 일은 없다. 많은 때 교회가 축복을 얻지 못하는 이유는 바로 우리 때문이다! 우리는 생각 안에서 전도에 능하고 우리의 감정은 사람들을 전도하라고 격동시킬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영을 사용할 줄 모른다면, 하나님은 결코 우리를 통하여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사람들을 만지실 수 없을 것이다. 이렇게 될 때 우리는 시간을 길게 끌게 되고 아주 큰 손실을 당하게 된다.

 

그러므로 만일 우리가 과거에 한 번의 철저한 헌신을 하지 않았다면, 오늘 우리는 반드시 우리 자신을 주님께 드리면서 이렇게 말해야 한다. 『주여! 교회의 앞날을 위하여, 복음의 장래를 위하여, 그리고 당신의 길을 위하여, 나 개인의 생명을 위하여 아무 조건 없이, 아무 보류 없이 내 자신을 당신 손에 맡깁니다. 주여! 내 자신을 기꺼이 당신 손에 맡깁니다! 당신이 내 몸에서 나아갈 길을 얻으시기 원합니다』


십자가의 의미

 

우리는 십자가에 대하여 계속 들어왔을 것이다. 십자가가 우리 귀에 아주 익숙할 정도로 들었는데, 대체 십자가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십자가는 겉사람의 파쇄를 의미한다. 십자가는 겉사람을 죽이고 사람의 껍질을 갈라지게 하는 것이다. 십자가는 당신의 겉사람 일체를 다 헐어버린다. 당신의 의견과 당신의 방법 그리고 당신의 총명과 자애(自愛)를 헐어버리고 당신의 모든 것을 헐어버린다. 당신의 겉사람이 파쇄되어야 속사람이 나오고 당신의 영이 나올 수 있다. 이 길은 너무나 분명하다.

 

우리의 겉사람이 파쇄될 때 우리의 영은 쉽게 나온다. 어떤 형제가 있는데 그를 아는 사람은 누구나 그가 예리한 생각과 강인한 의지와 냉철하고 깊은 감정의 소유자라는 것을 시인한다. 그러나 그를 만나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의 강인한 의지와 총명한 생각과 냉철하고 깊은 감정을 만지는 것이 아니라 그의 영을 만진다. 사람들은 그와 교제를 나눌 때마다 그에게서 깨끗한 영을 만진다. 그 이유는 어디에 있는가? 이는 그 사람이 파쇄된 사람이기 때문이다. 또 한 자매가 있는데 그녀를 아는 사람은 누구나 그녀가 아주 빠르고 생각과 말이 빠르고 죄의 자백도 빠르고 편지도 빨리 쓰고 빨리 찢어버린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그녀를 만나본 사람은 누구나 그녀의 빠른 것을 만지는 게 아니라 그녀의 영을 만진다. 이는 그녀가 파쇄된 사람이기 때문이다.

 

겉사람이 파쇄되는 것이 기본적인 문제이다. 우리는 주님의 오 년, 십 년의 다루심을 받으면서도 계속 우리의 결점을 보유하고 전과 같은 냄새를 풍겨서는 안 된다. 우리는 주님으로 하여금 우리 몸에서 출구를 얻으시도록 그분께 양보해야 한다. 이것이 우리에 대한 주님의 기본적인 요구이다.


파쇄되지 않은 두 가지 원인

 

왜 어떤 사람은 수년간의 다룸을 받고서도 그 다룸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모르는가? 주님께서 어떤 사람의 강한 의지를, 어떤 사람의 강한 감정을, 어떤 사람의 강한 생각을 헐어버리실 수 있는데, 왜 어떤 사람은 수년간 다룸을 받고서도 아직 파쇄되지 않았는가? 우리는 이것에 두 가지 큰 원인이 있다고 믿는다.

