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성한 말씀을 누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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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 레위기 1:1-10, 14-17, 6:8-13, 7:8, 시편 20;3, 민수기 28:2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를 만나시고 우리가 하나님을 만나는 데 필요한 두 가지를 보았다. 하나님은 장막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만나러 오실 수 있고, 우리는 제물들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 이것이 오고 가시는 그리스도이시다. 하나님은 하늘에 계시고 우리는 이 땅 위에 있다. 어떻게 하나님이 우리에게 오실 수 있겠는가? 주님을 찬양한다.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장막이 되심으로써이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모든 제물들이 되심으로써 우리가 하나님께로 갈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요구들

 

지금 이 땅 위에는 하나의 성막이 있는데, 이 성막은 세 부분으로 되어 있다. 거기에는 바깥 뜰이 있으며 흰 세마포 울타리가 있어서 성막을 둘러싸고 있다. 그 다음 바깥 뜰 안에 성막이 있는데 그것은 두 부분-바깥 부분인 성소와 속 부분인 지성소-으로 나누어진다. 지성소 안에는 법궤가 있다. 이것이 회막-확장된 그리스도-이 된다. 그리스도 그분 자신은 개인적으로는 법궤이시지만, 그분이 확장되실 때는 장막이 되신다. 이것은 교회를 상징한다. 그러므로 그것은 회막이라고 불린다.

 

지금 하나님은 더이상 하늘에만 계시는 하나님이 아니라 이 땅 위에 그분의 백성들 가운데 계시는 하나님이시다. 장막이신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을 이 땅으로 이끌어 내리셨다. 하나님은 지금 장막이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회막 안에, 곧 우리들 가운데 계신다. 하나님이 여기 계시지만 어떻게 우리가 그분을 접촉할 수 있는가? 하나님이 이 땅 위에 사람들 가운데 계시지만 우리 자신들을 한번 보라. 우리는 아주 죄악으로 충만해 있다.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과 접촉할 수 있는가? 이것이 바깥 뜰의 울타리가 있는 이유이다. 흰 세마포 울타리는 하나님의 의를 상징한다. 하나님은 의로우시기 때문에 그분의 의는 둘러싸는 울타리이시다. 지금 이 땅 위에 사람들 가운데 계시는 바로 이 하나님을 우리가 접촉하고자 한다면 이 울타리를 통과할 필요가 있다. 바꿔 말하면, 우리가 반드시 이 울타리의 요구들을 충족시켜야만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의는 일종의 요구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의로운 요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가? 자신 안에서 우리는 죄뿐이며 또 불의하다. 우리는 하나님의 의로운 요구를 충족시킬 자격이 없다. 그러나 주님을 찬양한다. 우리에게 그리스도가 있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의이시다. 그러므로 그분은 우리를 대신하여 의를 충족시킬 자격이 있으시다.

 

그 다음에 우리가 성막 안에 들어가서 볼 때 거의 모든 면의 모든 것이 금이다. 사 면의 모든 벽이 온통 금으로 입혀져 있다. 그곳은 금으로 이루어진 장소이다. 금은 하나님의 본성-거룩함-을 상징한다. 하나님의 의뿐 아니라 그분의 거룩함 또한 의이다. 우리가 하나님과 만나고자 한다면 우리는 반드시 그분의 의의 요구는 물론 그분의 거룩함의 요구도 충족시켜야만 한다.

 

그밖에도 성막의 최상부 천장에는 그룹이 있다. 예표론에서 그룹은 하나님의 영광을 상징한다. 그러므로 또 하나의 요구, 하나님의 영광의 요구가 있는 셈이다. 우리가 하나님과 만나고자 한다면 우리는 반드시 이 세 가지의 신성한 요구들을 충족시켜야만 한다. 신성한 의의 요구, 신성한 거룩함의 요구, 신성한 영광의 요구가 있다. 하나님이 지금 이 땅 위에 계시지만, 그분이 이 땅 위에 무분별하게 아무렇게나 계신다고 생각지 말라. 그분은 그분의 의와 거룩함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또한 그분의 영광으로 가리워져 있다.

