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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가 섬기는 것은 하늘에 있는 것의 모형과 그림자라 모세가 장막을 지으려 할 때에 지시하심을 받음과 같으니 가라사대 삼가 모든 것을 산에서 네게 보이던 본을 좇아 지으라 하셨느니라』(히 8:5)
『또 주의 종으로 고범죄를 짓지 말게 하사 그 죄가 나를 주장치 못하게 하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정직하여 큰 죄과에서 벗어나겠나이다』(시 19:13).
Ⅰ
영적 역사에서 가장 긴요한 것은, 바로 산에서 지시한 식양을 아는 것이다. 영적 일의 많은 것들이 긴요하다. 그 중의 하나라도 결여되면 우리의 일은 영적 가치를 잃고 하나님의 기뻐하심을 얻지 못한다. 긴요한 많은 일 가운데 가장 긴요한 것은, 바로 산에서 지시한 식양이다. 산에서 지시한 식양이 곧 하나님의 계획이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의 계획에 대해 분명치 못하다면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없다.
히브리서는 장막이 하나님이 지시하신 식양을 따라 지어졌음을 말한다. 모세는 장막을 짓기 전에, 반드시 산 위에서 사십 주야 동안, 하나님으로부터 장막의 식양과 짓는 방법에 대한 지시를 받아야 했다. 성소에서 제단에 이르기까지, 장막을 덮는 네 겹의 덮개들에 어떤 재료와 어떤 색깔을 사용하는가에 대해서도 다 일정한 식양이 있다. 한 가지도 마음대로 할 수 없다. 다 일정한 계획과 표준이 있다. 장막 안의 제단, 물두멍, 상, 등대, 향로, 언약궤, 또 다른 모든 것들의 재료와 칫수와 색깔은 다 하나님께서 규정하신 식양대로여야 했다. 단 한 가지도 모세 자신의 뜻을 따라 지은 것이 없다.
장막을 건축하는 것과같이 교회 건축에 있어서도 하나님의 예정하신 계획이 있다. 큰 일에나 작은 일에나 다 일정한 방법이 있다. 모세는 장막의 식양을 설계하는 데 책임을 지지 않고, 오직 그가 산 위에서 지시받은 식양을 따라 만드는 데 대해 책임을 지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종의 영광은 그가 독자적으로 하나님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느냐에 있지 않고, 그가 하나님의 명백한 뜻을 따라 역사할 수 있다는 데 있다. 하나님의 계획을 명백히 알고, 하나님의 계획을 따라 행하는 것이 그리스도의 종의 영광이다.
여러 해 동안 주님을 섬겨온 한 자매는, 『사람은 하나님의 일에 있어서 가장 자유롭지 못하다.』라고 말했다. 모세는 장막을 지을 때 작은 못 하나까지도 금으로 써야 할지, 은으로 써야 할지 자신의 자유 없이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지었다.
모세는 지극히 온유한 사람이다(민 12:3). 온유함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강팍하지 않고 부드러운 것이다. 하나님이 명하시는 대로 행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명하시고 지시하신 칫수와, 색깔과, 모양과, 크기대로 그는 다 만들었다. 모든 일을 하나님의 지시와 분부대로 행하고, 한 가지 물건도 자기의 뜻대로 만들지 않은 것이 바로 모세의 온유함이다.
모세가 장막을 지은 것은 우리에게 많은 영적 빛을 준다. 하나님의 종이 영적인 일에 있어서 마땅히 서야 할 위치가 어떠한 것인가를 우리에게 알려 준다. 장막에 관한 일들은 모두 다 하나님 자신이 규정하신 것이다. 하나님은 한 가지 물건의 한 가지 방법도 모세에게 규정하도록 하시지 않았다. 하나님은 모세가 의견을 제시하는 것을 허락지 않으셨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장막을 짓는 큰 원칙을 말씀하셨을 뿐 아니라 그 속의 세밀한 원칙도 함께 말씀하셨다. 모든 물건의 모양과, 색깔과, 재료와, 치수뿐 아니라 만드는 방법까지도 하나님이 규정하셨다. 모세는 하나님이 분부하신 치수와 모양을 따라 만들 뿐 아니라 하나님이 분부하신 방법대로 지어야 했다.
예를 들어, 양장은 가는 베실로 만들되, 가늘게 꼰 베실로 만들어야 했다. 등대는 정금으로 만들되 정금을 쳐서 만들어야 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의견을 제시할 여지를 주시지 않았다. 하나님은 자신의 원함을 알고 계신다. 그분은 사람이 그분의 모사 되는 것을 원치 않으셨고, 그의 종이 주장하고 원하는 대로 행하는 것을 허락지 않으셨다.
