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성한 말씀을 누려요. ^^

  • 목록
  • 아래로
  • 위로
  • 0
  • 청지기
  • 조회 수 970

소개의 말

 

오늘날 주님에 대한 느낌이 있는 사람들은, 주님이 이 땅 위에서 걷고자 하시는 길은 교회의 길이고, 하고자 하시는 일은 교회의 일임을 알 것이다. 이 십여 년 동안 주님은 우리에게 모든 개인적인 길을 걷는 사람들과 개인적인 일을 하는 사람들은 날이 갈수록 내리막길을 걸으며, 일할수록 주님의 능력과 축복을 잃게 된다는 것을 계속 보여 주셨다. 그런 반면에 교회적인 봉사는 날이 갈수록 오르막길을 걸으며 일할수록 주님의 임재와 확증을 갖게 된다.

 

오늘날 이 땅 위에서 주님은 교회의 길을 가고 교회의 일을 하기 원하시지만 사람들이 개인적인 길을 가고 개인적인 일을 하려고 하기 때문에 주님의 임재와 축복을 잃게 된다. 모든 주님의 축복을 얻게 하는 것은 바로 주님의 임재이다. 주님의 가장 큰 임재는 바로 주님의 가장 큰 축복이다. 우리가 주님의 축복을 얻기 위해서는 반드시 주님의 임재를 가져야 한다. 우리가 주님의 임재를 가지려면 주님이 정하신 길을 걸으며 주님과 동행해야 한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길을 가면서 주님의 임재와 축복을 얻으려고 한다. 그것은 참으로 쉬운 것이 아니다. 그런 사람은 주님의 임재와 축복을 얻으려는 갈망을 가지고 있지만 주님이 정하신 길을 걸으려고 하지 않는다. 그가 주님과 다른 길을 걷고 있는데 어찌 주님을 만지며 주님의 임재를 가질 수 있겠는가? 오늘날 주님이 가시는 길은 교회의 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의 긍휼하심을 구하여 여러분들이 교회 안에서 주님을 따르고 섬기며 또한 형제 자매들을 교회적인 봉사 안으로 이끌기 바란다.

 


교회의 입장 문제

 

교회의 입장이란 대체 무엇인가? 나는 이것이 상당히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성경에서 주님은 교회의 일정한 입장을 확실히 보여주셨기 때문이다. 나는 형제 자매들이, 하나님의 축복이 교회 안에 있고 하나님의 성령과 하나님의 빛도 교회 안에 있으며 특히 주 예수 자신의 생명도 교회 안에 있다는 것을 알 것이라 믿는다. 우리는 평상 개인적인 생명을 중요시하지만 사실상 주님의 생명은 교회 안에 있다.

 

하나님께서 이 많은 영에 속한 것들을 교회 안에 두셨기 때문에 「교회」가 교회인지의 여부는 매우 중요한 문제가 되어 버렸다. 만일 하나님이 영에 속한 많은 것들을 우리 개인에게 주셨다면 문제가 그리 크지 않다. 그러나 성경 안에서 하나님은 영에 속한 모든 것을 다 교회 안에 두셨음을 우리에게 보여 주신다. 그러므로 우리가 있는 곳이 교회인지의 여부는 매우 심각한 문제가 되어 버렸다. 만일 내가 왕래하고 있는 형제 자매들이 교회가 아니라면 그것은 극히 큰 손실이 아닐 수 없다.

 

하나의 비유를 말하겠다. 여기에 병원에서 근무하는 한 자매가 있다 하자. 그녀가 어떤 것을 검사하기 위해서는 유리 조각 하나가 필요할 것이다. 어떤 종류의 균을 검사하는 데는 유리 한 조각으로 충분하다. 그러나 만일 당신과 대화하러 찾아온 어떤 형제나 자매에게 물 한 잔을 주려 한다면 당신이 매일 사용하는 그 유리 조각 하나는 소용이 없다. 유리 한 조각이 당신의 실험실에서는 매우 중요하고 많은 용도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형제나 자매에게 물 한 잔을 줄 때는 그 유리 조각이 조금도 쓸모가 없다. 그는 바퀴벌레나 새가 아니기 때문에 최소한 그에게 물 한 잔은 줘야 할 것이다. 이것은 유리 한 조각으로는 필요를 채울 수 없다. 많은 문제들이 유리 한 조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최소한 여러 유리 조각이 합하여 만들어진 컵이어야 이 갈증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평면이 담을 수 있는 것은 입체가 담을 수 있는 것보다 못하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의 개인의 영적인 공과를 말살하려는 것이 아니다. 개인적으로 누구나 영에 속한 많은 것들을 얻을 수 있다. 때로 그것들 중에는 최고의 영적인 공과도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영적인 것들을 교회 안에 두셨기 때문에 개인을 의지해 구할 때 얻지 못하게 된다. 이 말은 개인에게 축복이 없다는 것이 아니라 당신 개인을 빙자해 얻으려 할 때 얻지 못한다는 것이다. 오늘 하나님은 그분의 풍성을 교회 안에 두셨다. 교회는 유리 컵처럼 하나의 입체적인 것이다. 유리 컵의 유리로만 생수를 마실 수 있다. 마찬가지로 교회만이 많은 영에 속한 것들을 담을 수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서 우리는 많은 영에 속한 것들이 개인에게 있지 않고 교회 안에 있다는 것을 분명히 보아야 한다. 주님의 말씀은 상당히 분명하며 기묘하다. 그분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라』고 하신 다음 『음부의 문이 이기지 못하리라』고 말씀하셨다. 바꾸어 말하면 이 약속이 개인에게 주어진 것이 아니라 교회에게 주어졌다는 말이다.

 

많은 경우 개인이 음부를 저항하기란 얼마나 쉽지 않은지. 그러나 일단 교회가 나오면 사탄은 실패한다. 나는 이 여러 해 동안 개인에게 축복이 없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개인에게 축복이 있었지만 그 축복은 제한되었다. 오직 교회 안의 축복만이 무한하며 풍성한 것이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교회의 길을 떠날 때 그의 축복이 제한되고 하나님의 임재도 제한 된 것을 볼 것이다(축복과 임재가 없다는 말이 아니라 제한된다는 것이다). 또한 하나님 앞에서 그들이 만지지 못하는 것들이 많다. 나의 솔직한 말을 용서하라. 특히 최근 십 년 동안 나는 사람들이 교회가 무엇인지를 아는지 주목하여 보아 왔다. 이상한 것은, 어떤 형제들은 주님을 안 지 이삼십 년이 되었는데도 하나님의 교회를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 사람은 과거에 그가 얻은 것도 점차 미약해지게 되고 자기가 가졌다고 생각한 것들도 거의 보존하지 못하게 된다. 그와 동시에 또 한 무리의 형제 자매들은 하나님의 교회를 앎으로써 머리의 풍성이 그들의 풍성이 되었으며, 그들은 쉬지 않고 전진할 수 있었다.

 

그러므로 나는 그리스도인들이, 단지 자신이 얻어야 할 것을 관심할 뿐 아니라 그가 왕래하고 있는 형제 자매들이 교회인가의 여부를 관심해야 함을 젊은 형제 자매들이 주의하기 원한다. 이것을 기억하라. 한 사람일 때는 개인이나 두 사람은 교회일 수도 있고 두 개인에 불과할 뿐 교회가 아닐 수도 있다. 오백 명이나 천 명이 합하면 교회라고 생각지 말라.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천 명이 교회가 될 수 있음을 하나님께 감사하라. 그러나 천 명도 천 명의 개인이고, 개인이 보다 많을 뿐 여전히 교회가 아닐 수 있다. 여기에 매우 큰 차이가 있다.

