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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모든 들은 것을 우리가 더욱 간절히 삼갈지니 혹 흘러 떠내려갈까 염려하노라 천사들로 하신 말씀이 견고하게 되어 모든 범죄함과 순종치 아니함이 공변된 보응을 받았거든 우리가 이같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면 어찌 피하리요 이 구원은 처음에 주로 말씀하신 바요 들은 자들이 우리에게 확증한 바니 하나님도 표적들과 기사들과 여러 가지 능력과 및 자기 뜻을 따라 성령의 나눠주신 것으로써 저희와 함께 증거하셨느니라" (히브리서 2:1-4)
히브리서에는 경고의 말이 몇 번 나온다. 매번 경고의 말을 쓴 것은 그 말씀의 전후에 긴요한 교리가 있기 때문이다. 먼저 아주 요긴한 교리를 말한 다음에 경고의 말을 하거나, 요긴한 교리를 말하기 위해 먼저 경고의 말을 한 것이 히브리서의 특징이다.
히브리서 2장의 첫단락이 첫 번째 경고이다. 이 경고는 1장과 2장 사이에 있다. 1장은 영광을 말하고 2장은 고난받음을 말한다. 1장은 영원 안의 그리스도가 누구이신가를, 2장은 시간 안에서의 그리스도가 우리를 위하여 어떤 사람이 되었는지를 말한다. 1장은 그리스도의 인격을, 2장은 그리스도의 역사를 말한다. 이 두 장 사이에 경고의 말씀을 삽입시켰다. 이 경고는 그리스도의 인격과 역사에 대해 우리가 취해야 할 태도를 말한다.
우리는 이 단락의 경고의 말씀을 보기 전에 이 책을 쓰게 된 배경에 대해 분명해야 한다. 우리는 히브리서가 히브리 사람에게 쓰여진 것임을 안다. 구약과 성전과 성전 안에서 경배하는 일을 알고 동시에 신약과 신약의 경배를 아는 한 무리의 유대인들이 구원을 받았다. 그들은 그리스도를 알고 믿고 영접하여 구원받았다. 그들은 구약의 지식과 신약의 지식을 다 가진 한 무리의 그리스도인들이었다. 이 히브리서는 이방인에게나 구원을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 쓰여진 것이 아니라 이미 구원을 깨달은 히브리 사람들에게 쓰여진 것이다.
"히브리"의 의미는 "건너감" 또는 "강을 건넘"이다. 첫번째 히브리인은 아브라함이었다. 본래 아브라함은 강의 동쪽에 있었다. 그가 유브라데 강 서쪽으로 건너 왔으므로 히브리인인 것이다. "히브리인"은 "강을 건넌 사람"이라는 뜻이다. 당시 사도가 히브리서를 강을 건넌 사람에게 쓴 것은, 뒤의 것을 버리고 앞에서 얻을 것이 있는 사람에게 쓴 것이다. 그들은 뒤에 있는 옛 세상을 버리고, 앞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하여 새 장소로 가야했다. 이제 하나님은 사도를 통해 이러한 사람들에게 편지를 쓰신 것이다.
더욱 간절히 삼가함
이러한 사람들에게 "그러므로 모든 들은 것을 우리가 더욱 간절히 삼갈지니 혹 흘러 떠내려갈까 염려하노라"는 말씀을 쓴 것은 매우 기묘한 일이다. 이것이 첫번째 경고이다. 이 경고는 우리가 삼가해야 할 것을 말한다. 삼가하지 않으면 위험이 따르고, 이 위험은 흘러 떠내려가는 것이다. 경고가 있음은 앞에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이 위험은 흘러 떠내려가는 것, 곧 이같이 큰 구원을 잃는 것이다. 이같이 큰 구원은 누가 이루신 것인가? 그것은 하나님, 곧 주와 성령이 이루신 것이다. 이 구원은 이같이 큰 구원이기 때문에, 우리는 흘러 떠내려갈까 더욱 삼가해야 한다.
"그러므로"는 위의 문장을 잇는 말이다. 주 예수님은 1장에서 말한 것처럼, 높고 영광스럽고 초월하여 모든 사람 위에 계시고 천사까지도 그의 발아래 복종한 분이므로 우리는 마땅히 모든 들은 것을 더욱 간절히 삼가해야 한다. 우리가 들은 모든 것은 주 예수님이 이렇게 놀라운 분임을 말해주기 때문에 더욱 간절히 삼가해야 한다.