 

첫째는, 그들이 흑암에 거하고 하나님의 손을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역사하시고 헐고 계시는데 그들은 그것이 하나님의 역사임을 모른다. 그들에게 빛이 결여되어 있고 그들이 빛 안에 살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이 보는 것은 사람뿐이고, 항상 누구누구가 자기와 대적이 된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환경만 보고 환경이 너무 어렵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항상 환경을 탓한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계시를 주사 이것이 하나님의 손임을 보고 그분께 무릎 꿇고, 『주여, 이것은 당신이시요, 당신이심으로 나는 다만 영접합니다』라고 말할 수 있기 바란다.

 

최소한 우리들은 우리를 다루는 손이 누구의 손인지를 인식해야 한다. 최소한 우리를 다루는 손이 세상 사람이나 가족이나 교회 형제 자매들의 손이 아닌 하나님의 손임을 인식해야 한다. 우리를 다루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우리는 귀용 여사처럼 무릎을 꿇고 그러한 손에 입 맞추고 그 손을 귀히 여겨야 한다. 우리에게 이런 빛이 필요하다. 우리는 주님이 하신 일이라면 그것이 틀린 것이 아니기 때문에 다만 그것을 받고 믿어야 함을 보기 바란다.

 

둘째의 원인은 그들이 자기를 너무 사랑하기 때문이다. 자기를 사랑하는 것은 사람이 파쇄되는 데 하나의 큰 장애이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을 제하여 주시도록 그분께 간구해야 한다. 자기를 사랑하는 마음이 하나님에 의해 제해질 때 우리는 그분을 경배하며, 『주여, 이것이 당신의 손이라면 내 마음 속에서 이것을 받게 하게 하소서』라고 말할 것이다. 우리의 모든 오해와 모든 불평과 불만의 유일한 이유는 은밀하게 자기를 사랑하기 때문임을 기억하라. 우리가 은밀하게 자기를 사랑하기 때문에 우리는 자기를 구출하기 위해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한다. 이것은 극히 큰 문제이다. 많은 경우 일이 터지는 것은 우리가 또 다시 자기를 구출하려고 하기 때문인 것이다.

 

십자가에 올라가서 쓸개 탄 신 포도주를 마시지 않는 사람만이 주님을 아는 사람이다! 많은 사람들은 억지로 십자가에 올라가서 그의 감정의 고통을 감소시키기 위하여 쓸개 탄 신 포도주를 마시려고 한다. 무릇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잔을 내가 어찌 마시지 않으리요』라고 말하는 자만이 쓸개 탄 신 포도주를 마시지 않는다. 그는 한 가지 포도주를 마실 뿐 두 가지를 마시지 않는다. 이런 사람은 자기를 조금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다.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 기본적인 문제이다.

 

주님께서 우리 안에 말씀하시어 우리가 다음과 같이 기도할 수 있기 바란다. 『나의 하나님! 이 모든 것이 당신으로부터 온 것임을 보았습니다. 지난 오 년, 십 년 또는 이십 년 동안 제가 걸어온 모든 길은 당신으로부터 온 것입니다. 당신이 이렇게 행하심은 당신의 생명이 내 몸에서 살아 나타나는 당신의 목적을 위한 것입니다. 그러나 제가 어리석어서 이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제가 자신을 사랑했기 때문에 자신을 구출하기 위하여 많은 방법을 사용하여 당신의 시간을 지연시켰습니다. 오늘 당신의 손을 보고서 내 자신을 당신께 드리기 원합니다. 다시 한 번 당신의 손에 내 자신을 맡겨 드립니다』.