 

오늘날 하나님의 자녀들은 한 사람이 교회를 이룰 수 없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아마 하나님의 자녀들은 천 명도 교회가 아니고 천 명의 개인일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만 명도 교회가 아니라 만 명의 개인이 될 수 있음을 기억하라.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서 교회는 특별한 조건들을 포함하고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 된 우리들은 특별히 교회의 입장을 주의해야 한다.


두 가지 기본적인 조건

 

오늘 두 가지를 언급하겠다. 이 두 가지가 다 갖추어져야 교회를 이룰 수 있다. 신약 성경에서는 우리에게 두 가지 기본적인 조건을 분명히 보여 준다. 첫째는 성령의 권위이고, 둘째는 지방의 경계이다.

 

1. 성령의 권위

 

우리는 반드시 성령이 없으면 교회도 없다는 것을 주의해야 한다. 교회는 결코 이상수(李常受)형제나 장우지(張愚之)형제나 유성화(兪成華)형제가 아니다. 교회에는 반드시 성령이 있어야 한다. 바꾸어 말해서 교회의 시작부터 끝까지, 한 가지 즉 권위와 능력과 생명인 성령만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오직 한 성령의 생명과 능력과 권위가 있을 따름이다.

 

오늘 이 자리에 연장한 형제들이 많다. 예를 들어, 두(杜) 형제가 『나는 이십 년간 교회 안에 있었기 때문에 어떤 주장을 내세우거나 어떤 일을 전개시킬 수 있다.』고 말한다 하자. 그럴 때 여러분은 여기에 방해하는 어떤 것이 추가되었음을 볼 수 있다. 여기에 두(杜) 형제가 있을 뿐 성령이나 교회는 없게 된다.

 

여러분은 성령이 계시지 않는 곳이 곧 교회가 부재하는 곳임을 기억하라. 교회는 주님의 성령이 그-교회-를 통해 아무 방해 없이 그분의 뜻을 표명할 수 있는 곳이다. 주님이 이 땅에 계실 때 마리아가 그분께 드린 신체를 사용하셨듯이 오늘날 성령 안에서 주님은 오늘날의 교회를 사용하신다. 교회의 가장 높은 경지는 여전히 그리스도의 몸이다. 바꾸어 말해서 성령의 뜻을 표현할 수 있는 것이 교회라 불리울 수 있다.

 

오직 성령에게 권위가 있음

 

좀 더 추가하여 먼저 연장한 형제들에게 말하겠다. 여러분은 어느 정도 권위가 무엇인지를 알 것이다. 여러분은 젊은 형제들에게 권위에 복종하라고 말한 적이 있을 것이다. 오늘 기본적인 문제는 여기에 있다. 여러분이 권위에 복종하라고 했는데 도대체 누구의 권위에 복종하라는 것인가? 내가 말하지만, 젊은 형제들이 자신을 빙자하여 한 말이 장애가 되듯이 장년 형제들이 자기를 빙자하여 한 말 또한 장애가 될 수 있다. 오직 성령의 권위만이 참 권위이다.

 

오늘날 왜 젊은 형제들이 연장한 형제들의 말을 들어야 하는가? 그 이유는 연장한 형제들이 하나님 앞에서 배운 공과가 많고 하나님의 권위를 많이 알며 그들에게서 성령이 쉽게 흘러나오기 때문이다. 마치 수도관이 쓰레기와 장애물이 없이 여러 해 동안 흘렀기 때문에 잘 통하는 것과 같다. 젊은 사람들이 연장자들을 순종하는 것은 연장자가 권위이기 때문이 아니라 성령이 연장자들을 통해 말하기가 쉽기 때문이다. 그가 여러 해 동안 주님의 일을 했기 때문에 성령이 그들의 몸에서 쉽게 흘러나가는 것이다.

 

내가 연장한 형제들에게 순종하기를 배우는 것은 그들 몸에 성령의 권위가 있기 때문이다. 내가 그들의 말을 듣지 않을 때 내 몸에 있는 성령의 권위를 쉽게 잃게 된다. 우리는 결코 연장한 형제들의 권위를 세우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연장한 형제들을 쉽게 통과하는 성령의 권위를 세우는 것이다. 바꾸어 말해서 교회 안에는 오직 성령의 권위가 있을 따름이다. 개인에게서 나온 것은 권위가 없다. 장로들이나 연장한 형제들이나 영적인 사람에게 권위가 없고 오직 성령에게만 권위가 있는 이것을 가리켜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한다.

 

성령의 권위의 출구

 

요즘 나는 한 가지 일을 보았다. 어느 형제가 몇 년 전 그의 손에 무거운 물건을 들고 먼 길을 달렸었다. 후에 그는 손이 약간 결린다고 느꼈는데 갈수록 심해져 이제는 그 손이 거의 움직일 수 없게 되었다. 그 형제는 『온 몸이 내 것이지만 이 손만은 내 것이 아닙니다. 이 지체는 남의 것같이 나와 다툽니다.』라고 말했다.

 

나는 어느 누구도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들어 보지 못했다. 나는 종종 병을 앓은 사람이므로 언제든지 어떤 지체의 존재가 느껴질 때 그 지체가 병에 걸렸음을 알 수 있다. 사람의 몸이 최상일 때는 몸이 있다는 것을 느끼지 않을 때이다. 언제든지 폐의 호흡이 느껴질 때 폐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언제든지 심장의 뛰는 것을 느낄 때 심장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나는 태어나서 십여 년 동안 치아의 존재를 느끼지 못했다. 그러나 어느 날 내가 치아의 존재를 느낄 때 나는 밤새도록 잠을 이루지 못했다.

 

내가 말하지만 몸은 매우 자연스러운 것이고, 존재를 느끼는 정도의 하나일 뿐 아니라 존재하지 않은 것처럼 하나인 것이다. 오늘 아마 당신은 당신의 손가락의 존재를 느끼지 못할 것이다. 만일 내가 당신에게 당신의 손가락의 존재를 느끼느냐고 묻는다면 당신은 이상히 여길 것이다. 그러나 만일 당신의 손을 다쳤다면 하루 종일 불편하게 느낄 것이다. 언제든지 당신이 어떤 것을 느낄 때 그것은 문제가 있는 것이다.

 

몸이 그 지체를 사용하지 못할 때 몸에는 문제가 생긴다. 교회 안에서 성령이 완전한 권위를 얻으려면 아무 장애 없이 온 몸이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어야 한다. 한 지방에 방해물이 생길 때 몸에 문제가 생긴다. 모든 사람이 성령의 권위 아래 굴복할 때 성령이 어떤 사람을 사용해도 몸 안에 장애물이 없다. 모든 것이 순조롭게 된다. 권위가 순조로울 그 때가 바로 몸이 건강할 때이다. 모든 사람이 성령에게 쓰임받을 수 있을 때, 그곳에서 성령은 권위를 가지며 모든 것이 매우 자연스러울 것이다. 성령의 완전한 권위가 바로 교회의 입장이요 그리스도의 몸이다.

