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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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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에게는 자유 의지가 있어서 자기 일을 결정할 권한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죄인이 거듭나서 믿는이가 된 후에도 여전히 많은 시험을 받게 된다. 미련함 혹은 선입감 때문에 많은 믿는이들은 자기의 영과 영의 직감에게 합당한 지위를 내어 주지 않는다. 하나님은 이 영을 그분과 사람이 교통하는 유일한 장소로 보시고 사람이 그분을 경배하고 왕래하는 유일한 장소로 보신다. 그러나 믿는이는 자기의 생각이나 감정을 좇아 행하므로 많은 때에 직감의 소리를 상관하지 않는다. 그가 일하는 원칙은 그가 일리 있고 선하고 좋아하며 흥미 있게 보이는 것들을 좇아 행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을 준행하고자 하는 갈망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대개가 심중의 돌발적인 사상 혹은 비교적 일리 있는 사상을, 하나님의 뜻으로 여겨서 행할 뿐이며 자기가 좇아 행해야 할 것이 자신의 사상이 아닌 직감으로 말미암아 영이 표현된 영의 뜻인줄을 모른다. 또 때로 직감의 소리를 듣기 원할지라도 자기의 감정을 잠잠한 위치에 두지 못하므로 마음이 오르락 내리락 하게 하여 직감의 소리를 혼란시킨다. 그러므로 영을 좇아 행하는 것은 믿는이의 생활에서 우발적인 일이 되고 일상생활의 항구적인 체험이 되지 못한다...
가장 안타까운 것은 오늘날 믿는이들이 모든 면에서 자라고 있으나 그들의 영과 하나님과 교통하는 영이 여전히 자라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들 중에는 주님을 믿은지 수 년이 되었는데도 『내게 영이 있다고 느끼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우리의 생각과 하나님의 사상은 얼마나 다른지! 우리는 항상 고린도인같이 생각의 지혜로 소위 많은 「영적인 지식」을 추구한다. 또 우리는 그런 지식을 많이 얻었다. 그러나 생각의 성장은 직감의 성장을 대치할 수 없다. 하나님 보시기에 우리는 여전히 변한 것이 없다. 오늘 이후로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는 성장은 우리의 지식과 은사와 구변이 아님을 기억해야 한다. 그분은 오직 우리의 영과 영적 생명과 영의 직감이 성장하기를 원하신다. 그분이 바라는 것은 우리가 거듭날 때에 영접한 새 생명이 자라는 것이다. 옛 창조를 완전히 거절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분은 우리가 구변과 지식과 은사가 많아도 여전히 육에 속하고 어린아이이며 영적 생명이 조금도 진보하지 않는 믿는이라고 하실 것이다.
워치만 니
[영에 속한 사람, p.361, 373, 한국복음서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