 

흰 세마포로 된 분리선이 있는데 이것은 첫번째 담(울타리)으로서 하나님의 의의 담이다. 하나님의 의가 분리선이다. 그것은 의와 불의를 갈라놓는다. 그 다음 두번째 담은 금이다. 세마포가 첫번째 경계선이고 금은 두번째이다. 의가 첫번째 요구이고 거룩함은 두번째이다. 하나님은 이 두 가지 요구 안에 에워싸여 계신다. 그리고 그분은 그분의 영광에 의해 가리워져 있다. 우리가 이 의롭고 거룩하고 영광스러운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 지성소 안에 들어가고자 한다면 우리는 그분의 모든 요구들을 충족시킬 필요가 있다. 당신은 자신이 그렇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당신에게 의와 거룩함과 영광이 있는가?


제물들로서의 그리스도의 필요성

 

그러므로 우리는 성막으로서뿐 아니라 제물들로서의 그리스도의 필요성을 본다. 그리스도가 성막이 되심으로써 하나님을 이 땅으로 이끌어 내리셨지만, 또 제물들로서의 그리스도가 없이는 우리는 하나님의 요구들을 조금도 충족시킬 수 없다. 할렐루야, 그리스도는 각양의 제물들이시다. 그리스도가 이 모든 제물들 안에서 흰 세마포의 요구들과 금의 요구들과 그룹의 요구들을 충족시키신다. 제물들이신 그리스도는 신성한 의와 거룩과 영광의 요구들을 충족시킬 능력이 있고 자격이 있으며 장비가 되어 있으시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가졌음을 인하여 주님을 찬양한다!

 

그러면 그리스도는 어떤 분이신가?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의이시고,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거룩이시며,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영광이시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가질 때 우리는 하나님에 대한 이 세 가지 속성들을 갖는다. 그럴 때 우리는 하나님의 모든 요구들을 충족시킨다. 하나님의 모든 어떠하심이 곧 우리의 어떠함이며,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모든 것을 우리는 갖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 자신 안에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며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존재한다. 우리는 그저 「할렐루야!」라고 외칠 따름이다. 할렐루야, 그리스도가 우리의 의이시다! 할렐루야, 그리스도가 우리의 거룩이시다! 할렐루야, 그리스도가 우리의 영광이시다!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모든 것은 우리에게 있는데 이는 우리가 그리스도를 가졌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평강과 기쁨으로 회막 안에 걸어 들어가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

 

그리스도는 한편으로 하나님이 우리에게로 오시기 위한 장막이요,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가기 위한 제물들이시다. 그분은 하나님이 사람에게 오시기 위한 길이시며 또한 사람이 하나님께 나아가기 위한 길이시다. 결국 그분이 바로 회막이시다. 여기에서 우리들이 서로 함께 만날 뿐 아니라 하나님과도 함께 만난다. 이는 그리스도가 하나님을 우리에게로 이끄셨으며, 또한 우리를 하나님께로 이끄시기 때문이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첫번째 상태

 

