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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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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는이의 생각이 이 방면에서 악한 영의 공격을 받은 후에 그는 자기의 머리가 아무 것도 생각할 수 없는 것처럼 감금되어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자기 속에 무언가 부족한 것같이 무엇을 생각하려고 할 때마다 언제나 어지러운 느낌을 갖게 되고 속에 어떤 것도 산출되지 않는다. 믿는이의 생각하는 능력이 일단 묶이면 믿는이는 자연히 모든 일에 대해 치우친 관점을 갖게 된다. 이러한 사람의 관점에서 보기에는 흙더미가 태산같이 보인다. 모든 일이 맑은 하늘을 오르는 것보다 더 어려운 것 같다. 특별히 그는 생각을 사용해야 할 일들을 아주 두려워 한다. 또한 다른이와 왕래하고 말하는 것이 아주 어렵기 때문에 이러한 일을 싫어한다. 날마다 안전하게 전진하고 수고하고 일하는 것은 그에게는 생명을 요구하는 것과 같다. 그의 속에는 마치 남들이 이해할 수 없는 무형적인 사슬이 있는 것 같다. 자기 속에는 또한 이렇게 종노릇하는 것이 가장 불편한 것이고 평상시 이것에 반발하는 뜻이 생기게 된다. 그러나 자기 스스로는 거기서 나오지 못한다. 이러한 원인은 그의 생각이 악한 영의 속박을 받아서 생각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될 때 믿는이는 다른 것을 하지 않고 매일 꿈 속에 있는 것같이 지내게 된다. 이렇게 세월을 낭비하게 된다. 아무 생각과 사상이 없이 또한 아무 추론과 이해와 의식이 없이 곧 아무 데도 신경 쓰지 않고 나날을 보내게 된다. 생각이 이렇게 공격을 받은 후에 의지는 자연히 연이어 영향을 받게 된다. 이는 생각이 의지의 빛이기 때문이다. 그는 피동적으로 그의 환경에 의해 이리 저리 흔들리게 되고 아무 것도 선택할 수 없게 된다...
생각이 피동적이므로 악한 영에 의해 점유된 믿는이는 이미 결정한 문제에 대하여 절대로 남의 이유와 증거를 들으려 하지 않는다. 만약 누가 그를 더 이해시키려고 하면 그는 그가 자기의 자유를 침범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가 보기에 자기에게 무엇을 알려준 사람은 아주 어리석고 자신이 이해한 것을 영원히 깨달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의 생각이 극단적이고 틀릴 수도 있는데 그는 자기에게 말할 수 없는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그의 생각이 완전히 피동적이고 자기 이성으로 추론하고 분별하며 판단할 줄 모르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는 제 멋대로 악한 영이 그에게 주입해준 모든 사상을 받아 들이고 그것을 가장 완전한 것으로 생각한다. 혹 그는 초자연적인 음성을 듣고 그것을 하나님의 뜻으로 여기고 그러한 음성의 말을 자기의 율법으로 삼는다. 그러므로 여하를 막론하고 누구도 그로 하여금 다시 이성을 사용하여 그 음성의 근원을 듣게 할 수 없다. 만일 그가 무슨 사상을 받았거나 혹 무슨 음성이나 가르침을 듣고서는 자기는 영영 틀리지 않고 절대적으로 확고한 것으로 생각한다. 그는 다시 시험해 보고 살펴보며 상고해 보거나 추론해 보지 않고 폐쇄적이고 방어적이게 되어 더 이상 다른 것을 알려고 하지 않는다. 자기의 이성과 양심과 다른 사람의 해석과 이론은 그를 조금도 움직일 수 없다. 일단 그를 인도한 분은 하나님이라는 것을 믿은 이상 그의 머리는 인봉해 둔 것같이 엄숙하고 개선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가 이렇게 자기의 이성을 사용하지 않는 결과로 그는 악한 영의 어떠한 속임수를 당하고서도 그것을 알지 못한다. 조금이라도 눈이 뜨인 사람이라면 그의 위험성을 알지만 그 자신은 알지 못한다. 악한 영에 의해 이 정도로 역사된 사람은 가장 회복하기가 어려운 사람이다.
워치만 니
[영에 속한 사람, p.614-615, 618-619, 한국복음서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