그리스도의 종의 가장 큰 행복은 산 위에서 하나님의 지시를 얻어 하나님이 그에게 준 일이 어떠한 것이며 그 일에 대해 하나님께서 예정하신 식양이 어떠한 것인가를 아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종들이여! 당신은 하나님 앞에 와서 당신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나님께 구하는가? 당신은 하나님이 당신에게 지적하신 일에 대하여 그 시간과 방법을 구하는가? 아니면 당신의 예정과 계획과 규정대로 일을 하는가?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이 그분의 일에 대해 자세히 규정하시지 않고, 많은 일들을 그들에게 주어 그들 자신이 주장하여 행하도록 하시는 줄로 여긴다. 그들은 그들이 하나님의 사역에 있어서 다만 종으로서 그들에게 분부하신 것만을 행할 뿐임을 보지 못했다. 그들은 「그가 너희에게 말씀하신 대로 지켜 행할지니라」는 것을 주의하지 않았다. 그들은 자신이 그리스도의 몸의 한 지체에 불과하며 「머리를 붙들고」 절대적으로 머리의 지배를 받아야 한다는 것을 잊어버렸다. 그들은 그들의 혈과 육의 생명과, 타고난 능력으로 하나님의 계획 가운데 빠뜨린 것을 채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참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게 해주시기를 구하여, 하나님의 일에서는 그리스도만이 절대적인 주(主)시요, 하나님의 일에 관한 모든 것은 반드시 그의 명령이 있어야 행할 수 있음을 보아야 한다. 그리스도의 종의 능력과 영적 가치는 그가 전심으로 하나님의 뜻을 알기를 구하고, 하나님의 계획을 따라 행하느냐에 있다. 그렇지 않으면 그가 하는 일이 밖으로 볼 때 굉장한 것 같아도 주님의 심판대 앞에서 시험의 불을 통과할 때에는 풀이나 짚에 불과하다는 것을 나타낼 것이다.
Ⅱ
시편 19편 13절에서는, 『또 주의 종으로 주제넘은 짓을 하지 말게 하사 그 죄가 나를 주장치 못하게 하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정직하여 큰 죄과에서 벗어지겠나이다』(원문 참조)라고 했다. 이것은 하나님의 종이 하나님 앞에서 두 가지 죄를 지을 수 있음을 말해 준다. 하나는 불순종의 죄요, 하나는 주제넘은 짓을 하는 죄이다.
하나님께서 행하라 하신 것을 당신이 행치 않을 때, 그것은 불순종의 죄이다. 이러한 죄는 우리 모두가 범하기를 원치 않는다. 그러나 형제 자매여,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불순종의 죄가 있을 뿐 아니라 주제넘은 짓을 하는 죄가 있다는 것이다. 주제넘은 죄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분부하시지 않은 것을 행하는 것이다. 불순종은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행하지 않음이요, 주제넘은 것은 하나님이 명령하시지 않은 것을 행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간음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고 말씀하신 것을 사람이 범하는 것은 죄이다. 우리는 이것이 죄임을 안다. 그러나 우리는 많은 경우, 하나님께서 명하시지 않은 것을 우리 마음대로 행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는 그것이 죄인 줄을 모르기 때문이다. 만약 당신이 하나님께서 명하시지 않은 것을 자신의 뜻을 따라 행했다면, 당신은 그 일을 가장 좋은 일이라 느낄지라도 하나님 앞에서는 죄를 범한 것이다. 여기에서 다윗의 기도는 참으로 좋은 것이다. 그는 하나님께, 『주의 종으로 주제넘은 죄를 범치 말게 하소서.』라고 구했다.
하나님은 그분의 원하심을 아신다. 그러므로 그가 우리에게 명하실 일들은 성경으로나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나타내신다. 영적인 일의 가치는 그 일의 크고 작음에 있지 않고, 하나님의 뜻과 의도에 합했느냐에 있다. 그리스도의 종에게 가장 긴요한 일은 하나님이 그에게 행하라는 일이 무엇인가를 알고, 하나님이 지시하시는 때와 방법을 아는 것이다.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은 그가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자기 스스로 생각할 필요가 없다. 신약의 특징은, 바로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종은 그의 안에 성령의 계시를 받아 하나님이 그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인가를 밝히 알 수 있다. 이러한 지식은 참된 것이다. 자기의 생각이 아니요, 타인의 권면이나 지시도 아니다. 이러한 지식은 성경이 문자로 가리킬 뿐 아니라 성령이 하나님의 명령을 그의 깊은 영 안에 계시해 주는 것이다.