레위기에서 우리는 그리스도가 온갖 제물들이심을 본다. 이 책의 6장이나 7장을 통독한다면 최소한 다섯 가지의 주요한 제물들-번제, 소제, 화목제, 속죄제, 속건제-을 보게 될 것이다. 이 다섯 가지에 더하여 요제와 거제가 있다. 당신에게 왜 그렇게 많은 종류의 제물들이 필요한가? 그것은 주님 앞에서의 우리의 상태가 최소한 다섯 방면 내지 일곱 방면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첫번째 상태는 우리가 하나님을 위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물론 우리가 구원받기 전에는 하나님을 전혀 위하지 않았다. 구원받은 이래로 우리가 한면으로는 하나님을 위한다 하지만 또 다른 면으로는 여전히 하나님을 위하지 않는다. 당신은 전적으로 하나님만을 위하는가? 우리가 한면에서는 하나님을 위한다지만 또 다른 한면에서는 하나님을 위하지 않는다. 이것이 우리의 상태에 관한 첫번째 방면이다. 우리가 선한가 악한가, 우리의 행함이 옳은가 그른가에 관계없이 우리가 진정으로 하나님을 위하지 않는다는 것은 가련한 일이다. 당신이 선을 행하면서 여전히 하나님을 위하지 않는 것은 사람들이 악을 행하면서 하나님을 위하지 않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우리가 선한가 악한가에 관계없이 우리는 전혀 하나님을 위하지 않는다.

 

어떤 사람은 은행 강도고 어떤 사람은 신사일 수 있지만 둘다 하나님을 위하지 않는 데 있어서는 마찬가지이다. 그러므로 어떤 의미에서 강도이건 대학 교수이건 모두 똑같다. 때로는 그리스도인 교사들과 전도사들과 목사들까지도 하나님을 위하지 않는다. 원칙상 그들이 하나님을 위하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강도들과 똑같다. 그러므로 다를 것이 없다. 당신이 은행 강도이건 교회의 목사이건 하나님을 위하지 않는 한 당신은 동일한 범주 안에 있는 것이다. 은행을 강탈하는 데서 하나님이 아무런 유익을 얻지 못하시거니와 또한 교회의 시무를 하는 데서도 그분은 역시 아무런 유익을 얻으실 수 없다. 성경을 읽든 「리더스 다이제스트」를 읽든 원칙은 동일하다. 당신이 성경을 읽으면서 하나님을 위하지 않는 것은 「리더스 다이제스트」를 읽으면서 하나님을 위하지 않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그 책들은 서로 다르나 생활은 같다. 「리더스 다이제스트」를 읽는 것이 하나님을 위하는 생활이 아니며, 성경을 읽는 것 또한 하나님을 위하는 생활이 아니다.


하나님을 위하는 사람

 

당신은 진정 절대적으로 하나님만을 관심하는가? 당신이 행하는 모든 것, 당신이 말하는 모든 것, 당신의 모든 어떠함이 전적으로 하나님만을 위한다고 말할 수 있는가? 아니다. 우리 중에 누구라도 정직하다면 이렇게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우리는 반드시 그리스도를 취해야만 한다. 우리는 그분을 번제로 취할 필요가 있다. 번제는 그리스도가 절대적으로 하나님을 위하시는 분임을 상징한다. 당신이 사복음서를 다시 읽는다면 이 땅 위에서 백 퍼센트 하나님만을 위해 사는 한 사람을 보게 될 것이다. 그분이 행하신 모든 것, 그분이 말씀하신 모든 것, 그분의 모든 어떠하심은 절대적으로 하나님만을 위한 것이었다. 우리는 하나님을 위하지 않는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이익과 우리 자신의 선택을 위한다. 그러나 번제로서 그리스도는 전적으로 하나님만을 위하셨다.

 

과거에 나의 깨달음은 우리에게는 무엇보다도 속건제로서의 그리스도가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오늘날 나의 깨달음은 바뀌었다. 우리에게 첫째로 번제이신 그리스도가 필요한 이유는 우리와 하나님과의 첫번째 문제가 죄의 문제가 아니고 하나님을 위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죄를 범했는지의 여부에 관계없이 우리는 여전히 하나님을 많이 위하지 않는다. 우리가 잘못 행한 것이 전혀 없을지라도 하나님을 위하지 않기는 마찬가지이다. 내가 이 사람 혹은 저 사람에게 잘못이 없을지라도 하나님께 대하여는 잘못이 있는 이유는 내가 여전히 전적으로 그분을 위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첫번째 필요는 번제이신 그리스도이다.


