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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랑하는 자를 의지하고 거친 들에서 올라오는 여자가 누구인고 너를 인하여 네 어미가 신고한, 너를 낳은 자가 애쓴 그 곳 사과나무 아래서 내가 너를 깨웠노라 너는 나를 인 같이 마음에 품고 도장 같이 팔에 두라 사랑은 죽음 같이 강하고 투기는 음부같이 잔혹하며 불같이 일어나니 그 기세가 여호와의 불과 같으니라" (아 8:5-6)
그 사랑하는 자를 의지하고...
여기서 우리는 광야를 벗어나는 휴거는 결코 갑자기 발생하는 일이 아니라 주님과 한 걸음 한 걸음 동행한 것의 결과임을 본다. 휴거는 주님과 동행한 마지막 한 걸음에 일어난다. 사람이 본 것은 아마도 땅으로부터 하늘에 이르는 그 단계의 갑작스런 변화일지 모른다. 그러나 이것은 휴거의 마지막 걸음에 불과하다. 휴거의 시작은 결코 이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믿는이가 그와같이 하늘의 끌림을 받아야 한 걸음 한 걸음 세상에서 벗어나고, 한 걸음 한 걸음 세상과 더 멀어지며, 한 걸음 한 걸음 세상과의 분별에서 더욱 분명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역사가 완전케 될 때에 이르러 그녀는 자기 자신이 이미 주님 앞에서 깨어난 것을 본다.
휴거의 준비는 오늘날 사랑하는 자를 의지하여 계속 세상에서 벗어나는 것이며, 계속 올라가고 올라가서 주님이 우리를 맞이할 때까지 올라가는 것이다. 『사랑하는 자를 의지하여』. 마치 자신은 힘이 없어 걸을 수 없는 것 같다. 「사랑하는 자를 의지하여」는 곧 자신을 짐으로 여겨 사랑하는 자에게 지우는 것이다. 「사랑하는 자를 의지하여」는 마치 그녀의 다리의 힘줄이 하나님에 의해 끊어진 것 같다. 「사랑하는 자를 의지하여」는 마치 이길 힘이 없이 계속 광야의 노정을 걸어온 것 같다. 주님만이 우리를 예비하여 우리로 들림받게 하실 수 있다. 의지하는 생활이 적어서는 안 된다. 우리가 다른 것을 의지하지 않고 그분만 의지하는 단계에 이르러야만이 성령으로 하여금 이같이 「사랑하는 자를 의지하는」 그녀가 누구인가 하는 기이한 말을 하게 할 것이다.
너를 인하여 네 어미가 신고한...
주님은 대답하시기를 그녀는 다른 사람이 아니라 이전에 더러운 죄인이었는데 은혜로 찾은 바 되고, 은혜로 부르심받고, 은혜로 구원받은 사람이라고 하신다. 나는 그녀의 어머니가 하나님의 은혜임을 기억한다. 이 하나님의 은혜는 결코 하나님의 관대함만을 가리켜 말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관대함은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지극히 작은 부분일 뿐이다.
하나님의 은혜는 하나님의 영세 전의 계획과 선택 그리고 시간 안에서의 그분의 아들을 통한 구속과 성령의 역사를 포함하는데, 이러한 모든 것이 성경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은혜이다. 하나님의 은혜가 선택된 한 죄인을 찾았을 때 그분은 그녀를 그리스도의 그늘과 보호 아래 두신다. 거기서 그녀에게 생명을 주시고 그녀를 위해 수고하신다. 그녀가 깨어날 때, 그녀는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깨어난다.
너는 나를 인같이 마음에 품고...
6절에서 그녀가 자신의 본래의 어떠함을 보았을 때, 그녀는 겸손의 느낌으로 충만하지 않을 수 없고, 자기 자신의 헛됨과 체험의 쓸모없음과 마음의 믿을 수 없음과 추구하는 것이 그녀에게 무엇을 줄 수 없음을 보게 된다. 그녀가 앙망할 것은 주님뿐이다. 그녀가 「끝까지」 갈 수 있는가 없는가는 결코 자신의 「버티는」 힘으로 말미암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보호하심과 지키심으로 말미암는다는 것을 그녀는 안다.
한 사람에게 있어서 그의 모든 영적인 온전케 됨이 주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까지 사람들에게 계속 도움을 주기에 충분한 것은 결코 아니다. 모든 것은 다 하나님과 그분의 보호하시는 능력으로 말미암는다. 이것을 알았으므로 그녀는, 『너는 나를 인같이 마음에 품고 도장같이 팔에 두라』고 간구하지 않을 수 없다.