아! 참으로 오늘날 영적 계시를 밝히 아는 사람이 얼마나 있는가? 참으로, 「나는 분명히 보았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는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좋게 여기는 것과, 영적인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과, 그가 열심히 얻으려고 한 것과, 그가 유익되는 일이라고 계산한 것을 하나님 자신의 역사에 대신하고 있는가! 아마 자고하며 자신의 용기로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선택한 사람들보다 많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내가 왔다.」고 말할 수 있을 뿐, 「나는 보내심을 받아왔다.」고 말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소위 하나님의 일이라 하는 많은 일들이 죽음으로 가득 찬 것이다. 그 많은 일들은 하나님의 원하시는 바가 아니요, 사람이 하나님께 필요한 일로 여겨 열심을 내서 행하는 것이다. 그들은 그러한 일들을 하나님의 일이라고 칭하지만 사실상 그러한 일들에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하나님의 성분은 거의 없는 것이다.
참으로 영적 일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가 아닌 하나님 자신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밝히 볼 뿐이다. 영적으로 쓸모 있는 일은 다 처음에 하나님의 마음에서 시작되며, 우리는 다만 우리 안의 성령의 계시를 깨달음으로 행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섬기는 모든 역사는 그 규모와 성과가 어떠하든지 간에 두 종류로 나눌 수 있다. 한 종류는 하나님으로부터 발원한 것이요, 다른 한 종류는 사람으로부터 발원한 것이다. 한 종류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요, 다른 한 종류는 사람이 『하나님께서 이러한 것을 원하신다.』고 생각한 데서 나온 것이다. 아, 형제 자매여! 당신의 역사는 어떠한 역사인가?
가장 안타까운 것은 많은 그리스도의 종들이 주제넘은 죄에 주의하지 않고 자신의 뜻을 따라 행하는 것이 어떠한 것인가를 철저히 알지 못하는 것이다. 그들은 성령의 인도를 받지 않았다. 그들은 하나님의 역사에 있어서 하나님만이 주(主)가 되시고, 그들 자신은 엄격히 심판되어 자신의 의견을 내놓을 수 없음을 알아야 한다. 자신의 뜻대로 행하여 주제넘은 짓을 하는 죄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를 알게 하는 성령의 책망이 필요하다.
우리가 마땅히 알아야 할 것은, 주님이 명하신 일을 행하지 않는 것이 죄일 뿐 아니라 그가 명하시지 않은 일을 행하는 것 또한 죄라는 것이다. 우리는 항상, 『하나님이 금지하시지 않은 일 외에는 내가 해도 되지 않은가?』라고 말하지 말고, 『하나님이 명하시지 않은 일을 내가 어떻게 할 수 있겠는가?』라고 말해야 한다.
하나님을 깊이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성경에서 금지하지 않은 일이면 무엇이나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하나님을 깊이 아는 사람들은, 성경에서 금지하지 않은 일일지라도 하나님의 명하시지 않은 것을 행하는 것은 주제넘은 죄임을 안다.
형제 자매여, 하나님께서 당신을 더욱 깊이 인도하신다면, 당신은 하나님을 불순종하여 그분이 금지하신 일을 해서는 안 될 뿐 아니라, 그분이 명하시지 않는 일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 것이다. 자신의 뜻을 따르지 않고, 하나님이 명하시지 않은 일을 행하지 않는 사람이야말로 완전한 사람이요, 하나님이 쓰실 수 있는 사람이다. 완전한 사람은 하나님께서 명하시지 않은 것을 행하지 않는 사람, 곧 주제넘은 일을 행하지 않는 사람이다. 하나님이 명하시지 않으면 행동하지 않는 사람이라야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다.
우리는 많은 사람들이 자기 뜻대로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하나님의 뜻을 묻지 않고, 그 일의 시간과 때와 방법을 하나님께 묻지 않는다면, 그 일이 아무리 좋은 일일지라도 그것은 다만 혼의 생명의 열심을 따라 행한 것일 뿐이다. 우리의 혈과 육의 생명에도 타고난 장점이 많이 있다. 이 혼에 속한 생명도 하나님을 위해 열심을 낼 수 있고, 하나님의 교회를 부흥시키기 위해 여러 가지 방법을 생각해 낼 수 있다.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시키기 위해 여러 가지 계획을 할 수 있고, 죄인들을 구하기 위해 여러가지 노력을 할 수 있다.