 

오늘 어떤 단체에 성령의 권위를 순종하는 형제 자매가 있고 순종하지 않는 형제 자매들도 있다면, 당신은 거기에 교회의 입장이 없음을 볼 것이다. 교회의 입장은 바로 성령이다. 언제든지 성령에게 득죄할 때 교회의 입장을 잃어 버리게 된다. 오늘 모든 형제 자매들의 결정이 곧 그리스도의 몸인 것은 아니다. 오늘 천 육백 명이 다 손을 들어 어떤 일을 통과시켰다고 해서 이 천 육백 명이 손 든 것이 곧 교회는 아니다. 이는 천 육백 명의 문제가 아니라 성령의 권위가 집행되었는가의 문제이다. 성령의 권위가 없다면 교회의 입장도 없는 것이다. 모든 사람이 성령의 권위를 순종해야만 교회의 입장이 있다.

 

몸이란 무엇인가? 당신이 자유스럽게 사용할 수 있는 것을 몸이라 부른다. 몸은 다툼이 없고 어려움이 조금도 없고 어떻게 시키든 그대로 하는 것이 바로 몸이다. 당신과 다투는 것은 몸이라 칭하지 않는다. 한 지방 교회가 나타날 수 있는지의 여부는 성령을 순종할 수 있는지를 보아야 한다. 이런 순종이 나타날 때 교회가 나타나게 된다. 만일 어떤 형제가 자기를 좇아 말하고 결정하기를 좋아한다면, 그것은 성령의 권위를 파괴하고, 그리스도의 몸을 파괴하고, 교회를 파괴하는 것임을 기억하라. 그러므로 그 지방에는 교회가 없는 것이다.

 

어떤 곳이든 간판을 걸어놓는다고 해서 다 교회는 아니다. 형제 자매들이 자신의 뜻을 내려놓고 성령의 권위에 순종함으로 성령의 권위가 장애 없이 통과되는 것이 바로 교회이다.

 

하나님을 섬기고 사역의 책임을 맡고 있는 형제들은, 앞으로 이삼십 년, 오륙십 년이 지난 후 여러분의 머리카락이 희어진다 하더라도 여러분은 권위를 전하는 자와 권위의 출구에 불과할 뿐 여러분 자신은 권위가 아님을 알아야 한다. 언제든지 여러분 자신이 권위가 될 때 모든 것은 다 끝나게 된다.

 

사역하는 형제 자매들은 성령의 권위가 무엇인지를 철저히 알아야 한다. 여러분은 자신이 최소한 어떤 주장은 내세울 수 있다고 생각지 말라. 내가 말하지만 그 주장을 내세울 수 없다. 주님은 당신에게 권위를 주지 않았다. 여러분 자신은 권위의 출구가 될 수 있을 뿐 권위 그 자체는 될 수 없다. 당신이 백 세까지 살았고 백 년 동안이나 주님을 따랐다 하더라도 당신이 어떤 주장을 내세울 수 있다고 생각지 말라. 그렇지 않다. 단지 우리의 영이 훈련과 배움을 가졌고, 우리의 영이 남보다 조금 더 예민하고, 빛이 조금 더 많고, 우리가 하나님의 기본적인 원칙을 조금 더 만졌고,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익숙하며, 성령의 권위가 남보다 더 쉽게 우리 몸에서 나타난다는 것뿐이다.

 

우리는 형제 자매들을 권위로 다스리는 것이 아니라 권위로 그들을 섬기는 것이다. 권위 또한 우리의 봉사 중 하나이다. 나는 각 집회소 책임 형제들이, 권위가 여러분의 사역과 관계되고 여러분의 많은 사역 중 하나임을 주의하기 바란다. 다스리기 위한 것이 아니라 공급하기 위한 것이다.

 

어떤 점에서 다른 형제가 보지 못한 것을 내가 보고 다른 형제가 이해하지 못한 것을 내가 이해할 것이다. 내가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였으므로 하나님의 뜻을 그에게 알려 주면서, 『형제님, 당신은 이렇게 해서는 안 됩니다. 당신이 이렇게 하는 것은 하나님의 권위를 거스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당신은 반드시 포기해야 합니다.』라고 말해 주어야 한다. 우리는 권위로 형제를 다스릴 것이 아니라 권위를 사용하여 형제를 공급하며 섬겨야 한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는 성령의 권위의 출구가 되어 형제들을 공급하기를 배워야 한다. 우리는 형제를 통제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권위를 세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권위가 공급으로 흘러나가게 하기를 배워야 한다.

 

당신의 지위가 어떠하든, 당신이 감독이든 사도이든 집사이든, 당신 자신의 권위를 세우고 당신 개인의 권위가 나올 때 당신에게는 교회 입장이 없게 되고 전체 교회의 입장을 파괴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전체 교회의 입장은 성령의 권위 위에 건축되었기 때문이다. 언제든지 성령의 권위에 득죄할 때 문제가 생기며 교회의 입장은 없게 된다.

 

온 교회가 성령의 권위에 순종할 때, 그것은 마치 주님이 이 땅에서 마리아가 드린 몸을 사용하신 것처럼, 그분의 몸을 사용하여 말하고자 할 때 말하고 듣고자 할 때 들으며 걷고자 할 때 걷는 것이다. 마리아가 주님을 위해 준비한 몸은 가장 적합하다. 그 몸은 몸이 존재하지 않은 것처럼 주님 자신 같을 정도로 협력할 수 있었다. 그 화합과 하나를 위해서 조금도 어려움과 다툼이 없었다.

 

이것은 오늘 손을 쓰려 할 때 쓰지 못하고 눈을 사용하려 할 때 사용할 수 없고 말하려 할 때 혀가 돌아가지 않고 머리를 사용하려 할 때 머리가 생각지 않는 것과 다르다. 이는 교회가 있지만 없고 그리스도밖에 없는 것처럼 주님이 자연스럽게 사용하여 통과하실 수 있으며, 그 통과는 통과하지 않는 것처럼 합치되어 자연스럽다는 말이다. 성령의 권위가 교회를 통과할 때의 그 자유로움과 합함은 그 권위가 통과하지 않는 것 같다. 성령의 권위가 완전히 통행될 수 있는 것이 곧 교회이다. 언제든지 저항과 저지가 있는 것은 교회가 아니다. 언제든지 움직이지 못하고 개인이 나올 때 그것은 문제가 있는 것이고 교회를 파괴하며 교회라 할 수 없다.

 

이제 나는 오늘날의 문제로 돌아와 말하겠다. 주님은 우리에게 소위 교회라 일컫는 교파를 비판할 자유를 주지 않으셨다. 그러나 우리가 시인하지 않으면 안 될 한 가지 일은 우리 중 교파에서 나온 많은 연장한 형제들이 이런 역사를 알고 있다는 것이다. 여러분 많은 형제들은 세상과 죄에서 나왔지만, 주의 이름을 부르는 단체 속에 아직도 많은 사람의 뜻과 결정과 방법과 조직과 명칭과 사람의 전통이 있다는 것을 모를 것이다. 나는 이런 것을 많이 말하기를 원치 않는다.

 

나를 용서하라. 우리가 부르심을 받을 때, 처음부터 끝까지 우리의 기본적인 입장은 곧 교회 안에 있는 성령의 권위를 순종하고 세우며 자신의 권위를 무너뜨리는 것이었다. 내가 이렇게 말하는 것을 주님이 용서하시기 바란다. 왜냐하면 성령의 권위는 사람이 세울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젊은 형제들에게 얕은 비유로 말하는 것을 용서하기 바란다. 예를 들어, 만일 내가 내일 호랑이 한 마리를 내보낸다면 호랑이를 보호하기 위해 경호대를 붙여줄 필요가 있겠는가? 그럴 필요 없다. 호랑이는 경비가 없이도 스스로 보호할 줄 안다. 성령은 우리의 부축이 필요하지 않다. 성령의 권위는 교회 안에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이 열심을 내어 그것을 세울 필요가 없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성령의 권위가 계속 나타나도록 단지 헌신하고 무릎 꿇으면 된다. 지금은 기꺼이 헌신하겠느냐를 말하고 있는 중이다. 언제든지 하나님의 자녀들이 순종하지 않을 때 성령의 권위는 나타날 수 없다. 오늘날 문제는 우리의 헌신이 충만한가에 있다.