하나님의 양식

 

나는 그리스도인이 되고 나서 수년이 지나서야 하나님께서 양식을 필요로 하신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하나님이 배고프시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나는 민수기 28장 2절을 읽으면서 번제가 하나님의 식물(食物)인 것을 알게 되었다. 번제는 하나님의 양식이다. 하나님은 배고프시며 그분 자신을 만족케 할 어떤 것을 필요로 하시는데, 이는 곧 그분의 백성들에 의해 드려지는 번제이다.

 

당신은 매일매일 하나님을 만족케 해드리는가? 하나님은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날마다 아침 저녁으로 번제를 선물하라고 명하셨다. 하나님은 이러한 양식을 필요로 하신다. 기독교 안의 사람들은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것에 관하여 이야기 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다만 배고프시다고 하실 것이다. 그분은 양식이 필요하시다. 당신은 선교지에 가서 하나님께 영광돌리겠다고 말할지 모르지만 하나님은 오늘 당신이 있는 바로 거기에서의 약간의 양식을 더 관심하신다고 말씀하실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께 양식을 드리고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그것은 우리가 만족케 되는 때이다. 우리가 만족케 될 때 틀림없이 하나님도 우리가 드리는 양식으로 인해 만족케 되신다. 하나님이 만족하지 않으실 때 우리는 결코 만족될 수가 없다. 그렇게 많은 선교사들이 선교지에서 밤낮으로 일하고 있지만 만족이 없다. 그들이 정직하다면 그들은 자신들이 하나님께 영광돌리기 위해 많은 일을 하고 있지만 여전히 매우 굶주려 있다고 말할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도 또한 배고프시다는 강한 증거이다. 하나님은 양식이 필요하시며 그 양식은 바로 번제이다. 우리는 절대적으로 하나님만을 위해야 한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우리의 번제로서 드릴 때 우리는 깊은 속에서 우리가 만족케 되는 확신을 얻게 된다. 우리의 만족이 곧 하나님의 만족임에 대한 증거이다.


자신을 위한 생명과 하나님을 위한 생명

 

우리는 반드시 어떤 생명이 절대적으로 하나님을 위한 생명인가에 대해 분명해야 한다. 우리의 생명은 바로 자신을 위하는 생명이지, 하나님을 위하는 생명은 아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위하기 위해 자신을 아무리 훈련한다 해도 결국에는 우리 자신을 위하게 될 것이다. 그것은 원칙상 사람처럼 음식물을 먹도록 훈련을 받은 원숭이의 경우와 아주 비슷할 것이다. 당신이 원숭이에게 사람의 방식으로 음식물을 먹도록 아무리 많은 훈련을 시킨다 해도 그 원숭이는 그 자신의 방식으로 되돌아갈 것이다. 왜냐하면 원숭이에게는 오직 원숭이의 생명이 있기 때문이다. 원숭이가 사람의 생명을 얻지 않고서야 어떻게 사람이 될 수 있겠는가? 마찬가지로 우리의 생명은 자신을 위한 생명이다.

 

나는 사람들이 어떤 사람을 자기 중심적이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 당신은 그 사람을 자기 중심적이라고 말할지 모르나 나는 당신은 어떠냐고 묻고 싶다. 나는 자기 중심적인 사람에 대해 염려하지 않는다. 나도 동일하다. 어떤 의미에서 나는 우리가 이야기하고 있는 그 사람보다 더 자기 중심적일지 모른다. 내가 아내들에게 그들의 남편들이 자기 중심적이냐고 물을 때 그들이 그렇다고 대답한다면 나는 그들에게로 질문을 돌릴 것이다. 우리는 모두 자기 중심적이다. 다른이들을 자기 중심적이라고 정죄할 필요가 없다. 우리 모두가 똑같다.