이러한 동기와 마음은 다 좋은 것이지만, 이러한 열심과, 예정과, 계획과, 노력은 다 혼의 생명으로부터 나온 것임을 그들은 알지 못한다. 그들은 오직 하나님이 명하신 것을 행하는 것만이 귀함을 모른다. 그들은 어쨌든 하나님의 일에 종사하기만 하면 좋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일의 동기와 목적과 성과가 좋을지라도 그것이 혼의 생명에서 나온 것일 때에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는다는 것을 모른다. 그러한 일들은 하나님의 뜻으로부터 나온 것이 아니므로 하나님에게는 쓸모 없는 일들이다.
그들은 또한 하나님의 뜻으로부터 나오지 않은 일을 할 뿐 아니라, 그 일에 하나님의 능력을 요구하지도 않는다. 그들은 그들의 열심과 음성과 감정과 눈물이 다 하나님의 능력의 도움인 줄로 여긴다. 이러한 것들은 그들의 옛사람의 생명의 능력을 흡수하여 육에 속한 생명의 공급을 주고 있는 것임을 모른다.
그들이 자기 뜻대로 행하는 원인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자아를 표현하려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명령에 복종하면서도,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뜻보다도 자기의 뜻을 더 좋아한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아무 말씀 없으셔도 자기 멋대로 행하는 것이다. 형제 자매여, 만일 우리가 육체를 심판하지 않고, 십자가를 메지 않고, 자아를 처리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명령이 있을 때에는 억지로 순종할 수 있지만, 하나님의 명령이 없을 때에는 자기 뜻대로 행하게 된다.
하나님의 역사에 있어서, 자기 뜻을 따라 행하는 마음이 다 나쁜 것은 아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돌아오기 전에, 우리 자아의 생명은 하나님을 섬기기를 싫어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께 돌아온 후에는 하나님을 섬기기를 좋아한다. 이때야말로 가장 위험한 때이다. 전에는 하나님을 결코 섬기지 않았지만 이제는 자기 방법대로 하나님을 섬기려 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것은 그들의 봉사뿐 아니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방법으로 봉사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것은 봉사뿐이라고 생각하고, 봉사의 방법은 사람의 뜻대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나님의 명령을 따르지 않고 봉사하는 것은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는 일임을 우리는 반드시 알아야 한다. 우리는 그 일이 하나님이 정하신 것인가를 알아야 할 뿐 아니라 그 역사의 방법과, 시간과 진행 과정에 대해서도 하나님의 정하심을 알아야 한다.
사람의 동기가 아무리 좋을지라도 하나님의 뜻을 대신하지는 못한다. 사람의 역사가 아무리 성과를 거둘지라도 하나님의 기뻐하심과 거리가 먼 것이다. 많은 일들이 「환경의 필요」를 위해서, 「성도의 영적 성장」을 돕기 위하여, 「죄인의 영혼을 구하기」 위하여 행해졌지만,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행해지지 않았다. 이러한 일들이 성경에 없는 것이라고는 말할 수 없지만, 이러한 일과 그 사역자는 하나님 앞에 쓸모 없는 것이다.
우리가 첫째로 고려해야 할 것은 죄인들과 성도들의 외적 필요보다도 이러한 때 하나님의 필요가 무엇인가에 있다. 우리의 역사는 죄인의 필요나 성도의 필요보다도 하나님의 필요를 위한 것이다. 하나님은 책임을 하나님의 종들에게 맡기셨지만 그의 종을 지휘하는 권위는 하나님이 가지고 계신다.
성령이 사역을 위하여 하나님의 종을 불렀지만, 바울과 바나바는 자기 뜻을 따라 아시아로 갈 수 없었다. 언제나 하나님의 종의 행동을 지배하는 권위는 성령에게 있다. 아시아에 필요가 있느냐가 문제가 아니라 그때 아시아에 하나님의 필요가 있느냐가 문제이다. 사도행전에서 우리에게 보여 주는 것은 우리의 역사에 능력을 주시는 이도 성령이시요, 우리의 역사에 방향을 제시하는 것도 성령이시라는 것이다. 우리의 책임을 하나님의 필요를 따라 역사하는 데 있다.
성경에서는, 우리가 하나님을 고용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피로 사셨음을 보여 준다. 하나님은 우리에 대해 완전한 주권을 가지고 계신다. 우리는 아무것도 자신의 뜻대로 할 수 없다. 하나님이 당신에게 일을 맡기신 것은, 당신이 자신의 판단을 따라 의견을 제시하라고 하신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그의 모든 일에 대하여 어떻게 행해야 할 것인가를 명령하신다. 당신이 하나님의 능력을 얻지 못하고 마음대로 자신의 뜻을 따라 행하면 그분은 당신을 필요로 하시지 않으므로 당신을 받아들일 수 없다. 결국 당신의 이러한 일들은 공력을 시험하는 날 불을 이겨내지 못하고 반드시 태워질 것이다.
