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말씀을 누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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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심(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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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심은 믿는이의 영의 창문이다. 하늘의 빛이 바로 이곳을 통해 비추어진다. 그러므로 믿는이의 영과 온 존재가 빛으로 충만하게 한다. 믿는이의 온 존재와 그의 영이 하늘의 빛을 보는 곳도 바로 이 부분에서이다. 우리가 생각하고 말하며 행하는 바가 잘못되고 성도의 체통에 합당히 행하지 않을 때 하늘의 빛은 양심 안에서 빛을 비추사 우리의 과실을 드러내시고 우리의 실패한 죄를 정한다. 만일 우리가 양심으로 하여금 역사하게 하고 양심의 소리에 순종하며 양심이 정죄하는 바를 제해버렸다면, 다음의 하늘의 빛이 더욱 밝게 비추일 것이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우리의 잘못을 시인하지 않고 죄들을 제해 버리지 않는다면 죄의 흔적은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며 양심은 더렵혀질 것이다(딛 1:15). 이는 그가 하나님의 빛의 가르침대로 좇아 행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렇게 하루하루 죄가 더해지고 흔적이 많아질 때 이 창문(양심의 창문)은 점점 희미하게 보인다. 믿는이가 임의로 죄를 범하고도 괴로워하지 않고, 양심이 억압을 당하며 직감이 죄로 마비될 때에 이 빛은 우리를 비추기 어렵다. 믿는이는 신령할수록 그 양심이 더욱 예민해진다. 결코 죄를 자복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신령한 믿는이가 없다. 양심이 둔해져 아무런 감각이 없을 정도가 된 사람의 영성은 필히 타락한 것이다. 위대한 지식과 부지런한 수고와 감정적인 흥분과 의지의 강인함도 양심의 예민함을 대치할 수 없다. 만일 믿는이가 자신의 양심을 주의하지 않고 생각과 감정의 진보를 추구한다면 영성의 노정에서 그는 뒤로 후퇴한 것이다...


믿는이는 자신의 양심이 이렇게 중요하다는 것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은 영을 좇아 행하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의 양심에 거리낌이 있을 때에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담대하지 못하게 되고,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담대하지 못할 때 우리와 하나님과의 교통은 즉시 간격이 생기게 된다. 양심의 거리낌은 직감에서의 하나님과의 교통을 가장 방해한다. 만일 우리가 그분의 명령을 좇지 않고 그분이 기뻐하시는 것을 행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마음은 자연히 책망과 거리낌이 있게 되고 하나님 앞에서 위축되며 우리가 구하는 것도 얻지 못하게 된다. 오직 「청결한 마음」으로라야 『하나님을 섬길 수 있다』(딤후 1:3). 거리낌이 있는 양심은 직감이 전진하지 못하고 뒤로 물러서게 한다. 『우리가 세상에서 특별히 너희에게 대하여 하나님의 거룩함과 진실함으로써 하되 육체의 지혜로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은혜로 행함은 우리의 양심의 증거하는 바니 이것이 우리의 자랑이라』(고후 1:12). 이 구절은 양심의 증거에 대해 말한다. 오직 거리낌 없는 양심만이 믿는이를 위해 간증할 수 있다. 사람의 간증이 좋기는 좋으나 그 사람 양심의 간증이 더욱 보배로운 것이다. 사도는 이것을 자랑한다고 말한다. 영을 좇아 행하는 노정에서 우리는 이 양심의 간증을 가져야 한다.


워치만 니
[영에 속한 사람, p.393-395, 한국복음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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