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
- Eugene
- 조회 수 171
찬양노트 홈페이지의 시작(2)
하나님의 이기는 자들 홈페이지에 처음 '작곡방'과 '작사방'을 만들어 두었을 때 저의 생각은 이렇게 방을 만들어 두면 부담이 있는 지체들이 오셔서 기능을 발휘하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저도 대학생 때 2곡, 뉴질랜드에 와서 교파에 있을 때 3곡(처음 간증할 때는 한두 곡이라고 했었는데 생각해 보니 한 곡이 더^^)의 찬양을 만들어 본 경험이 있었고, 또 하나님의 이기는 자들 홈페이지에 '노스쇼어찬양'이라고(ㅎ) 미흡한 찬양곡들을 단선 미디음과 함께 올려 본 경험이 있었지만 제가 아닌 더 역량이 있는 다른 지체들이 오셔서 기능을 발휘해 주시기를 기대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이기는 자들 홈페이지에 회 접시에 '장식―찬양'이 필요하다는 주님이 주신 느낌과 함께 작사방에 올려진 찬양시를 보았을 때 저도 모르게 작곡에 대한 부담이 생겨났고 그렇게 저도 모르게 주님이 부어 주시는 느낌에 따라 찬양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처음 하나님의 이기는 자들 홈페이지를 시작했을 때는 제가 저희 아버지께서 시작하신 사업체에 취직이^^ 되어 있는 상태였는데 그 다음 해 9월 경에 아버지께서 사업체를 정리하셨고 저는 자연스럽게 실업수당을 신청하면서 자비량 전시간자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당시 뉴질랜드는 국민당 정부였고 한국 이민자들의 이민 초창기였던 특별한(?) 상황에서 국민당 정부는 2년 반 정도를 제가 직업을 다시 찾도록 별로 재촉을 하지 않는 주님이 역사하신(?) 특별한 시간이 주어졌었습니다(2년 반 동안 자비량 전시간자로 생활이 가능하도록... 지금은 상상할 수도 없지만).
그 시간 동안 저는 전시간으로 홈페이지에 글도 스캔해서 올리고 작곡도 하면서 주님이 부담을 주시는 대로 홈페이지를 관리하고 또 하나님의 이기는 자들 카페에 참여해서 기능을 발휘하면서 저도 온전케 되는 지체들과의 누림이 가득한―때로는 바람이 불기도 했던 시간들을 보내었습니다.
그리고 그 당시에는 저는 악보를 만들고 반주는 미디 단선음밖에 만들지 못하는 상태였는데 2002년 가을 지체들의 초대로 한국을 방문하면서 한국복음서원에서 봉사하시는 한 형제님의 도움으로 여러 악기의 반주가 나오는 미디음을 만들 수 있는 프로그램을 배울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프로그램을 배운 덕분에 그 전에는 작곡방에 악보와 함께 단선 미디음만 올리다가 여러 악기의 반주가 나오는 조금은 그럴듯한 소리가 나오는 미디 반주음을 함께 올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가 2004년 초부터 건강 상태가 좀 안 좋아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주님의 주권으로 당시 훈련을 받고 있던 한 자매님과 카드를 주고 받는 것으로 약혼을 하게 되고 건강상의 문제와 결혼, 그리고 결혼 후에 훈련을 갈 것에 대한 계획 등으로 2004년 초에 하나님의 이기는 자들 홈페이지와 카페를 내려 놓게 되었습니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