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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교회들에 대한 저명한 크리스찬단체들의 증언 ② / 행크 해네그래프
행크 해네그래프<크리스천리서치연구소장>
삼위일체 등 ‘합당한 교리’와 ‘합당한 실행’ 둘 다 모두 전념
“그들은 신약 기독교의 진정으로 믿을만한 표현
현대 기독교회에 제공해 줄 것 많이 갖고 있어”
◇…본 고는 미국 크리스천리서치연구소(Chirstian Research Institute) 소장 행크 해너그래프(Hank Hanegraaff)의 지방 교회에 대한 연구조사 평가이다. CRI는 미국교회의 이단종파(cult) 연구에 권위있는 연구소로 ‘성경으로 답변하는 사람’이라는 전국적인 라디오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편집자주.
나는 크리스천리서치연구소(CRI)의 대표이자 라디오 방송 프로그램인 ‘성경으로 답변하는 사람(Bible Answer Man)’의 진행자로서 지방교회들과 그들의 출판물과 배포 기관인 리빙스트림 미니스트리(Living Stream Ministry)를 둘러 싼 논쟁들에 관해 비교 검토해 달라는 부탁을 개인적으로 받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기본 연구조사 계획에 착수하였는데, 이것은 그들의 출판물들뿐 아니라, 그들의 교회들과 리빙스트림 미니스트리에 관련된 프로그램들과 관련자들과의 상호접촉과 대화를 포함한 것입니다.
나는 신뢰할만한 동료였고 지금도 그러한 그레첸 파산티노와 크리스천 리서치 저널(Christian Research Journal)’의 엘리옷 밀러(Elliot Miller)에게 이 과정에 합류해줄 것을 부탁하였습니다. 지금 기본 연구조사는 여전히 진행 중인데, 아래의 진술문은 반론의 여지가 없는 것입니다.
지방 교회들로 알려진 크리스천 운동에 대해 그레첸 파산티노가 쓴 탁월한 평가에 대해 이 서언을 쓸 수 있다는 것을 매우 기쁘게 생각합니다. 그레첸은 우리 주님이며 구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훌륭하면서도 겸손한 종의 전형적인 귀감이 되는 분이십니다. 그분은 사람들을 자신들의 논쟁으로 끌어당기기보다는 회심자들을 전능하신 하나님께 끌어당기는 데 더 많은 관심을 가진 새로운 유형의 변증학자의 표상입니다. 지방 교회들은 이 점에 대한 대표적인 경우입니다. 그레첸과 그의 남편 밥(Bob)은 1970년대 중반에 그 운동에 대한 최초의 평가를 내렸습니다. 이 소책자에서 묘사된 여러 이유들로 인하여 그 평가는 불완전한 것이었으므로 결함이 있었습니다. 불행하게도 그것은 전 세계적으로 워치만 니와 위트니스 리의 업적을 향해 퍼붓는 많은 비판들의 근거가 되고 말았습니다. 참으로 그것은 내가 크리스천 리서치 연구소(CRI)의 대표직을 맡았을 때 인계받은 사역 명세서의 배경이 되었습니다.
첫째로 지방 교회들은 신학적인 관점에서 볼 때 이단종파(cult)가 아닙니다. 신학적 관점에서의 이단종파란 본질적인 크리스천 교리를 양보하여 절충하고 혼란시키고 반박하면서도 크리스천이라고 주장하는 사이비 크리스천 조직이라고 정의할 수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나는 대환난의 때나 천년왕국의 의미와 같은 부차적인 논점들에 있어서는 이 운동과 심한 차이가 있지만, 성경적인 정통을 정의하는 본질적인 문제들에 있어서는 지방교회들과 어깨동무하며 함께 서 있습니다.
예를 들면, 삼일성(Trinity, 삼위일체)에 관하여 말할 때 우리는 영원히 구분되시는 세 위격 안에 계시된 한 분 하나님(One God)이 계시다는 실재 안에서 하나로 일치됩니다. 비록 우리는 특정한 성경 구절들을 해석하는 것에서는 차이가 있을지라도, 앞에서 말한 전제(前提)는 손상될 수 없습니다. 오래 지속된 기간 동안 지방 교회들의 구성원들과 서로 대화를 나누면서 오늘날 복음주의 공동체의 대다수가 애석하게도 놓치고 있는 교리적 정확성에 대한 예리한 관심이 그들 안에 있음을 목격하게 되었다는 것은 특기할만 합니다.