 

그러나 할렐루야! 우리가 얻을 수 있는 또 다른 생명이 있다. 우리는 그분과 하나될 수 있으며 또 그분을 의지할 수 있다. 우리는 우리의 번제이신 그리스도와 하나될 수 있다. 그분은 우리 안에 계시며 절대적으로 하나님을 위하는 생명이시다. 우리의 생명은 자기 중심적이지만 그분의 생명은 하나님 중심적이다.


번제의 취급

 

레위기 1장에 따르면 번제물을 선물하는 사람들은 그것을 반드시 잡아서 껍질 또는 가죽을 벗기고 각(脚)을 떠야 한다. 그 다음 내장과 정갱이와 다른 모든 부분들을 물로 씻어서 불살라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가 잡고 가죽을 벗기고 각을 뜰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우리의 생명은 이렇게 하지 못한다. 잡기 위한 생명, 껍질을 벗기기 위한 생명. 각을 뜨기 위한 생명, 씻기 위한 생명은 결국 그리스도이다. 당신은 당신 자신을 각 뜰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는가? 당신은 그럴 수 없다. 이렇게 할 수 있는 오직 한 생명은 바로 그리스도이시다.


실제적인 적용

 

당신이 다만 그리스도와 하나인 곳인 당신의 영 안에 머문다면 거기에 어느 정도 죽임과 어느 정도 껍질을 벗김과 어느 정도 각을 뜸과 씻음이 있을 것이다. 더 나아가 어느 정도 불사름이 있을 것이다. 우리가 영 안에 머무름으로써 그리스도와 하나인 것을 깨달을 때 거기에는 어느 정도의 죽임이 있을 것이다. 당신이 주님과 하나됨 안에 머문다면 어느 정도의 죽임이 당신에게 발생할 것이다. 그리고 어느 정도의 가죽을 벗김과 어느 정도의 각을 뜸이 있을 것이다. 우리가 영 안에서 그리스도와 하나라면 죽임과 껍질을 벗김과 각을 뜸과 씻음과 결국에는 우리가 재가 될 때까지 불사름을 체험할 것이다. 우리가 재가 될 때, 그것은 곧 하나님이 우리의 선물을 받으셨다는 강한 증거이다.

 

시편 20편 3절은 이렇게 말한다. 『네 모든 소제를 기억하시며 네 번제를 받으시기를 원하노라』. 몇몇 구절의 각주에 따르면 이 구절 속의 「받으시기를」이라는 말은 원어에서 「재가 되게 하시기를」을 의미한다. 하나님이 우리의 번제물을 재로 바꿔놓으실 때, 그것은 그분이 우리의 번제물을 받으셨음을 의미한다. 미국 표준역의 각주는 「받으시기를」이라는 단어가 히브리어에서 「기름으로 받으시기를」을 의미한다고 말한다. 히브리어에서 「재」에 상응하는 단어는 「기름」이라는 단어와 동일하다. 우리의 눈에 그것은 재이지만 하나님의 눈에는 기름이다. 그것은 재이나 하나님은 그것을 기름으로 받으셨다. 그것은 기름으로 하나님을 기쁘게 하며 만족케 해드리는 것이다.

 

우리가 재가 될수록 우리는 더 없어지고 하나님께는 기름이 되어드리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께 달콤한 어떤 것이며, 하나님께서 우리의 번제를 받으시는 길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선물을 달콤한 번제로 받으시는지를 우리가 어떻게 아는가? 그것은 우리가 오직 재 이외에 아무것도 아님을 깨닫는 때이다.

 

우리가 스스로 불살라지기를 시도해서는 안 된다. 당신이 아무리 많이 시도하건 그것에 상관없이 당신은 달아나게 될 것이다. 도리어 당신이 단지 재 이외의 어떤 것도 되지 않으려 할수록 당신은 무언가가 될 것이다. 불태워지려 하지 말고 재가 되려 하지 말라. 다만 영 안에 머무름으로써 그리스도를 당신의 번제로 취하라. 그럴 때 죽임과 껍질을 벗김과 각을 뜸과 씻음과 불사름이 있을 것이고 결국에는 재가 있을 것이다. 집회에 올 때마다 우리는 반드시 그러한 번제이신 그리스도를 가지고 와서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께 선물해야만 한다. 이것이 하나님께 드리는 양식이다. 이것이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경배에서 실제가 되시는 그리스도이다.