상처 보기를 바람

 

파쇄된 사람보다 더 아름다운 사람은 없다. 강팍하고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이 하나님에 의해 파쇄될 때 그의 아름다움이 드러난다. 구약의 야곱을 보면 그는 모태에서부터 형과 다투었다. 그는 말썽장이에다 간사와 궤술이 많은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의 일생은 고통으로 가득했는데, 젊었을 때에는 밖에서 도망다녔고 이십 년 동안 라반의 꾀임에 넘어갔으며 마음에 사랑하는 아내 라헬이 길 도중에 죽었고 사랑하는 아들 요셉도 팔려갔다. 몇 년이 지난 후에 베냐민은 애굽에 구류되었다. 그는 연이어 하나님의 다루심을 받았고 순조롭지 않은 많은 일들을 당했다. 그는 한 번 두 번 하나님에게 매를 맞았다. 야곱의 역사는 하나님께 매맞는 역사라고 말할 수 있다.

 

하나님의 여러 번의 다룸을 받은 후 야곱은 변화되었다. 그의 말년은 정말 빛이 청청하였다. 야곱이 바로의 말에 답할 때 그는 얼마나 장엄했는지! 임종시 지팡이를 잡고 하나님께 경배했던 그의 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지! 아들들과 자손들을 위한 그의 축복은 얼마나 분명한지! 그의 마지막 역사를 읽어볼 때 우리는 고개 숙여 하나님께 경배할 것이다. 여기에 성숙하고 하나님을 아는 한 사람이 있다. 야곱은 수십 년의 다룸을 통하여 그의 겉사람이 파쇄되었다.

 

우리는 그의 노년을 통해 아름다운 한 폭의 그림을 그에게서 볼 수 있다. 우리 개개인은 누구나 어느 정도 야곱의 성품을 갖고 있다. 어쩌면 조금이 아니라 아주 많이 갖고 있을 것이다. 우리의 유일한 소망은 주님이 우리 몸에서 길을 열으심으로써 우리 속사람이 흘러나와 보일 정도로 우리 겉사람이 파쇄되는 것이다. 이것은 귀한 일이자 주님을 섬기는 사람의 길이다. 이렇게 될 때 우리는 그분을 섬길 수 있고 사람들을 주님께 인도할 수 있다. 이럴 때 우리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알도록 그들을 인도할 수 있다. 이것이 아닌 교리와 신학들은 다 쓸모 없다. 성경 지식만 가지고서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하나님이 그에게서 흘러나올 수 있는 사람이 유용한 사람이다.

 

우리 겉사람이 매맞고 처리를 받으며 여러 환경들을 거침으로 말미암아 우리 몸에 상처가 생길 때, 우리 속에 있는 영은 비로소 우리 몸에서 흘러나갈 수 있다. 우리는 처리받지 않고 변화되지 않고 그의 온 존재가 완벽한 그대로 남아 있는 형제나 자매를 만나기를 두려워한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긍흘히 여기사 우리 앞에 이 길을 분명히 두심으로 우리에게 다른 길이 없고 오직 이것이 유일한 길임을 알게 하시기를!

 

또한 지난 십 년, 이십 년 동안의 우리 몸에서의 주님의 모든 다루심이 이 목적을 위한 것임을 보여주시기 원한다. 그러므로 우리 몸에서 이루신 주님의 역사를 경멸할 수 있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겉사람의 파쇄가 무엇인지 주님께서 우리에게 참으로 보여주시기를! 겉사람이 파쇄되지 않은 사람의 모든 것은 머리 속에 있고 지식 안에 있는 것이므로 이것들은 다 무익하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철저한 다룸을 주시기를!


워치만 니
[자아의 파쇄와 영의 해방, "제1장, 파쇄의 필요성", 한국복음서원]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kakao talk
퍼머링크