 

나는 우리가 성령의 권위를 위하여 다시 한 번 하나님 앞에서 새롭게 헌신하기 바란다. 이렇게 기도해야 한다. 『주여, 교회 안에서 당신이 머리가 되소서. 나로 하여금 방해하고 저지하지 않는 사람이 되게 하시며, 나에게 개인적인 것이 없게 하소서.』

 

여러분은 교회 안에 어떤 개인적인 것이 들어올 때, 그것이 얼마나 좋은 것이든간에 교회 안에 다른 어떤 것이 추가되었으며 장애물이 생겼음을 알아야 한다. 내 몸에는 오직 내 자신의 지체만 담을 수 있다. 내 몸에 다른 사람의 것을 들어오게 할 수 없다. 다른 사람의 제일 좋은 것일지라도 내 몸에 둘 수 없다. 내 몸에는 내게 속한 것들만 있을 수 있다. 다른 사람의 것이 아주 귀하다 해도 내 몸에 둘 때 아마 독이 될 것이다.

 

우리는 자기 것을 교회 안에 가지고 들어오지 않기를 배워야 한다. 어떤 것이 매우 좋은 것이라 해도 그것이 성령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면 교회 안으로 가지고 들어올 수 없다. 그것을 가지고 들어올 때 입장은 없어진다. 교회 안에는 성령이 하나요 권위도 하나요 능력도 하나요 교통도 하나이며 이름도 하나이다. 무릇 성령에서 나오지 않은 것을 교회 안에 둘 때 즉시 입장을 파괴하며 교회는 사라진다.

 

성령이 시작하지 않은 것은 교회가 아님

 

오늘 내가 한 마디 하는 것을 용서하기 바란다. 많은 사람들이 상해에서 전도회나 신학교나 성경 학교나 사경회를 세우는 것은 그리 큰 잘못이 아니다. 그러나 교회를 세울 수 있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그 이유는 성령에게 순종할 수 없고 사람의 권위가 나오고 개인의 것이 나올 때 교회는 없어지기 때문이다. 그 시작한 것이 성령이 아니라면 교회가 아닌 것이다.

 

나는 형제 자매들이 이 심각성을 보았는지 모르겠다. 우리 몇 사람이 성령의 인도하심이 있다면, 공장을 세우는 것은 가능하다. 그러나 교회는 불가능하다. 당신이 믿는이든 믿지 않는 이든, 당신에게 하나님의 생명이 있든 없든, 당신은 교회를 세울 수 없다. 성령에 의해 시작되지 않은 것은 교회가 아니다. 이것은 매우 심각한 문제이다. 어느 누구의 시작으로도 교회를 세울 수 없다. 왜냐하면 본래 사람에게는 성령의 권위가 없기 때문이다.

 

성령의 권위가 없다면 교회가 없는 것이다. 당신이 어떠하든, 당신에게 성령의 시작하심이 없다면 교회를 세울 수 없는 것이다. 먼저 시작이 어떤가를 물어야 한다. 성령의 시작하심이 없이는 어떤 시작도 가질 수 없다. 우리는 성령의 능력 아래 굴복하여 자기 자신을 하나님이 지배하시는 권위 아래 두어 자신의 자유함을 구하지 않고 완전히 그것에 제한받아야 한다. 우리는 성령의 권위가 우리 모든 사람에게서 다 통행되게 해야 한다.

 

2. 지방의 경계

 

교회는 또한 두번째 입장이 있어야 한다. 두번째 것이 없어도 교회의 입장이 없게 된다. 여러분은 아마 모든 사람들이 권위를 살아 나타내고 성령의 권위 아래 살고 있는데도 교회를 세우기에 충분치 않느냐고 물을 것이다. 충분치 않다. 성경에서는 우리에게 교회를 세우려면 두 가지가 있어야 함을 분명히 보여 준다. 첫째는 성령의 권위이고 둘째는 지방의 경계이다. 당신이 이것을 보지 못했다면 교회 입장을 깨닫지 못한 것이다.

 

당신은 이상하다고 느끼지 않는가? 이것은 금시 하늘에서 땅으로 떨어지는 것처럼 보인다. 교회가 또한 땅에 있다는 것은 틀림없는 일이다. 왜냐하면 교회는 절반은 하늘에 속하고 절반은 땅에 속하기 때문이다. 하늘에 속한 부분은 성령의 권위를 말하고 땅에 속한 부분은 지방의 경계를 말한다. 이것은 성경 안에 매우 기묘한 일이다. 성경은 교회가 완전히 지방에 속한다는 것을 우리에게 분명히 보여 준다. 예를 들면,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에서 예루살렘은 하나의 지방이다. 「고린도에 있는 교회」에서 고린도도 하나의 지방이다. 「안디옥에 있는 교회」에서 안디옥은 하나의 도시이며, 「에베소 교회」에서 에베소는 하나의 항구였다. 성경 안에 모든 교회의 입장은 모두 존재하는바 지방 위에 세워진 것이고 지방을 경계로 삼는다.

 

여기서 특별한 한 가지를 여러분이 주의하기 바란다. 예를 들어, 상해에 있는 형제 자매들이 교회의 입장에 서 있으려면 오직 성령과 상해의 입장 위에 서 있어야 한다. 성령의 입장 위에 서야 하겠지만 또한 상해의 입장 위에 서 있어야 한다. 그 이유는 상해가 우리의 거하는 지방이기 때문이다. 여러분이 지방을 다른 것으로 바꿀 때 여러분은 즉시 교회의 입장을 잃게 된다. 몇 가지 예를 들겠다.

 

교회와 교회들

 

사도행전에 「유대에 있는 교회들」이라는 말이 있다. 여기서 교회를 말할 때 헬라어와 영어와 중국어에서 모두 복수로 되어 있다. 유대에 있는 교회들인 것이다. 왜 복수인가? 그것은 당시 유대가 로마의 한 도(道)로 되었기 때문이다. 한 도에는 많은 지방이 있다. 그러므로 한 도에 여러 교회가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유대에 있는 교회가 아니라 유대에 있는 교회들이다. 성경에는 지방 교회가 있을 뿐 도(道) 교회가 없다. 갈라디아 같은 경우 하나의 도이기 때문에 갈라디아 교회들이라고 말한다.

 

에베소는 하나의 항구이자 지방이기 때문에 에베소에 있는 교회는 단수이다. 성경 안에서 이 점은 매우 분명하다. 예를 들어, 빌라델비아는 하나의 도시이므로 오직 한 교회밖에 없다. 아시아 곧 지금의 소아시아는 큰 도(道)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성경은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들이라 하고 아시아 교회라고 말하지 않았다.

 

한 지방에 오직 한 교회뿐임

 

여러분은 세계 교회가 없다는 것을 주의하기 바란다. 그러므로 천주교는 틀렸다. 국교회가 없기 때문에 성공회(영국 교회)도 틀렸다. 도교회가 없으며 민족 교회도 없다. 성경에는 다만 가장 작은 행정 단위의 교회가 있고 오직 지방에만 교회가 있으며 도시에 교회가 있을 따름이다.

