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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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겟세마네가 우리에게 말해 주는 것은 하나님께 싫어 버린 바 되는 것과 이 싫어 버린 바 됨에서 산출된 모든 것이다(사 53:4). 우리는 그분의 십자가의 속죄의 방면은 분명히 알지만, 그분의 십자가에는 여전히 외면적으로는 하나님에 의해 싫어 버린 바 된 방면이 있다. 이것으로 인해 그분은 극도의 수치를 당하셨다. 그분이 이전에 받은 많은 고난 가운데에는 하나님이 그 안에 계셨기 때문에 여전히 영광스런 면이 있었다. 그러나 이 시점에서 그분은 사람에게 싫어 버린 바 되셨을 뿐 아니라 하나님께도 싫어 버린 바 되신 것처럼 보이며, 그분이 당하신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치심과 학대인 것 같다. 여기에서도 하나님의 손을 볼 수 있는데, 하나님의 치심으로 말미암아 그분은 사람에게 싫어 버린 바 되었으며, 이것은 그분에게 가장 큰 수치가 되었다.
십자가의 속죄의 방면에서 주님은 우리와 연합되신 적이 없다. 그러나 주님은 그분의 십자가의 다른 방면 안에서 우리가 그분과 교통을 갖기를 원하신다. 과거에 우리가 만난 문제는 죄악과 세상과 사단과 천연적인 것에 불과했다. 우리가 비록 십자가의 고난과 십자가의 모형을 만나긴 했지만, 하나님에 의해 싫어 버린 바 됨과 사람에게서 수치를 당하는 것에 대해서는 체험이 깊지 않기 때문에 전혀 낯설을 것이다. 주님은 여기서 문을 두드리며, 『나에게 열어다오』라고 말씀하신다. 그 뜻은, 다시 한번 그분께 마음의 문을 열어 주고, 다시 한번 밤 이슬로 가득한 주님을 영접해 달라고 믿는이를 부르는 것이다. 그녀는 여전히 하나님에 의해 싫어 버린 바 되는 것이 무엇인지를 배워야 하며 여전히 십자가의 더 깊은 오해와 수욕을 배워야만 한다. 그분이 그녀를 누이라고 부르시는 것은 그녀 안에 있는 하나님의 생명에 근거한 것이다. 「나의 사랑하는 자」는 하나님의 뜻에 대한 그녀의 인식을 말한다. 「나의 비둘기」는 성령의 성품을 말한다. 「나의 완전한 자」. 이것은 그녀의 성결과 정결과 헌신을 말한다. 그러나 그분이 결코 「신부」를 언급하지 않으신 것은 그녀가 어떻게 대답하는가에 따라 그녀가 신부가 되어 완전히 연합할 수 있는지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주님이 그녀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그분을 향해 이렇게 열어 달라는 것이다. 그녀는 이전에 이미 자신을 열어 주님을 왕으로 받아들인 적이 있는데, 이제 주님은 그녀 자신을 열어 그분을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로 받아들이라고 하신다. 이제 주님은 그녀를 이끌어 그분과 함께 고난받고 그분의 죽음을 가장 깊은 방법으로 배우도록 하신다. 그렇지 않을 때 주님은 억지로 그녀가 가기를 원치 않는 길로 가게 하실 수 없다. 그러므로 그분은 문을 두드리고 간청하시면서 믿는이가 자원할 때까지 기다리시는 것이다.
워치만 니
[워치만 니 전집 2집 23권 - 노래 중의 노래, p.106-108, 한국복음서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