댓글 0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찬양노트의 말씀방입니다. image 청지기 12.02.20.18:01 4918
131 신언하기를 실행함 청지기 12.04.20.11:13 1089
130 유기적으로 소그룹 집회를 실행함 청지기 12.04.20.11:09 940
129 말씀의 사역의 최고봉 청지기 12.04.20.11:07 916
128 네 단계의 중요한 노정 청지기 12.04.20.10:00 984
127 기도의 사람 청지기 12.04.19.14:56 1057
126 그리스도를 살기 위하여 능동적-수동적이 됨 청지기 12.04.19.14:48 1183
125 부모를 공경하고 결혼을 존귀히 여김 청지기 12.04.19.14:38 941
124 영의 느낌을 따름 청지기 12.04.19.14:35 987
123 보배와 질그릇 청지기 12.04.19.14:29 1101
122 눈물 청지기 12.04.19.14:24 1482
121 기둥으로 변화됨 청지기 12.04.19.14:16 921
120 분리와 계시 청지기 12.04.19.09:38 953
119 교회생활에 관한 몇 가지 중요한 문제들 청지기 12.04.19.09:33 1062
118 영적 생명의 단계 청지기 12.04.19.09:27 1130
117 오락 청지기 12.04.19.09:21 962
116 세상과의 분별 청지기 12.04.19.09:14 965
자아의 파쇄와 영의 해방 청지기 12.04.18.19:01 940
114 주님의 이름을 부름 청지기 12.04.18.18:57 1604
113 이기는 생명을 체험하는 길 청지기 12.04.18.18:50 940
112 제사장의 의복―흉패와 에봇 청지기 12.04.18.18:40 1898
111 혼적인 신자의 경험 청지기 12.04.18.18:38 1121
110 십자가로 돌아가라 청지기 12.04.10.11:02 902
109 사실, 믿음, 체험 청지기 12.04.10.10:58 895
108 생명의 체험―헌신 청지기 12.04.10.10:52 999
107 생명의 체험과 성장 청지기 12.04.10.10:46 967
106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하나님 청지기 12.04.10.10:44 1565
105 삼일 하나님 안에서의 하나 청지기 12.03.27.13:40 1012
104 판결의 흉패 청지기 12.03.27.13:35 905
103 주님의 재림 청지기 12.03.27.13:31 1022
102 처음 익은 열매 청지기 12.03.27.13:23 934
101 바다에서 올라온 짐승 청지기 12.03.27.13:16 1015
100 믿는이들의 휴거(2) 청지기 12.03.27.13:03 1186
99 믿는이들의 휴거(1) 청지기 12.03.27.12:55 940
98 그리스도의 승천으로부터 이 시대 끝까지의 세계 역사―첫째 인부터 네째 인까지 청지기 12.03.26.10:11 1037
97 특별하고 최종 완성적인 예수의 증거 청지기 12.03.26.10:07 898
96 하나님과의 교통 안에 삶―영광스런 중재(仲裁) 청지기 12.03.26.10:01 900
95 하나님의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 은혜를 앎―씨와 땅 청지기 12.03.26.09:51 1218
94 부활 안에 있는 생명―열국에 의해 상징된 종파 안의 문제 청지기 12.03.26.09:40 877
93 사람의 세번째 타락 청지기 12.03.23.17:42 997
92 사탄의 배역과 파괴 청지기 12.03.23.17:35 1037
91 하나님이 믿는이들을 다루시는 길―왕국에서의 징계(Ⅱ) 청지기 12.03.23.17:30 1048
90 하나님이 믿는이들을 다루시는 길―왕국에서의 징계(Ⅰ) 청지기 12.03.23.17:24 1254
89 하나님이 믿는이들을 다루시는 길―천국에 들어가는 조건 청지기 12.03.23.17:14 1067
88 하나님이 믿는이들을 다루시는 길―징계와 상급 청지기 12.03.22.19:03 1395
87 영에 속하는가 두뇌에 속하는가 청지기 12.03.22.18:57 914
86 하나님의 구속의 방법 청지기 12.03.22.18:47 996
85 새 종교를 향한 다섯 단계 청지기 12.03.22.17:59 866
84 새 예루살렘―성의 치수들 청지기 12.03.22.17:51 1148
83 사역의 재고―서문, 머리말 청지기 12.03.21.19:37 9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