요한복음은 다른 세 복음서와는 기록이 다르다. 마태복음과 마가복음과 누가복음을 한데 둘 수 있으나 요한복음은 이 세 권과 같이 둘 수 없다. 왜냐하면 요한복음은 영원으로부터 말했기 때문이고, 그 안에서 말한 것은 모두가 영광 안에 있는, 모든 것을 초월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죄인에게나 구원받은 사람에게 복음을 전할 때, 천 구백 년 전 갈릴리 해변에 걸으셨던 사람이나 나사렛에서 지내셨던 사람이나 마리아에게서 난 인자이신 예수만을 보여줄 것이 아니라 영원 전부터 계시고 이미 영광 안에 계신 주 예수를 보여줘야 한다. 우리는 주님과 우리의 관계를 말할 때 영원 전부터 말해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든 들은 것을 삼가해야 한다. 우리는 마땅히 주 예수에 관해 들은 것을 삼가해야 한다.
"우리"가 더욱 간절히 삼가해야 한다. 사도는 자신을 포함시켰다. 대체 히브리서를 쓴 사람은 누구인가? 어떤 사람은 바울이라 하고, 어떤 사람은 누가라 한다. 이 책에서 저자가 누구인지를 밝히지 않았으므로 누가 쓴 것인가를 확증할 것 없이, 우선 사도가 쓴 것이라 해두자. 사도는 "우리"라고 했지 "너희"라고 하지 않았다. 여기에서 우리는 사도가 얼마나 조심하는지를 볼 수 있다. 사도까지도 흘러 떠내려갈 위험이 있었다.
"흘러 떠내려감"의 원문은 두 가지 의미, 즉 "떠돌아다님"과 "새어버림"의 뜻을 갖고 있다. 여기에서 "흘러 떠"는 "떠돌아다님"을 의미하고 "내려감"은 "새어버림"을 의미한다. 중국어 성경은 두 단어의 의미를 연결하여 "흘러 떠내려감"으로 번역했다.
새어버림
새어버림이란 무엇인가? 구멍이 있는 물통에 물을 담아 가져오려면 반드시 빨리 달려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모두 새어버린다. 사도가 말한, 새어버릴까 염려하라는 말은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많은 일들을 들었으니 결코 새어버리지 않게 하라는 뜻이다. 만약 어느 형제에게 "당신의 아들의 이름을 기억합니까?"라고 묻는다면 그는 즉시 "어떻게 내 아들의 이름을 잊어버릴 수 있습니까?"라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그에게 마태복음 1장은 무엇을 말하고 마태복음 16장은 무엇을 말하느냐고 물으면, 그는 아마 잊어버렸을 것이다.
아마 요한복음 1장부터 3장까지가 무엇을 말하는지를 기억 못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오전에는 많은 메시지를 들었지만 오후에는 많은 것을 다 잊어버렸을 것이다. 많은 일들은 기억하지만 그리스도에 관한 일은 항상 새어버린다. 이것은 우리의 마음이 어디에 있는지를 증명한다. 우리는 우리 집이 어디에 있는지는 기억하지만 성경의 큰 일들은 기억하지 못한다. 하나님은 그리스도에 관한 많은 것들을 들려주셨으나 우리는 모두 새게 했다. 우리는 이에 대해 하나님께 핑계할 수 없다. 당신은 그리스도에 관한 일을 잊어버린 것에 대해 핑계를 댈 수 없다. 만약 머리가 나쁘다면 다른 일은 왜 잊어버리지 않는가?
그리스도인들 가운데 문제는 하나님의 말씀이나 그리스도의 말씀을 새어나가게 하는 데 있다. 새어나감은 매우 위험한 일이다. 우리에게만 이러한 위험이 있는 것이 아니라 사도에게도 있다. 많은 경우 시험이 다가올 때, 어떤 성경 구절을 찾으려 해도 찾지 못한다. "새어버렸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이 필요할 때에 찾지 못한다. 어떤 사람은 바로 이 새어버림 때문에 사탄의 손 아래 있는 것이다. 만약 새어버리지 않았으면 즉시 사탄을 처리할 말이 있을 것이다.
당신은, "사탄아, 나는 네가 나를 시험하는 줄 안다. 돌아가 성경을 찾아 볼테니 잠깐 기다려라."라고 말할 수 없다. 그렇게 하면 즉시 실패할 것이다. 주 예수님은 사탄을 처리할 때 세 번이나 즉각 성경을 인용하실 수 있었다. 한 번도 말씀이 새지 않았다. 우리의 문제는 새는 데 있다. 다른 일은 다 기억할 수 있지만 그리스도에 관한 일은 새버린다. 이러한 상태는 우리의 마음이 그곳에 있지 않음을 증명한다. 우리의 마음이 자기의 일만을 중요시하므로 그리스도의 일은 새어나간 것이다.