 

주님께서 우리 모두를 그러한 방식으로 번제이신 그리스도를 체험하는 실제 안으로 이끄시기를 앙망한다. 우리는 죽임과 껍질을 벗김과 각을 뜸과 씻음과 불태움이 올 때 우리가 그리스도와 하나됨으로써 아주 기꺼이 이 모든 것들을 취하게 되는 그러한 방식으로 그리스도를 누릴 필요가 있다. 그것은 우리 스스로가 그것들을 취함에 있지 않고 그리스도와 하나됨에 있다. 우리에게 그러한 깊고 깊은 체험들이 필요하다. 그럴 때 그러한 그리스도를 가져온 집회에서 그것은 하나님께 참된 누림이 될 것이다.


그리스도의 덮개

 

번제에 관해서 한 가지가 더 있다. 제사장들과 번제를 드리는 사람들은 그것의 어떤 부분도 먹도록 허락되어 있지 않으며, 그것은 전적으로 하나님만을 위한 것이다. 그러나 가죽은 번제를 선물하는 그 제사장을 위한 것이다. 만일 우리가 번제를 드린다면 그것은 불살라져서 하나님을 위한 재가 되겠지만 가죽은 우리의 것이 될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그리스도를 우리의 번제물로 드리면 드릴수록 우리는 더 그분으로 가리워질 것임을 의미한다. 하나님은 번제이신 그리스도를 누리시며 이 그리스도는 우리의 덮개가 되신다. 바꿔 말해서 우리가 번제이신 그리스도를 하나님께 드리면 드릴수록 우리는 더 그리스도 안에 있게 될 것이다. 우리는 다만 그리스도로 가리워질 것이다.

 

어떤 사람은 그 자신이 그리스도 안에 있지만, 많은 경우 자신에게서 그리스도를 발견하기가 어렵다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그가 그리스도를 번제로 체험하고, 회막에서 그분을 하나님께 선물하면 할수록 그는 더욱더 그리스도로 가리워질 것이다. 그가 그리스도의 덮개 아래 있을 때 그는 이 덮개에 참여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누림에 참여하실 때 그는 덮개에 참여하는데 이는 가죽이 그의 몫이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가 이런 점을 주님께 가져가서 기도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레위기 1장의 번제에 관한 이 구절들을 몇 시간 동안 기도로 읽을 필요가 있다. 그럴 때 주님이 우리에게 무언가를 말씀해 주실 것이다. 우리는 예표론의 가르침이나 어떤 교리를 위하여 여기에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실제이신 그리스도에 대한 보다 깊은 어떤 것을 위하여 여기에 있다. 그리고 이것은 실제이신 그리스도를 체험하는 길일 뿐 아니라 그분을 우리의 실제로서 누리는 길이기도 하다. 이렇게 누리고 체험할 때 집회에서 번제이신 그리스도를 하나님께 선물하고 그리스도의 덮개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아주 많아질 것이다.


위트니스 리
[실제이신 그리스도, "하나님의 요구들과 하나님의 양식", 한국복음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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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7 마음과 영의 처리 청지기 12.04.20.13:57 1165
136 자신을 숨기시는 하나님 청지기 12.04.20.13:53 1259
135 애정(affection) 청지기 12.04.20.13:50 1006
134 부활 후의 십자가의 부르심(2) 청지기 12.04.20.13:45 1030
133 부활 후의 십자가의 부르심(1) 청지기 12.04.20.13:37 978
132 깊은 곳과 깊은 곳이 서로 부름 청지기 12.04.20.11:21 107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