 

한 지방에 있는 교회는 결코 다른 지방에 있는 교회와 합하여 한 교회를 이룰 수 없다. 한 남편에게 한 아내밖에 없듯이 한 도시에는 한 교회가 있을 따름이다. 그러므로 안디옥은 안디옥 교회들이라고 말하지 않고 안디옥 교회라고 말했다. 만일 안디옥에 있는 교회들이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틀린 것이다. 하나님은 한 지방에 많은 교회들이 있을 수 없고 오직 한 교회만 있게 하였다. 그러므로 성경 안에는 고린도 교회들이나 안디옥 교회들이 없다. 성경에서는 안디옥에 있는 교회, 빌립보 교회, 빌라델비아 교회를 말한다. 다 단수로 되어 있다. 안디옥이나 빌립보나 빌라델비아에는 교회들이 없다.

 

그러므로 교회에 대한 하나님의 정하심은, 영적인 면에서는 성령의 권위이고 외관으로는 지방의 한계이다. 고린도 교회가 교회를 네 부류로 나누려 할 때 바울은 즉시 그들에게 그것은 당 짓는 것이고 육에 속한 것이라고 말했다. 고린도인들이 바울교, 게바교, 아볼로교, 그리스도교 등 여러 작은 교회들로 나누려 할 때 성령은 육에 속한 것이라고 말했다.

 

한 도시, 한 지방에는 오직 한 교회밖에 있을 수 없다. 교회가 하나 더 많아질 때 그것은 곧 당 짓는 것이요 하나님께 버림받는 종파가 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눈에서 볼 때 고린도 교회는 육에 속했다. 왜 그런가? 한 지방에는 두번째 교회를 세울 수 없고 오직 한 교회밖에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하나가 있을 때 두번째 것은 당을 짓는 것이요 육에 속한 것이다. 한 지방에는 한 교회 이상 있을 수 없다.

 

어떤 사람은 사람에게 영적인 양식을 공급하기 위해서 교회를 세웠다고 말하지만 영적인 양식은 교회를 세우는 충분한 입장이 될 수 없다. 어떤 사람은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성경을 이해하게 하려고 교회를 세웠다고 말한다. 그러나 사람으로 성경을 이해하게 하는 것도 교회를 세우는 충분한 입장이 될 수 없다. 사람에게 성경을 알도록 가르치는 것도 교회를 세우는 입장으로 충분치 않다. 어떤 사람은 우리에게 부흥이 필요하다면서 부흥회(會)를 만든다. 최근 어느 지방에 흥분만을 위한 흥분회라는 단체가 세워졌다. 그러나 흥분도 교회를 세울 입장이 못 된다. 사람은 교회를 세울 수 없다. 그 이유는 사람에게 교회를 세울 입장이 없기 때문이다.

 

바울과 게바와 아볼로에게는 다 교회를 세울 입장이 없다. 에베소는 교회를 세울 입장이 있으므로 바울은 에베소보다 못하다. 고린도는 교회를 세울 입장이 있다. 그러나 바울, 게바, 아볼로는 모두 고린도에 미치지 못한다. 그들은 교회를 세울 입장이 없으며 자격이 충분치 못하다. 왜냐하면 교회는 다 지방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지방이 없으면 합당치 않고 교회를 세울 수 없다. 하나님이 지방 경계를 입장으로 삼으신다는 것은 매우 분명하다.

 

상해에는 오직 한 교회밖에 있을 수 없음

 

혹 상해에 교파의 위치나 종파의 위치나 다른 어떤 것 위에도 서 있지 않고 상해의 위치에 서 있는 교회가 있다 하자. 그럴 때 그 교회를 상해 교회라고 부른다. 가령 나와 우지(愚之) 형제 사이에 다툼이 생겨서 그로 남양로(南陽路)에서 모임을 갖게 하고 나는 북사천로(北四川路)에서 한 장소를 찾아 집회를 갖는다 하자. 그는 남으로, 나는 북으로 가므로 방향이 상반되는 것 같다. 내가 북사천로에서 말씀을 전하여 한 무리의 죄인들이 구원받았다 하자. 남양로의 집회장소에 이천 사백 명이 앉을 수 있다면 나는 북사천로에서 그것보다 크게 이천 육백 명이 앉을 수 있는 집회소를 지을 수 있다. 나도 그곳에서 복음을 전하며 예배당을 세워 선교를 한다.

 

내가 말하지만, 내가 사람을 구원으로 인도하고 말씀 전하고 온전케 할 수 있겠지만 교회를 세울 수는 없다. 왜 그런가? 그것은 상해를 입장 삼는 그 자격이 이미 사람에 의해 강탈되었기 때문이요 상해에는 오직 한 교회밖에 없기 때문이다.

 

교회가 없는 지방에서는 교회를 세울 수 있음

 

예를 들어, 오늘 귀주(貴州)의 필절(畢飾)이라는 지방에 아직 지방 입장에 서서 교회를 세우는 사람이 없다 하자. 누가 귀주의 필절에 가서 교회를 세우려고 하는 생각은 가(可)한 것이다. 그 이유는 한 지방에 오직 한 교회밖에 없기 때문이다. 만일 교회가 하나 더해졌다면 하나님은 그것을 당 짓는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이것은 한 남자에게 한 아내밖에 없는 것과 같다. 당신이 아내를 취하지 않은 남자에게 시집갈 때 당신은 아내이다. 그런데 만일 어느 남자에게 이미 아내가 있다면 당신은 그 사람에게 합당하겠는가? 당신은 오직 아내가 없는 남자에게만 합당하다.

 

성경 전체는 우리에게 교회가 지방적인 것임을 보여 준다. 우리는 교회가 지방적인 것임을 반드시 보아야 한다. 서신에서는 고린도에 있는 교회 또는 에베소 교회라고 말하고 계시록에서는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라고 말했다. 한 지방에 오직 한 교회밖에 없다. 교회는 지방을 떠나서 독립될 수 없다.

 

그러므로 교회가 없는 지방에서만 교회를 세울 수 있음을 기억하라. 교회가 이미 세워진 지방에서 우리는 교회에 가입할 수 있을 뿐 교회를 세울 수는 없다. 일단 교회를 세울 때 그것은 당을 짓는 것이요 종파이며 하나님이 정죄하는 바이다. 여기서 여러분에게 묻겠다. 한 여자가 아내로 시집가는 것과 첩으로 시집가는 것에 무슨 차이가 있는가? 내가 말하지만 위치가 다를 뿐 다른 것은 다 똑같다. 입장이 다를 뿐 다른 것은 다 똑같다. 그녀가 대표하는 면에 있어서 다 똑같다 하더라도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입장이다.

 

분열이란 무엇인가

 

분열이란 무엇인가? 분열은 곧 입장이 없는 것이다. 입장이 없는 것은 분열이요 하나님이 정죄하시는 것이다. 내가 다시 귀주의 필절을 예로 드는 것을 용서하라. 당신이 필절에 가서 복음을 전하여 사람을 구원하고 사람을 온전케 하는 것과 북사천로에 가는 것과 무슨 차이가 있는가?

 

겉으로는 별 차이가 없다. 북사천로에서 복음을 전하면 사람을 구원시킬 수 없다거나 사람으로 영생을 얻게 할 수 없다는 말이 아니다. 북사천로에서는 사람이 구원받은 다음에 다 잃어버린다는 말도 아니다. 복음의 진리는 어디서나 변함이 없다. 말씀도 매우 분명히 전할 수 있다.