새어나가는 것은 구멍이 있기 때문이다. 큰 구멍이든 작은 구멍이든 구멍이 있기만 하면 새는 법이다. 당신이 전심으로 중요시하는 그 일이 곧 당신을 새게 하는 구멍이다. 어떤 사람의 구멍은 더 클 것이다. 어떤 사람은 죄를 강하게 심판해 본 적이 없고, 어떤 사람은 계속적으로 성실치 않고, 어떤 사람은 거짓말을 한다. 죄를 심판하지 않는 것과 불성실함과 거짓을 말함이 당신을 새게 하는 구멍이다. 우리 모든 사람은 자기의 구멍이 어디에 있는지를 찾아내야 한다. 만약 우리에게 구멍이 없다면 그리스도의 일들이 우리에게서 새어나가고 있는지의 여부를 물어야 한다.
구원받은 지 6년 된 형제가 있는데, 그는 쉽게 잘 잊어버리는 사람이었지만 구멍은 없었다. 그 형제는 다른 일은 잊어버려도 주님의 일은 조금도 새어나가지 않았다. 그러므로 총명하고 기억력이 좋은 사람이 영적인 일을 기억하기가 쉽고 둔한 사람보다 유리하다고 생각하지 말라. 총명한 사람과 둔한 사람이 세상적인 일에는 차이가 있으나 영적인 일에는 차이가 없다. 기억력이 좋고 나쁜 것으로 누가 새는 사람인지를 구분할 수 없다. "구원, 확신, 기쁨"이라는 책을 쓴 형제는 97세가 되었을 때 기억력이 감퇴되어 다른 일을 다 잊어버렸다. 그러나 주님의 일에 대해서는 잊어버리지 않았다. 그는 계속 이렇게 말했다. "내게 그분이 없으면 안 되고, 그분에게 내가 없어도 안 된다." 그는 모든 일을 다 잊어버렸지만 주님의 일에 대하여는 잊어버리지 않았다.
우리는 반드시 우리에게서 새어나가는 원인을 처리해야 한다. 어떤 사람은 돈쓰는 데서 새어나간다. 성경이 낡았어도 상관치 않지만 군것질을 할 돈은 있다. 이것은 그 사람의 기억하는 일과 잊어버린 일이 무엇인지를 증명하고, 그의 마음이 어디에 있는지를 증명한다. 어떤 형제 자매들은 어떤 일을 말하든지 말을 잘하지만 영적인 일을 말하면 조금도 말을 하지 못한다. 이것은 매우 좋지 않은 현상이다. 오! 여기에 새는 곳이 있다. 우리가 들은 그리스도에 관한 많은 일들을 어디에 두었는가? 하나님이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기 바란다.
떠돌아다님
떠돌아다닌다는 것은 무엇인가? 떠돌아다니는 것은 힘을 쓰지 않는 것이다. 배를 젓는 데는 힘을 내야 한다. 그러나 물이 흐르는 방향을 따라 계속 떠돌아다닌다면 힘을 쓸 필요없다. 떠돌아다니는 것은 물을 따라 흐르는 것, 즉 물이 흐르는 방향에 따라 당신도 그 방향으로 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기가 정한 목적지에 가려면 반드시 키를 붙잡고 힘을 써서 배를 몰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떠돌아다니게 된다. 떠돌아다니는 것은 당신을 목적지에 이르지 못하게 한다. 정한 목적지에 가려면 반드시 힘을 다하여 떠돌아다는 것을 반대해야 한다. 당신이 목적지에 이르려면 힘을 써야 한다. 그러나 떠돌아다니면 힘을 쓰지 않고 물결에 따라 흐른다. 물이 나를 어디로 보내든지 그대로 가고 어디로 이끌든지 그대로 가는 것이 떠돌아다니는 것이다.