「마음」은 사랑하는 곳이며, 「팔」은 능력이 있는 곳이다. 『나는 당신이 나를 마음에 인같이 그렇게 영원히 품어 주시고, 도장같이 그렇게 마멸되지 않도록 팔로 이끌어 주시기를 구합니다. 이전에 제사장이 그의 가슴과 어깨에 이스라엘 백성을 품고 메었듯이, 당신이 오늘 마음속에서 계속 나를 기억해 주시고 팔로 나를 계속 부축해 주시기를 구합니다. 나는 나의 약함과 공허함을 알며, 내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을 느낍니다. 주여, 나는 아무 의지할 데 없는 사람입니다. 당신의 얼굴을 보기까지 나 자신을 스스로 보호하라고 한다면, 다만 당신의 이름을 부끄럽게 하고 나 자신에게 해를 입힐 뿐입니다. 오늘날 나의 모든 소망은 당신의 사랑과 당신의 능력에 있습니다. 내가 이전에도 당신을 사랑했었지만, 그것이 얼마나 믿을 수 없는 것인지를 압니다. 이제 내가 당신께 바라는 것은 나에 대한 당신의 사랑입니다. 내가 이전에 당신을 붙잡았던 적이 있습니다(3:4). 내게 아주 힘이 있는 것 같았지만, 나는 내가 강하게 「붙잡은」 것이 여전히 매우 연약한 것일 뿐임을 알았습니다. 오늘 내가 의지하는 것은 결코 나의 붙드는 능력이 아니고 당신의 붙드는 능력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감히 당신에 대한 나의 사랑을 말할 수 없고, 당신을 내가 붙잡았다고도 말할 수 없습니다. 오늘 이후로 모든 것은 당신의 능력과 당신의 사랑에 달려 있습니다.』
사랑은 죽음같이 강하고...
「그분의 사랑은 죽음같이 강하다」고 했는데, 누가 능히 사망을 흔들 수 있겠는가? 부모의 탄식, 아내의 눈물, 친구의 슬퍼함도 사람을 사망으로부터 구출할 수 없다. 사망은 그것이 얻은 사람을 지키려 하고, 단단히 가두어 두려고 하며, 풀어주지 않으려 한다. 『만일 당신이 나를 사랑하신다면, 당신의 사랑은 죽음보다 강하므로 나는 영원히 흔들리지 않을 것입니다. 당신이 만일 나를 사랑하신다면, 당신의 질투도 반드시 따라올 것입니다. 당신의 질투는 음부같이 잔혹하여 반드시 책망하며 온전케 되기를 요구할 것입니다. 당신은 어떤 것으로도 나의 마음이 나뉘는 것을 허락지 않으시는데, 당신이 얻는 것이 많을지라도 원치 않으실 것입니다. 당신의 눈은 당신께 속한 사랑이 세상 사람에 의해 더럽혀지고 다른 사람에 의해 침략당하는 것을 보실 수 없습니다. 당신이 질투하시는 것은 당신이 태고 적부터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출 20:5). 또한 당신의 사도도 일찍이 우리들에게 하나님의 질투를 말하지 않았습니까?(고후 11:2). 당신이 질투하신다면, 누가 능히 내 안에서 당신의 질투에 맞설 수 있겠습니까? 무엇이 내 안에서 능히 당신의 질투를 막겠습니까?...
나는 당신의 질투가 음부보다 잔혹하다는 것을 압니다. 어떤 것이 음부보다 더 잔혹합니까? 비록 가장 아끼는 것, 가장 사랑스러운 것, 가장 귀한 것일지라도, 음부가 죄인을 받을 때에는 결코 당신의 아끼는 것, 당신의 사랑스러운 것, 당신의 귀한 것을 상관하지 않을 것입니다. 눈물이 음부의 마음을 움직일 수 없고, 애통해함이 그것의 마음을 약하게 할 수 없으며, 간청함이 그것의 마음을 바꿀 수 없습니다. 음부는 긍휼이 무엇인지 모르며, 체휼함이 무엇인지를 알지 못합니다. 음부는 동정함이나 어떤 느낌도 없습니다. 그것은 잔인합니다. 내가 만일 나 자신을 정결한 처녀와 같이 주님께 드린다면, 또한 만일 내 몸에서 어떤 것이 당신의 질투심을 불러일으킨다면, 당신은 어떤 것도 개의치 않고 당신이 완전히 승리하실 때까지 이것을 처리하실 것입니다...』
워치만 니
[워치만니 전집 2집 제 3권, "노래 중의 노래", 한국복음서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