 

모든 것이 똑같은 것 같지만 당신은 북사천로에서 교회를 세울 수 없다. 당신이 북사천로에 가서 교회를 세우는 것은 곧 분열이다. 그러나 당신이 귀주의 필절에 가서 전한 메시지가 북사천로에서 전한 것과 똑 같다 하더라도 두 군데 다른 지방에 있는 것이며 두 가지 다른 입장이 있는 것이다. 귀주의 필절에 있는 것은 교회일 수 있지만 북사천로에 있는 것은 분열이다. 똑같은 교리가 두 지방에 있지만 이렇게 큰 차이가 있다.

 

당신이 귀주의 필절에서 세운 것은 주님의 상이요 주님의 잔치이며 만찬이다. 가령 당신이 필절에 있는 상(床)을 상해의 북사천로로 옮기고 사람도 모두 그곳으로 인도했다 하자. 그곳에서 당신은 과거에 하던 것처럼 동일한 방식으로 기도하고 성경을 읽고 찬양한다. 이러한 것들에 전혀 차이가 없다. 그러나 여러분이 필절에 있을 때는 교회이고 북사천로에 있을 때는 분열이다. 당신이 아내 없는 남편에게 시집가면 아내이지만 이미 아내가 있는 남자에게 시집가면 아내가 아니다.

 

우리는 교회가 없는 지방에서 교회를 세울 수 있다. 그러나 교회가 있는 지방에서 당신은 교회에 가입할 수 있을 뿐 따로 교회를 세울 수 없다. 이것이 성경의 기본 원칙이다. 당신이 「지방」을 돌아보지 않을 때 모든 것이 끝난다. 당신이 기본적인 입장을 버릴 때 당신은 입장이 없게 된다.

 

그러므로 나는 여러분이 하나님 앞에서 두 가지를 깨닫기 바란다. 첫째 하나님의 교회는 성령의 권위 위에 세워진다는 것이고, 둘째 하나님의 교회가 지방의 경계 위에 세워진다는 것이다. 교회의 입장은 성령의 인도 위에 세워진다. 그러나 당신은 우리가 북사천로에 간 것은 성령을 좇은 것이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 만일 당신이 성령의 인도를 좇은 것이라고 한다면 나는 먼저 당신의 지방이 틀렸다고 논쟁하겠다. 당신은 성령의 첫번째 제한을 거스렸으므로 죄를 범한 것이며 당신은 설 곳이 없다.

 

그러므로 성령이 있다고 말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그와 동시에 성령이 세운 지방의 범위를 주의해야 한다. 지방이 범위이다. 당신은 결코 임의로 움직일 수 없고 다만 순종해야 한다. 사람은 성령이 세운 지방의 범위 위에서 자유함을 가질 수 없다.

 

지방은 종파의 성립을 억제함

 

형제 자매들이 이 기본적인 원칙을 굳게 붙잡는다면 여러분은 분명히 볼 수 있게 된다. 당신은 많은 소위 교파, 교회, 단체와 조직에 대해 매우 투명하게 볼 수 있을 것이다. 지방의 입장 위에 세워지지 않은 모든 단체가 교회가 아님을 볼 것이다. 당신은 분명하다고 느끼는가, 이상 하다고 느끼는가?

 

나는 성경을 읽을 때 성령의 권위를 말하다가 지방 경계를 말하는 것은 하늘에서 땅으로 떨어지는 것 같기 때문에 매우 기묘하다고 느꼈다. 성경에서는 교회 입장이 성령의 권위임을 우리에게 보여 준다. 그러나 성경은 또한 성령만으로는 부족하고 거기에 지방 입장이 더해져야 함을 우리에게 보여 준다. 이 두 가지가 합해져야 교회를 이룰 수 있다.

 

이제 우리가 돌아가 다시 본다면 갈수록 분명하고 하나님을 찬미하게 될 것이다. 이 이 년 동안 만일 교회들이 지방의 제한을 받았다면 혼란에 이르지 않고 문제가 없었을 것이다. 만일 사람들이 하나님의 권위 아래 복종했다면 천주교와 개신교가 세워지지 못했을 것이다. 현재 중국에 있는 백여 교파, 그리고 전세계의 육백여 큰 단체와 오천 개의 작은 단체들이 세워지지 못했을 것이다. 그 이유는 다 지방의 제한을 받기 때문이다.

 

지방은 변하지 않음

 

내가 행정면에서 한 마디 하는 것을 용서하기 바란다. 왕조는 변하여도 지방은 변하지 않는다. 당(黨)이 변하여도 지방은 변하지 않는다. 나라가 변하여도 지방은 여전히 변하지 않는다. 상해는 여전히 상해이고 장춘(長春)은 여전히 장춘이다. 청나라 때에도 상해를 상해라 하고 중화민국 때에도 상해라고 했을 뿐 아니라 지금도 역시 상해라고 한다. 항쟁 (抗爭)시기에 국가 전체가 거의 중국의 모습을 잃었지만 지방은 변함이 없다.

 

모든 것이 변하지만 지방만은 변하지 않는다. 하나님이 정하신 것은 지방의 한계이다. 우리에게 로마 그 지방에 있는 교회가 있을 뿐 로마제국 교회는 없다. 명칭은 같아도 사실상 같은 것이 아니다. 성령이 로마시의 그 교회는 인정하지만 로마 제국의 그 교회는 인정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서 우리는 이 지방 입장을 지키기를 배워야 한다.

 

여러분은 교회가 반드시 지방 입장 위에 서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기 바란다. 우리는 이 여러 해 동안 이 입장 위에 서서 다른 이름들을 거절해 왔다. 어떤 단체이든 상해를 입장 삼는 것이 아니라면 교회가 아닌 것이다. 여기서 우리의 봉사는 상해 교회를 건축하기 바라는 것이다. 여러분이 밖의 사람들과 접할 때 당신에게 이에 대해 물어보면 여러분은 그들에게 이것을 분명히 보여 주어야 한다. 교회는 내용면에서 성령의 권위가 있고 외관상으로는 지방의 경계가 있다. 성령의 권위에 지방 입장이 추가되어야 교회인 것이다. 속에 성령의 권위가 없고 밖에 지방 입장이 없는 것은 교회가 아니다.

 

교회 입장과 영적인 축복

 

교회의 입장이 분명할수록 영적인 축복이 더욱 풍성하다. 우리는 하나님이 이 몇 년 사이에, 특히 이 일 년 동안 교회 입장을 특별히 축복하셨음을 본다. 많은 형제 자매들이 개인의 길이 무엇이고 교회의 입장이 무엇인가를 보기 시작했다. 모든 사람이 성령의 권위가 모든 사람 위에 있으므로 개인적으로 활동하지 않고 동역으로 하나님을 섬길 때 당신은 주님의 축복을 보게 된다. 그럴 때 어떤 지방 교회의 인원의 증가는 몇 퍼센트가 아니라 두 배, 다섯 배, 열 배가 될 것이다.