형제 자매들이여!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영적인 일과 영에 속한 생활과 그리스도에 관한 일들을 견고히 붙잡고 힘써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사탄을 막으려면 육체를 거절하고 자신을 저버려야 한다. 당신은 어디서든지 편히 쉴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그리스도인의 생활이 그렇게 쉽다고 생각하는가? 우리가 한가하게 물의 방향에 따라 떠돌아다녀도 된다고 생각하는가? 그렇게 값싼 것이 아니다. 우리의 마음에는 전적인 목적이 있어야 한다. 떠돌아다녀서는 안된다. 오늘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된 목적이 무엇인지를 스스로 자문해봐야 한다. 만약 내가 북으로 가야 하는데 남으로 떠돌아다닌다면 목적지에 이르지 못하기 때문에 내 마음은 조급해진다. 만약 내게 북으로 가려는 뜻이 없고 목적지가 없다면, 물결따라 떠돌아다니며 환경에 따라 안착하는 사람이 된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는 하나님의 기뻐하심을 구하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하나님의 기뻐하심을 구하려면 환경에 따라 안착되어서는 안 되고 목표를 세워둬야 하고, 뒤의 것을 잊어버리고 앞의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달려가야 한다. 어떤 사람은 목표가 없기 때문에 뒤의 것도 없고 앞의 것도 없다. 목표가 없기 때문에 앞과 뒤가 없고 어떤 곳이든 좋다고 한다. 이것은 농촌의 소가 연자방아를 끄는 것과 같다. 물소는 아무 생각도 없이 물방아를 끌고 계속 제자리걸음을 한다. 저녁까지 뛰어도 본래의 그 자리이고, 시작한 곳이 끝이요, 시작과 끝이 없다. 물소는 환경의 지배를 받아 바퀴를 따라 돌아갈 뿐이다.
많은 그리스도인들도 이와같이 하루종일 제자리걸음을 하고 앞뒤 없이 계속 떠돌아다닌다. 떠돌아다니는 것은 목적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무슨 목적으로 그리스도인이 되었는지를 자문해야 한다. 만약 내가 성경 안에 말한 것처럼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려면 그 목표를 주의하고 그 목표를 향해 달려가야 한다. 반대하는 일이 생기면 그것을 힘으로 거절해야 한다. 당신에게는 뒤의 것을 잊어버리고 앞의 것을 붙잡아야 할 노정이 아직 앞에 남아 있다. 그렇지 않으면 떠돌아다니게 된다. 형제 자매는 떠돌아다니는 그리스도인인가, 목적있는 그리스도인인가?
떠돌아다니는 것은 그리 느껴지지 않은 일이기 때문에 그 위험성을 모르는 사람이 있다. 만약 광풍이 당신을 휩쓸어 간다면 변화가 크기 때문에 금방 느낀다. 그러나 떠돌아다님은 어떤가? 떠돌아다님은 부지불식간에 위로부터 아래로, 높은 데서 낮은 데로 끌려가는 것이다. 떠돌아다님은 느릿느릿하고 힘이 필요하지 않을 뿐 아니라 느껴지지도 않는다. 분마다의 차이가 별로 없고, 앞의 3분과 뒤의 3분에 별 차이가 없다. 바로 이 느릿느릿한 것으로 인해 사정이 달라진다.
어떤 사람은 그리 큰 죄를 범하지 않고 여전히 성경을 읽고, 말씀을 듣고, 헌금도 하지만 전과 비슷하다. 그러나 오늘이 지나고 내일이 지날 때, 다음 달이 지나고 또 다음 달이 지나서 삼 사년 후면 오늘과 큰 차이가 있게 된다. 영적인 일에서 갑자기 넘어지는 것은 없다. 한 번 걸려서 곧장 넘어지는 경우는 없다. 사람은 계속 떠돌아다니다가 어느 날 드러나는 것이다. 떠돌아다니는 것은 가장 나쁜 일이다. 결국에는 모든 것이 떠내려가게 된다. 아마 당신은 그리 큰 죄를 범하지 않고, 과거의 생활과 별 차이 없이 부지불식간에 내려가는 생활을 할 것이다. 그러나 떠돌아다님은 당신을 높은 곳으로 올릴 수 없고, 낮은 곳으로 내려가게 할 뿐임을 기억하기 바란다. 매일매일 내려가게 한다. 당신은 아직 느끼지 않아도 다른 사람은 느낀다.
전에, 유명한 어느 음악가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피아노를 하루 연습하지 않으면 내 자신이 느끼고, 이틀 연습하지 않으면 내 친구들이 느끼고, 삼일 연습하지 않으면 청중이 알게 됩니다." 조금씩 조금씩 밑으로 내려가다가 결국에는 드러나게 된다. 처음에는 차이가 없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차이가 커진다. 하나님은 우리가 그분 앞에서 마음과 혼의 모든 힘을 다하여 떠돌아다니지 않고 서 있기를 원하신다. 이렇게 할 때 우리는 영적인 일에서 진보할 수 있다.
