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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수은 자매의 본
일보다 생명을 더 중요시하는 데 있어서 화수은 교사는 니 형제님에게 아주 중요한 본이었다. 그는 하나님이 우리의 행함보다 우리의 어떠함을 더 중요시하신다는 것을 알았다. 그의 모든 일은 이 원칙에 따른 것이었다. 그는 화수은 교사가 어떻게 지속적으로 생명을 강조하고 그녀의 일을 조금도 개의치 않는가를 보았다.
때때로 화수은 교사와 함께 기독교에 있는 사람들의 설교를 들으러 갔다. 그는 언제나 전파하는 이의 구변과 지식과 열심과 재간 혹은 천연적인 설득력을 감상했다. 그럴 때마다 화수은 교사는 그가 경탄해하는 그것이 생명이나 영에서 나온 것이 아님을 지적해 주었다. 그가 경탄해하는 것은 사람들을 흥분시키고 어떤 일들을 하도록 자극할 수 있지만, 결코 사람들에게 생명을 공급할 수 없는 것이었다.
이러한 영적인 일의 진단을 통해 그는 가르침을 받아 생명과 일의 차이점을 분별하게 되었다. 그래서 그는 대다수의 전도자와 기독교 교사들의 설교가 생명의 씨앗이 아닌 쭉정이임을 깨닫기 시작했다. 또한 그는 대다수의 기독교의 일이 겉으로 보기에는 그리스도를 위한 것이나 그 안에 사람들에게 생명을 공급하는 것이 매우 적다는 것을 관찰하게 되었다.
주 예수님의 발자취
니 형제님은 동역자들에게, 사복음서에 따르면 주님은 사역하실 때 사람의 환영을 주의하지 않으셨으며 도리어 군중들이 그분을 찾을 때 그분이 자주 피하셨다는 것을 지적했다. 그는 자주 주 예수님은 자기 자신을 생명의 씨로 뿌리셨고(마 13:3), 한 알의 밀로 땅에 떨어져 죽으심으로 그분의 속에 있는 생명을 해방하여 많은 열매를 맺으셨다고 말했다(요 12:24).
사람들의 환영을 받는 것의 위험성
그는 나에게, 자기보다 다섯 살 위인 동역자가 두루 다니면서 전도회를 열 때 화수은 교사가 사람의 환영을 받는 것의 위험성을 알고서 그에게, 『만일 네가 곳곳을 다니며 전도의 일을 한다면 나는 더 이상 너를 위해 기도하지 않겠다.』고 경고한 적이 있다고 했다. 그녀는 선견지명이 있어서 이러한 일이 그의 영적 생명을 해치리라는 것을 알았다. 결국 그러한 일이 발생했다. 그의 그 동역자는 영적인 생명에서 사람의 환영을 받는 일에 빠지게 되었다.
니 형제님은 사람의 환영 받기를 두려워했다. 그는 명성을 얻기를 두려워했고 사람의 칭찬과 높임받는 것을 두려워했다. 그는 사람의 이러한 환영이 주님을 따르는 일에서 젊은 동역자로 하여금 생명의 올바른 노선에서 빗나가게 하는 시험의 도구임을 보았다. 그는 한 번도 사람의 멸시와 반대와 거절과 참소로 인해 괴로워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이것들을 그를 생명 안에서 보호하고 주 안에서 더 자라게 하는 일종의 안전장치로 여겼다. 이러한 이상은 그로 하여금 주님의 일에 있어서 더욱 주님과 하나 되게 하였고, 주님의 인도를 더 쉽게 따르게 하였다. 그는 주님으로부터 얻은 이상을 일의 방식이 아닌 생명의 방식으로 실행했다.
양이 아닌 질(質)을 중요시함
니 형제님은 고린도 전서 3장 12절부터 15절을 통해 우리의 일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양이 아닌 질임을 보았다. 금과 은과 보석은 언제나 양이 적고 질이 높은 반면에, 나무와 풀과 짚은 언제나 양은 많으나 질이 낮다. 나무와 풀과 짚은 불시험을 통과하지 못하나 금과 은과 보석은 불시험을 통과할 수 있다. 우리는 장래 심판대 앞에서 심판을 받게 되는데, 이것은 우리의 일의 양에 따른 것이 아닌 우리의 일의 질에 따른 것이다.
생명의 넘쳐흐름
어느 전도자가 성공적으로 많은 추종자들을 얻었다거나 어느 기독교 사역자가 방대한 일을 했다는 것을 들을 때, 그는 항상 그의 훈련을 받는 우리들에게 참된 일은 생명의 넘쳐흐름임을 알려주었다.
니 형제님의 지식과 은사와 재능에 의하면, 그는 아주 용이하게 기독교 안의 많은 추종자들을 얻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이 면에서 그의 은사와 지식을 남용하지 않았다. 은사와 지식을 적용하는데 있어서 그는 언제나 그의 일이 온전히 생명 안에 있고 생명에 속하고 생명으로 말미암으며 그의 일이 곧 생명이 되도록 최선을 다해 자기 자신을 속박하였다. 그는 자신의 사역이 생명의 넘쳐흐름이라는 확신이 있을 때에만 만족하였다.
그의 사역은 1922년부터 시작되었는데, 그의 사역 아래서 산출된 상해 교회는 1927년에 일으켜졌다. 1933년 말 내가 처음 상해에 그를 보러 갔을 때, 그곳 주의 회복 안의 모임의 성도 인수는 백여 명밖에 되지 않았다. 1928년 2월, 그가 상해에서 이기는 자 집회를 인도했는데, 참석자는 전국의 모든 동역자와 추구하는 자들이었다. 참석 인수는 삼백 명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그가 육년 이상 사역을 했지만 주의 회복의 성도 인수는 여전히 아주 적었다. 그러나 그는 실망하지 않고 도리어 큰 격려를 받았다. 왜냐하면 그 적은 숫자는 그의 사역의 열매였기 때문이다.
주님을 찬미한다! 니 형제님이 외면적인 일을 관심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의 사역의 생명의 결과는 이미 온 땅에 퍼졌다. 오늘날 그의 책을 통해 기독교계에 범람하고 있는 그의 사역의 일부는 그의 일이 아니다. 오히려 그 일로부터 나온 생명이다. 그에게 있어서 일은 아무 것도 아니었고 오직 생명만이 모든 것이었다. 내 일생에 걸쳐 알아온 사람들 중에 그만이 유일하게 일보다 생명을 더 중요시했던 사람이다.
다음은 1928년 7월 부흥보 제4기에 실린 그가 쓴 공개 서신에서 발췌한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지금 우리에게 어떤 하늘을 놀라게 하고 땅을 진동시킬 만한 큰 일을 하라고 하지 않으셨음을 깊이 믿는다. 사람들은 보이는 것을 관심하지만 하나님은 그렇게 근시안적인 분이 아니시다. 우리는 사진을 찍고 무언가 보고하는 일을 신뢰하지 않는다. 애석하게도, 하나님의 자녀들까지도 하나님이 흥분 가운데 계시지 않음을 모르고 그러한 분위기를 좋아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조심해야 한다. 듣기 좋은 말이 다 하나님에게서 나왔다고 생각하지 말라. 우리는 실로 오늘이야말로 전무후무하게 영적인 일과 혼적인 일을 구분할 필요가 있는 때라고 느낀다."
워치만 니
[금세기 신성한 계시의 선견자 워치만 니, "일보다 생명을 더 중요시 함", 한국복음서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