 

대북은 본래 삼십여 명밖에 안 되었는데 지금 이미 천 명이 되었다. 우리가 몇 형제들을 보내었는데 그들은 매우 열심히 수고했다. 하나님은 계속 축복하고 계시고 사람은 계속 증가하고 있다. 내가 홍콩에 있을 때 어느 형제의 편지를 받은 적이 있는데 나는 다음과 같은 사건으로 그 형제가 교회를 아는 사람이라고 느꼈다. 대북에 있는 교회는 음력 설날 복음 집회를 본래 이 상수 형제님이 책임지도록 준비했었는데 후에 이 형제님이 어떤 일로 내게로 오게 되어 그들은 매우 실망하여 복음을 전할 수 없다고 생각했었다. 이 상수 형제님은 그 때 『내가 볼 때 이 상수 한 사람이 많은 것은 단지 한 형제가 많은 것에 불과하고 이 상수 한 사람이 적은 것은 단지 한 형제가 없는 것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만일 대북에 교회가 있다면 이 상수 한 사람이 있고 없는 것은 한 형제가 더 있고 없는 문제이다. 그러나 만일 대북에 교회가 없다면 이 상수 한 사람이 가버리는 것은 대북의 절반이 가버리는 것이다. 그후 결국 대북에 있는 형제들은 스스로 복음을 전하게 되었다. 자신이 복음 전할 수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어떤 형제들도 복음을 전해서 천 사백 명으로 하여금 주님을 영접하게 했다. 이틀의 복음 대회에서 첫날 침례받은 인수가 이백 이십 팔 명이었다. 그러므로 대북은 한 형제가 있으나 없으나 큰 영향을 받지 않는다. 이제 그 형제의 편지로 돌아가 보겠다.

 

나는 그 형제가 한 말을 좋아한다. 『나는 우리 형제들이 동역을 배우고 주님을 잘 섬긴다면 삼천이 아니라 만 명이 온다 하더라도 우리가 그들을 다 소화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교회가 기능을 발휘할 때 오백이 오면 오백 을 소화하고 천 명이 오면 천 명을 소화할 수 있다. 이것이 하나님의 교회이다.

 

하나님의 축복을 수용할 수 있는 그릇들이 있어야 함

 

어떤 사람은 주님께 오순절날 교회를 축복하신 것처럼 우리를 축복해 달라고 구한다. 내가 묻건대, 만일 주님이 실지로 축복하시면 어떻게 하겠는가? 참으로 주님이 오순절 때같이 축복하시면 어떻게 하겠는가? 주님이 당신에게 삼천 명, 오천 명을 주시면 어떻게 하겠는가?

 

만일 몇 천 명이 와서 교회에 사람이 가득 찬다면 우리는 즉시 소화할 수 없음을 보게 될 것이다. 가령 상해에서 한 번에 삼천 명이 더해졌다면 우리는 소화할 수 없을 것이다. 어떻게 침례 주어야 할지 모르고, 집회소 별로 떡 떼는 문제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모르고, 어떻게 그들을 온전케 하고 어떻게 심방할지도 모를 것이다.

 

교회가 강할 때는 온 사람만큼 소화할 수 있으며 엉망으로 버려두지 않을 것이다. 우리 중 천 오륙백 형제 자매들도 충분한 교통이 없는 채 거기에 천 명이 더해지면 어떻게 하겠는가? 만일 우리가 축복을 받는다면 우리는 감당치 못할 것이다. 우리는 조직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는 유기체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축복하셔서 삼천 명이 왔지만 이틀이 지난 뒤 이천 명이 떠내려갔다면 이것은 교회가 아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사람 중 얼마가 떨어졌는지도 모르고 사람들이 와도 모르고 가도 몰라서는 안 된다. 이것은 교회 같지 않다.

 

교회는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는 큰 유기체이다. 교회는 하나님이 크게 축복하실 때 그 축복을 받을 수 있는 그릇이 있어야 한다. 모든 형제 자매들이 성령을 순종할 때 모든 형제 자매들은 봉사를 갖게 되며 축복이 있게 된다. 내가 여러분에게 말하지만 성령이 역사하도록 여러분이 예비되지 않았다면 성령은 역사하시지 않는다. 여러분은 반드시 성령이 역사하시도록 준비되어야 한다. 우리는 더 많은 장소를 준비해야 한다. 주님이 사람들을 교회에 들어오게 할지언정 사람을 내보내게 해서는 안 된다.

 

성령이 역사할 때 당신은 장소가 부족하다는 것을 분명히 보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성령이 역사할 수 있도록 좀더 큰 집회소를 준비하여 분량을 넓힐 때 주님은 축복하시게 된다. 봉사자를 준비할 때 주님은 필히 축복하신다. 만일 여러분이 모든 사람으로 봉사하도록 준비하지 않았다면 성령은 역사할 방법이 없다.(「열린 문」에서 발췌함)

 

지방 입장에 관한 이것은 매우 복잡하다. 지금 우리는 간략하게 말할 수밖에 없다. 온 우주 가운데 교회는 오직 하나뿐이다. 왜냐하면 교회는 그리스도의 신부요 그리스도는 교회의 머리이기 때문이다. 머리이신 그리스도는 여러 개의 몸을 가질 리 없다. 그러므로 온 우주 안에 교회는 오직 하나로서 고금동서(古今東西)의 모든 구원받은 사람을 포함한다. 고금동서의 모든 구원받은 사람들을 더할 때 곧 교회인 것이다. 그 안에는 바울도 있고 베드로도 있으며 귀용 여사와 뮬러도 있으며 구원받은 우리들도 포함된다.

 

교회는 고금(古今) 동서(東西)를 막론하고 오직 하나밖에 없으며 하나뿐이다. 마치 달이 하나밖에 없고 또 하나뿐인 것과 같다. 당신은 미국에 있는 달이 어떻게 생겼느냐고 물을 수 없다. 달은 오직 하나뿐이요 우주 가운데 달은 유일한 것이다. 이와같이 교회도 똑같다.

 

우주 가운데 교회가 하나밖에 없지만 금세에 교회의 출현은 수천 개도 더 있다. 교회 자체는 우주적인 것이지만 금세에서 교회의 출현은 지방적인 것이다. 우주 가운데 교회 그 자체는 오직 하나밖에 없다. 그러나 금세에서 교회의 이 땅 위의 출현은 수천 개나 된다. 예루살렘에 교회의 출현이 있고 안디옥에도 교회의 출현이 있다. 에베소, 고린도, 로마 등 각 지방에 각각 교회의 출현이 있다. 교회의 지방에서의 출현이 곧 지방에 있는 교회요, 소위 지방 교회이다.

 

모든 지방 교회는 우주 교회가 그 지방에서 출현한 것이다. 안디옥에 있는 교회는 곧 우주 교회가 안디옥 지방에 출현한 것이다. 대북 교회는 곧 우주 교회가 대북 이 지방에 출현한 것이다. 한 지방에서의 우주 교회의 출현은 곧 그 지방에 있는 교회이다. 그러므로 교회 자체는 우주적인 것이나 교회의 출현은 지방적인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각지에서 교회의 출현이 지방적인 것이므로 각지에서의 교회 입장 또한 지방적인 것이다. 지방 입장 외의 어떤 입장도 교회의 입장이 아니다. 어떤 모임이 지방적인 것이 아니고 지방을 입장 삼는 것이 아니라면 그 모임은 교회 입장 위에 있는 것이 아니며, 교회 입장을 잃어버리고 교회 입장 외에 다른 입장에 있는 것이다. 지방 입장 외에 다른 어떤 입장도 모두 교회 입장을 잃은 종파이다.

 

고린도 지방에는 오직 고린도라는 지방을 입장 삼는 모임만 있어야 한다. 그 모임은 곧 고린도에 있는 지방 교회이다. 만일 고린도의 믿는이들 중에 다른 입장에 선 사람이 있다면 그들은 분열이요 종파인 것이다. 그들 가운데 자신이 바울에게 속했다거나 아볼로에게 속했다거나 게바에게 속했다는 사람들이 분열이고 종파일 뿐 아니라 그들 중에 그리스도에게 속했다고 말하는 자들도 분열이요 종파이다. 무릇 지방을 입장 삼지 않는 사람들이라면 그들이 얼마나 좋든지 간에 모두 하나의 종파이다.