사탄은 온갖 방법으로 우리를 점점 멈추게 하고 진보를 구하지 않게 한다. 그 목적은 우리를 물결따라 떠내려가 결국에는 넘어지게 하려는 것이다. 사탄은 돌연히 우리를 끌어다가 큰 죄를 범하게 하지 않는다. 만약 사탄이 우리에게 어떤 사람을 해치도록 유혹한다면 우리는 원치 않을 것이다. 사탄은 일을 천천히 한다. 오늘은 당신에게 사람을 미워하는 마음을 주고 내일은 사람을 질투하는 마음을 주고, 몇 년이 지난 후에는 사람을 해치려는 마음이 생기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날마다 영적인 능력이 필요하다. 우리는 하나님께 그의 손으로 우리를 붙들어 주시기를 간구해야 한다.
나의 상태가 어제와 별 차이가 없는 일을 대수롭지 않은 일로 생각하지 말라. 매일매일 조금씩 밑으로 떠내려가도, 십 년 이십 년 계속 내려가면 차이가 매우 커진다. "떠내려감"의 두려움에 민감하지 않은 그리스도인을 하나님이 긍휼히 여기시기 바란다! 떠돌아다님은 항상 높은 곳에서 낮은 이끌고, 결코 당신을 위로 이끌 수 없다. 당신의 영적 생명이 진보하기 원한다면 떠돌아다녀서는 안된다. 열심히 추구하지 않는 사람은 진보하지 못한다. 무디는 게으른 사람이 구원받은 적을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우리는 게으른 사람이 진보하는 것을 보지 못했다고 말해야 한다. 추구하지 않으면 믿지 못하고, 목마르고 배고프지 않으면 충족히 채워질 수 없다. 우리가 영적인 추구에서 조금만 방자하면, 떠돌아다니는 상태가 발생하게 된다.
새어버림과 떠돌아다님의 결과
새어버림과 떠돌아다님의 위험성을 볼 수 있기 바란다. 히브리서의 첫째 경고는 우리의 가장 큰 위험이 새어버림과 떠돌아다님임을 말한다. 이 첫째 경고를 우리의 경계로 삼기 바란다. 우리는 모두 새게 되고 떠돌아다닌다. 우리는 하나님의 주신 바를 다 새어나가게 하고 떠돌아다니기 때문에 앞의 것을 얻지 못한다.
"흘러 떠내려감"의 원문은 옆으로 미끄러져 지나가 만질 수 없다는 의미도 가지고 있다. 이것은 마치 당신이 황포강에서 큰 배에 오르는 것과 같다. 큰 배는 강 가운데 있는데 당신이 작은 배에서 큰 배에 오르려 하면 물결이 너무 세기 때문에 물결을 대항할 힘이 충분치 않다. 당신이 몸부림을 쳐도 무익하다. 당신은 큰 배 옆으로 미끄러져 지나가게 된다. 이것이 사도가 말한 뜻이다. 당신은 물결을 따라가고 물결의 힘을 저항할 힘이 충분치 않기 때문에 목적물을 얻지 못하게 된다.
우리의 위험은 바로 새어나가게 하는 것과 떠돌아다니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도는 우리에게 둔하지 말고 더욱 간절히 삼가하라고 말한다. 둔한 사람은 그리스도인의 생활을 할 수 없다. 둔한 그리스도인은 흘러 떠내려감의 위험성을 보지 못한다. 오직 더욱 간절히 삼가하는 사람만이 볼 수 있다. 흘러 떠내려가는 위험성을 본 사람만이 영적인 일에서 성장할 수 있다. 많은 경우 우리는 간절히 삼가하지 않고 영적인 일에 너무 둔하기 때문에 갈수록 밑으로 내려간다.
우리는 사도가 말한, 들은 모든 것을 더욱 간절히 삼가하라는 말을 기억해야 한다. 바울은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빌 1:12)고 말했다. 왜냐하면 영적인 일에 있어서 유일한 필요는 경외함이기 때문이다. 많은 그리스도인이 날마다 희희낙락하며 두려워하는 것 없이 제멋대로 지내고 하나님을 경외할 필요성을 조금도 느끼지 않는다. 바로 이것 때문에 영적인 일의 가치를 알지 못하고 흘러 떠내려감의 위험성을 보지 못하는 것이다.