둘째로, 지방 교회들은 사회학적인 관점에서 볼 때도 이단종파가 아닙니다. 사회학적인 관점에서의 이단종파란 그 추종자들이 사실상 그들의 삶의 모든 면에서 강력한 지도자의 통제를 받는 종교적 혹은 준(準) 종교적 분파입니다. 그 추종자들의 특색은 ‘교주’와 그 단체에게 약자로서 맹종하는 것이고, 신체적 혹은 심리적 협박의 술책을 통해 자극을 받고 돌연한 집단행동을 하는 것입니다. 상상 가능한 일들 중 가장 흉악한 행동에 연루된 사회학적인 이단종파들과 함께 지방 교회들이 무자비하게 한 묶음으로 취급되었다는 것은 불행 중 불행입니다. 이렇게 이단종파로 분류한 것이 세계 곳곳의 여러 지역에 있는 지방 교회들의 구성원들을 박해하고 투옥하는 일에 사용되었다는 것은 실로 비극이 아닐 수 없습니다.
지방 교회들은 신약의 기독교의 진정으로 믿을만한 표현입니다. 더구나 그들은 극심한 박해를 거쳐 연마된 단체로서 서방기독교에 제공해 줄 유익한 것을 많이 갖고 있습니다.
이런 면에서 세 가지가 즉시 생각납니다. 첫째는 그들이 신언(神言, prophesying)을 실행하는 것인데, 이것은 장래의 일을 미리 말하는 예언의 의미가 아니라 고린도전서 14장에 있는 대로 권면하고 함양하고 격려하고 교육하고 장비시키고 성경을 해설하는 의미로 신언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실행을 하면서 그 구성원들은 단체적으로 말씀을 통하여 경배에 참여하게 됩니다.
둘째는 그들이 (성경 공부에 더하여) 말씀을 기도로 읽는 것(pray-reading)을 실행하는 것인데, 이것은 기도 안에서 성경말씀을 마음에 받아들이는 것과 하나님과의 효과적인 영적 교제를 연결하는 의미 깊은 고리입니다.
셋째는 주님의 지상명령(마태복음 28:19)에 그들 자신을 뜨겁게 헌신하는 것입니다. 만일 초대교회 그리스도인들에 한 가지 두드러진 특징이 있었다면, 그것은 바로 예수님만이 사람의 마음에 가져다 줄 수 있는 사랑과 기쁨과 평화를 전달해주는 그들의 열정일 것입니다. 우리가 비밀주의 시대에 자기 입장을 굳히게 되었을 때, 진정한 믿는 이들이 삶의 모든 행동 방면에서 이 열정을 열심히 배우는 것은 필수적입니다. 나는 영국의 런던과 한국의 서울과 중국의 난징 같이 멀리 떨어진 지방 교회들에 있는 그리스도안의 형제 자매들과 함께 교통하며 그 열정을 직접 목격하였습니다. 요약해서 말한다면, 광범위한 종파들의 그리스도인들과 함께 지방 교회들은 합당한 교리(정통: orthodoxy)와 합당한 실행(바른 행동:orthopraxy) 둘 모두에 전념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본질적인 것들에서는 일치되고, 비본질적인 것들에서는 자유를 갖고, 다른 모든 것들에서는 자비를 베풀라”는 격언대로 행진하고 있습니다. 아마 우리는 휘장의 이편에 있는 부차적인 논점들을 계속하여 토론할 것이지만, 오직 믿음으로, 오직 은혜로 말미암아, 오직 그리스도 때문에 우리를 구원하신 분에 대한 지식 안에서 자라가며 함께 영원을 지내게 되리라는 것을 나는 추호도 의심하지 않습니다.
출처 : 교회연합신문 http://www.ecumenicalpress.co.kr/ 하나님의 이기는 자들 https://cafe.daum.net/overcomer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