 

무릇 한 지방에 있는 모든 믿는이들을 포함할 수 없는 입장이라면 그것이 무엇을 표방하든지 다 종파인 것이다. 고린도에 있는 믿는이들은 다만 고린도 그 지방 교회에 있는 사람들이라고 말할 수 있을 뿐이다. 만일 다른 것을 또 말한다면 그것은 하나의 종파이다. 그들이 어떠하든지 그들은 교회의 입장을 잃은 것이다.

 

교회의 입장은 지방적인 것이다. 만일 교회 안에 문제가 없다면 어떤 지방에서든지 교회의 출현은 오직 한 지방 입장을 가져야 한다. 교회에 문제가 있기 때문에 오늘날 한 지방에 많은 입장이 있는 것이다.

 

당신은 결코 「그리스도인 집회처(集會處)」를 하나의 입장이라고 생각지 말라. 또한 당신은 자신이 「그리스도인 집회처」에 속한 사람이라고 생각지 말라. 「그리스도인 집회처」는 하나의 입장이 아니며 우리의 명칭도 아니다. 「그리스도인 집회처」(현재 대북에서는 「교회 집회소」라고 개정했음)는 우리가 모이는 장소를 가리키고 정부에 등록하기 위해 있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의 명칭이 아니다. 나는 이 명칭을 길가에 던져 버리기 바란다.

 

우리는 명칭이 없다. 또한 우리는 영원히 명칭이 없기를 바란다. 우리는 어떤 종파에 속하거나 어떤 회(會)에 속하지 않는다. 우리는 단지 교회가 황폐한 오늘날 하나님의 긍휼과 빛 비춤을 받은 한 무리의 하나님의 자녀들로서 이 지방에서 교회가 잃은 입장으로 돌아와 함께 모이고 하나님을 경배하며 주님을 섬길 따름이다. 이 입장이 사람들에 의해 훼파되었지만 우리는 주님의 은혜를 힘입어 이 입장으로 돌아가기를 원한다. 이는 마치 구약에서 포로 된 데서 돌아온 이스라엘 사람들이 성전의 기초가 이미 훼파되었어도 당시 성전의 기초로 돌아가 하나님을 섬기는 것과 같다. 또한 당시 많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예루살렘 이외의 곳에 머물기 원했지만 느헤미야와 에스라와 하나님을 사랑했던 사람들은 여전히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성전의 원래 기초 위에서 하나님을 섬겼다.

 

오늘 주님의 은혜를 의지하여 우리도 이렇게 행하기를 원한다. 아직도 많은 형제 자매들이 교회 입장 밖에 있고 우리가 대북에 있는 모든 형제 자매들을 대표할 수는 없지만 우리는 여기서 여전히 교회의 입장 곧 사도 시대 당시 교회의 원래 입장으로 돌아가기를 바란다. 우리는 이 지방 입장 위에 서서 하나님의 모든 자녀들과 함께 집회를 가지며 섬기기 원한다.(「화어 직사(話語職事)」에서 발췌함)


워치만 니
[교회의 길, "제 1장 교회의 입장 문제", 한국복음서원]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kakao talk
퍼머링크
다음글 : 죄와 사망의 법
이전글 : 구원의 후사

댓글 0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찬양노트의 말씀방입니다. image 청지기 12.02.20.18:01 4916
82 하나님이 산에서 지시하신 식양대로 청지기 12.03.21.19:16 1367
81 회중, 권속, 몸, 새 사람 1 청지기 12.03.21.19:09 1335
80 거함의 비밀 청지기 12.03.21.19:04 1072
79 죄와 사망의 법 청지기 12.03.21.19:00 2045
교회의 입장 문제 청지기 12.03.08.15:15 970
77 구원의 후사 청지기 12.03.08.14:59 1102
76 선악이 아니라 생명임 청지기 12.03.08.13:32 884
75 계시를 구하는 기도 청지기 12.03.08.13:11 983
74 본질적인 삼일성과 경륜적인 삼일성 청지기 12.03.08.13:01 961
73 한 성경―한 계시 청지기 12.03.08.12:59 1012
72 진리의 기둥과 터 청지기 12.03.08.12:43 1194
71 그리스도인이 주의해야 할 네 가지 일 청지기 12.03.08.12:39 1104
70 새어버림과 떠돌아다님 청지기 12.03.08.12:32 968
69 사랑의 말씀 청지기 12.03.08.12:10 866
68 희년 청지기 12.03.08.11:37 1171
67 너희는 그리스도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느냐? image 청지기 12.03.08.11:24 991
66 주 예수에 대한 두 종류의 인식 청지기 12.03.08.10:22 990
65 배우면서 하라 청지기 12.03.08.10:17 830
64 혼과 영의 구분 청지기 12.03.08.10:13 1696
63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청지기 12.03.08.10:09 1142
62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청지기 12.03.08.10:00 1645
61 인격이신 그리스도를 사랑함 청지기 12.03.08.09:50 927
60 잠언에 대해 가져야 할 건전한 태도 청지기 12.03.08.09:46 898
59 영 안에 생명이신 그리스도 청지기 12.03.08.09:31 920
58 성경 해석의 원리 청지기 12.03.08.09:21 948
57 성령의 통제 청지기 12.03.08.09:16 981
56 십자가를 통한 사역 청지기 12.03.08.09:12 1004
55 만유를 포함한 그리스도 청지기 12.03.08.09:08 863
54 하나님의 건축을 위한 어린양의 일곱 눈 청지기 12.03.08.09:04 866
53 육체의 탄식―휴거되기 전 청지기 12.03.08.09:01 965
52 합일과 분열의 근거 청지기 12.03.08.08:57 938
51 교회들이 세워진 근거 청지기 12.03.08.08:55 862
50 어떻게 내면의 인도를 따르는가 청지기 12.03.07.16:33 809
49 모든 사람을 사랑함 청지기 12.03.07.16:24 931
48 성경 해석을 지배하는 원칙 청지기 12.03.07.16:22 839
47 하나님이 계심에 대한 체험과 토론 청지기 12.03.07.16:06 993
46 네 가지 소극적인 요인들을 주의하라 청지기 12.03.07.15:59 954
45 십자가에 못박힌 생활을 삶 청지기 12.03.07.15:52 1076
44 가정집회들과 이주와 전시간 사역자들 청지기 12.03.07.15:42 944
43 동료 믿는이들을 향한 우리의 태도 청지기 12.03.07.15:37 758
42 성도들을 진리 안으로 이끎 청지기 12.03.07.15:24 806
41 구속과 하나님의 완전한 구원에 대한 이상 청지기 12.03.07.14:02 1169
40 사역의 하나에 대한 공과 청지기 12.03.06.12:48 776
39 하늘에 속한 이상―몸에 대한 이상 청지기 12.03.06.12:23 1174
38 하늘에 속한 이상―그리스도에 대한 이상 청지기 12.03.06.12:16 1448
37 복음을 위해 바울이 고난받고 은혜를 누림 청지기 12.03.06.11:47 2349
36 권위의 기도 청지기 12.03.06.11:42 1385
35 교회의 기도 사역 청지기 12.03.06.11:36 1345
34 주님의 사역자의 성격―진리의 절대성 청지기 12.03.05.15:43 9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