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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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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체험이 우리에게 가르쳐 준 한 가지 일은 믿는이가 이렇게 진리를 깨닫고 생각 속의 자신의 주권을 잃었다는 것을 알고 주권을 일으키고 거둘 때에 악한 영은 믿는이의 고초를 이전보다 몇 배나 더하기 위해 사람 속에 최종적인 발버둥을 친다. 이럴 때 악한 영은 또한 그들의 상습적인 거짓말로 믿는이에게 그가 다시는 자유함을 얻을 수 없고 그가 이미 너무 심하게 피동적인 데 떨어졌으며, 하나님은 더이상 은혜를 베풀기 원치 않으며 만일 그가 대적하지 않고 그냥 내버려 두어도 문제가 없고 영원히 구원받을 수 없기 때문에 분투할 것 없고 스스로 고통을 자초할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믿는이는 악한 영의 은혜로 살아서는 안된다는 것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죽을지라도 그는 자유함을 얻어야 한다. 구원받을 수 없을 정도로 피동적이게 된 사람은 하나도 없다. 어찌하든지 하나님은 그를 위하심으로 그는 반드시 자유함을 얻을 수 있다... 믿는이는 반드시 선택해야 한다. 여기의 문제는 믿는이가 오랫 동안 악한 영의 꼭두각시가 되기를 원하는가에 달렸다. 믿는이 스스로 선택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구원받을 가능성이 없다. 이것은 믿는이가 이미 무슨 확신이 있다는 뜻이 아니라 믿는이가 진정 악한 영의 공격을 반대하느냐는 것이다.
믿는이가 이렇게 한 단계 한 단계 원래의 지위를 되찾을 때 그 효력은 점차적으로 나타난다. 처음 원래의 상태를 되찾으려고 할 때 더욱 악화되는 것 같다. 그러나 믿는이가 원래의 지위를 되찾기를 견지한다면 악한 영은 점차적으로 능력을 상실하고 아무 것도 할 수 없게 될 것이다. 원래의 지위를 점차적으로 되찾을 때 각종 현상도 점차적으로 줄어들 것이다. 믿는이는 자기의 생각과 기억과 사상과 이성을 점차적으로 주장할 수 있고 사용할 수도 있으며 악한 영이 더이상 전과 같이 공격할 수 없다는 것을 발견할 것이다. 이럴 때 또 한 가지 위험은 믿는이가 아직 원래 지위를 완전히 회복되기 전, 아직 완전히 원래의 상태로 회복되기 전에 믿는이가 자족하고 만족스럽게 여겨 계속적인 싸움을 하지 않는 것이다. 이렇게 여지를 남겨 두는 것은 장래 악한 영이 죽은 재 속에서 다시 불살라질 가능성을 부여하게 된다. 믿는이는 반드시 완전한 자유에 이르기까지 주권을 계속 되찾아야 한다. 믿는이가 십자가의 기초 위에 서서 생각으로써 악한 영의 공격과 낡은 생각들을 거절한다면 얼마 안 되어서 완전한 자유를 얻게 된다. 믿는이는 자신이 자기의 모든 사상의 주인이 되었는지를 살펴 보아야 한다.
워치만 니
[영에 속한 사람, p.628-630, 642-643, 한국복음서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