우리가 새어나가게 하고 떠돌아다니면 무엇을 잃게 되는가? 그 위험의 결과는 무엇인가? 3절에서 "우리가 이같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면 어찌 피하리요"라고 말했다. 무엇을 잃는가? 이같이 큰 구원을 잃게 된다. 히브리서에서 말한 구원은 무엇인가? 완전히 구원하는 구원이다. 그가 항상 살아서 우리를 완전히 구원하는 것이 완전한 구원이다. 이 구원은 우리로 주 예수께서 십자가에 흘린 피를 의지하여 죄 사함을 받아 지옥을 면하여 천국에 가게 할 뿐 아니라, 특히 오늘 이 땅에서 완전히 구원받은 사람이 되고(자연히 십자가도 내포된다.), 천년 왕국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 얻을 것을 말한다.
만약 형제가 어떤 좋지 않은 일을 했다면 다른 사람은, "예수 믿는 당신도 이런 일을 하느냐?"고 말할 것이다. 이것 때문에 당신이 침륜하거나 구원받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이 볼 때 믿는 사람인 당신은 다른 사람과 차이가 없고, 당신은 구원받은 사람으로 나타나지 않는다. 당신의 성격이 급할지도 모른다. 당신이 주 예수를 믿고 주 예수님이 당신의 승리의 생명인 것도 들었지만 여전히 새어나가게 하고 떠돌아다니며 성질을 냈다 하자. 그러면 믿지 않는 사람은, "예수를 믿는 당신도 성질을 내는데 당신과 나 사이에 무슨 차별이 있느냐?"라고 말할 것이다. 그럴 때 당신은 이같이 큰 구원을 잃은 것이다. 당신은 당신의 성질이라는 죄로부터 주님의 구원을 받지 못한 것이다. 당신은 믿지 않은 사람들 가운데 차별이 없이, 이같이 큰 구원을 잃은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당신은 복장이나 금전이나 시간이나 부지런한 봉사나 자신을 부인하여 남을 위하는 일에서 그리스도인의 간증을 나타내야 한다. 당신은 하나님의 복음을 새어나가게 하거나 떠돌아다니게 해서는 안되고, 이같이 큰 구원을 잃지 않도록 자신을 지켜야 한다. 하나님의 구원은 이생의 생활만 포함한 것이 아니라 천년 왕국 안에서 주와 함께 영광 안의 생활을 하는 것도 포함한다. 우리는 이같이 큰 구원을 얻어야 하고 왕국의 영광에 참여해야 하기 때문에 모든 일에서 거룩히 분별되기 위해 새어나가게 하거나 떠돌아다녀서는 안된다.
"그러므로 모든 들은 것을 간절히 삼갈지니". 우리가 들은 모든 것은 곧 그리스도에 관한 일이므로 더욱 간절히 삼가해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가 그러한 것들을 흘러 떠내려가게 하거나 잃게 하거나 새어나가게 할까 두렵기 때문이다.
그러면 왜 그리스도에 관한 일을 새어나가게 하거나 흘러 떠내려가게 해서는 안되는가? 그것은 "천사들로 하신 말씀", 곧 율법과 구약이(행 7:53), "견고하게 되어 모든 범죄함과 순종치 아니함이 공변된 보응"을 받았기 때문이다. 하물며 우리가 오늘 이같이 큰 구원을 소홀히 여기면 어떻게 되겠는가? 이 구원은 사람이 전한 것이 아니라 영광의 하나님의 아들이 전하신 것이다. 만일 우리가 이같이 큰 구원을 소홀히 한다면 어찌 죄를 피할 수 있겠는가? 천사가 전한 율법을 범했어도 그러한 보응을 받거늘, 주님이 친히 전파하시고 후에 듣던 자들이 우리에게 확증한 바요 하나님이 자기의 뜻을 따라 표적들과 기사들과 여러 가지 능력과 및 성령의 나눠주신 것으로서 우리에게 확증하신 오늘의 구원을 소홀히 함이랴!
만일 우리가 이같이 큰 구원을 소홀히 한다면 어찌 죄를 피할 수 있겠는가? 이것이 사도가 우리에게, 새어나가게 하지 말고 흘러 떠내려가지 말라고 권한 경고의 말씀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은혜를 주사 우리로 하여금 그분이 주신, 우리가 들은 영적인 일을 임의로 대하지 않고 방자히 행하지 않고 새어나가게 하거나 흘러 떠내려가지 않게 하시기를 간구한다.
워치만 니
[열두 광주리 가득히, "새어버림과 떠돌아다님", 한국복음서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