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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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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는이가 병을 앓을 필요가 없을 때 하나님은 무엇 때문에 질병이 그를 떠나게 하지 않으시는가? 이것이 많은 사람들이 묻는 바이다. 우리가 알듯이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대로 우리를 온전케 하신다(마 8:13). 이것은 영원히 그분이 우리를 다루시는 원칙이다. 많은 때에 하나님은 그분의 자녀를 치료하길 원하신다. 그러나 그들에게 이러한 믿음이 없고 또 이러한 기도가 없기 때문에 하나님은 할 수 없이 그들이 계속 병을 앓게 하신다. 만일 믿는이가 질병을 용납하거나 더 심하게는 질병을 환영하고 질병이 세상을 벗게 하고 더 거룩케 한다고 생각한다면 주님은 그들이 구하는 바대로 그들에게 주신다. 하나님은 늘 그분의 자녀가 받을 수 있는 대로 그들을 다루신다. 혹 하나님은 그들을 치료하기를 가장 기뻐하는 분일 것이다. 그러나 그들에게 믿음으로 간구하는 것이 없기 때문에 그들은 이러한 은사를 얻지 못한다. 우리는 하나님보다 더 지혜롭거나 성경이 계시해 준 것을 뛰어넘을 수 없다. 비록 병실이 때로 성소와 같아서 속 사람에게 감동을 주지만 이것은 하나님이 정하신 뜻이 아니요 하나님의 「가장 좋은 것」도 아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의 감정에서 난 의견을 따르고 하나님이 계시해준 뜻을 생각하지 않는다면 하나님도 할 수 없이 우리를 내버려두신다. 많은 믿는이들은 결과가 어떠하든 무조건 하나님의 손에 맡기는데 그들은 치료받아도 좋고 병을 앓아도 좋고 하나님이 주장하시게 하고 자기를 다루시게 자신을 내어준다... 사실 많은 믿는이들은 오랫동안 침상에 누워 있기 때문에 의지의 능력을 상실했다. 이 때문에 그는 힘써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지 못한다. 그의 이러한 순종은 사실상 영성의 게으름일 뿐이다. 그의 마음도 역시 강건함을 좋아한다.
이러한 자세는 하나님으로 역사하시게 하지 못한다. 많은 믿는이들은 피동적으로 질병을 오랫동안 순종하는데 결국 병든 것이 습관화되어 자유함을 구할 담력조차도 없어진다. 그는 다른 사람이 자기 대신 믿어주기를 바라거나 하나님이 그를 내버려두는 동시에 그에게 믿음을 주시고 그로 믿게 하기를 원한다. 그러나 만일 그의 의지가 활동적이지 않고 마귀를 대적하고 주 예수를 붙잡지 않는다면 하나님이 주신 믿음은 그에게 임하지 않는다. 많은 병자들이 본래 그들이 앓아야 할 필요가 없는 병을 앓고 있는데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약속을 취할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병을 앓을 때 얻은 영성의 축복이 치료받을 때 얻은 것보다 훨씬 못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자기 자신을 그분께 드렸다면 자연히 우리는 치료받은 후에도 여전히 거룩하게 나날을 보내야만이 우리의 건강이 지켜질 수 있다. 주님이 이렇게 우리를 치료하실 때 그분은 우리의 몸을 얻게 된다. 이러한 기쁨은 정말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다. 이는 치료를 받았기 때문이 아니라 주님과 새로운 관계를 가졌고 주님에 대한 새로운 체험을 가졌기 때문이요 주님과의 접촉을 갖고 새로운 생명을 얻었기 때문이다. 이럴 때 믿는이는 병을 앓을 때 보다 더욱 주님을 영화롭게 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은 마땅히 일어나서 치료하심을 구해야 한다. 먼저 하나님 앞에서 그분이 질병을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고자 하는 것을 듣고 그런 다음에는 전일하게 그분이 계시해 주심을 따라 행해야 한다. 그런 다음 우리의 몸을 전적으로 그분 손에 맡기고 그분께 드려야 한다. 만일 우리가 우리를 위해 기름을 발라 줄 수 있는 「교회의 장로」(약 5:14-15)가 있다면 청하여 성경의 명령대로 행하라. 그렇지 않으면 잠잠함 가운데서 믿음으로써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으라(출 15:26). 하나님은 우리를 치료하기 원하신다.
워치만 니
[영에 속한 사람, p.798-799, 한국복음서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