성경은 하나님의 큰 일에서 그의 역사를 나타내실 뿐 아니라 작은 일에서도 그의 역사를 나타내심을 보여 준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든 일에서 하나님을 으뜸삼고, 큰일에서든지 작은 일에서든지 그를 주(主)로 인정해야 한다. 그는 모든 것을 통일하시고 모든 것에 충만하신 분이다. 당신이 하는 일이 하나님의 뜻에 합한 것이 아닐 때에는, 사람의 칭찬을 받을지 모르지만 하나님은 당신을 필요로 하시지 않는다.
Ⅲ
성경의 많은 본이 이러한 사실들을 우리에게 보여 준다. 레위기 10장 1절, 2절을 보자. 『아론의 아들 나답과 아비후가 각기 향로를 가져다가 여호와의 명하시지 않은 다른 불을 담아 여호와 앞에 분향하였더니 불이 여호와 앞에서 나와 그들을 삼키매 그들이 여호와 앞에서 죽은지라』
제사의 규례에 있어서, 반드시 제단에 있는 불로 분향해야 한다. 나답과 아비후의 잘못은 제단 위의 불을 사용하지 않고 「다른 불」을 사용하여 분향한 데 있다. 그때문에 하나님 앞에서 죽은 것이다.
제단은 십자가의 예표이다. 향은 우리의 하나님 앞에서의 봉사이다. 우리의 봉사는 반드시 십자가의 제단으로부터 온 것이어야 한다. 무릇 이 규례를 벗어나 제물을 바치는 자는 반드시 죽을 것이다. 십자가는 무엇인가? 그것은 우리의 자아가 죽는 것이요, 주님으로 하여금 우리 안에 생활하시게 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갈라디아서 2장 20절에서 말하는, 『내가 그리스도와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그런 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다. 십자가는 자아의 지혜와 의견과 능력과 열심과 소망과 기쁨을 처리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처리를 거친 후에야 하나님 앞에 봉사를 할수 있다.
아, 얼마나 많은 열심들이 「다른 불」인지! 십자가의 처리를 거치지 않고 자기의 의견과 총명을 버리지 않는 것은 다 육체의 뜻을 따른 것이다. 이일저일을 함으로써 하나님의 사역을 더 부흥되게 하고 하나님의 기쁨을 얻을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여 열심을 내지만 이러한 것들은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것이 아니다. 그것도 불이기는 하지만 제단 위의 불이 아닌 다른 불에 불과하다. 십자가로부터 나오지 않은 것은 다 「다른 불」이다.
「다른 불」은 바로 자아의 불이다. 그것은 혼의 생명으로부터 나온 불이요, 혈과 육의 불이다. 이것은 바로 자아의 생명이 하나님의 일을 간섭하는 것이다. 자아의 생명이 이러한 일을 할 때에는 반드시 어떻게 해야 한다는 것을 주장하려 한다. 「다른 불」이란 하나님의 일에서 자아의 방법과 지혜로 자아의 주장을 실행하는 것이다. 다른 불은 하나님의 기뻐하심을 얻지 못할 뿐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죽음을 당하게 한다.
나답과 아비후는 아론의 두 아들이요, 아론은 하나님이 택하신 대제사장이었다. 이 두 사람은 하나님에게 불순종하거나 저항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분향함으로써 봉사하여 하나님의 기쁨을 얻으려고 했다. 그러나 그들이 행한 것은 하나님이 명하시지 않은 일이었다. 그들은 하나님의 정하심을 따라 행하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심판을 받은 것이다.
아론의 두 아들들은 다른 불 사용하는 것을 하나님이 금지하시지 않았으므로 다른 불도 사용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을 봉사하는 데 있어서 하나님이 명하시지 않은 일은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몰랐다. 그들은 하나님이 그가 명하시지 않은 일을 금지함에 있어서 얼마나 엄중하신지를 몰랐다. 그분이 명하시지 않은 일을 행하는 것은 틀린 행동일 뿐 아니라 죄를 범하는 것이다. 나답과 아비후는 바로 그러한 죄를 범했기 때문에 타 죽은 것이다. 그들은 아론의 아들들이었고 하나님을 섬기는 제사장이었지만 하나님은 용납하실 수 없었다.
그들은 엘리의 아들들과 같이 나쁜 일, 즉 간음이나 도둑질을 한 것이 아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명령을 불순종한 것이 아니요, 특별히 하나님이 금지하신 일을 행한 것도 아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 특히 하나님의 기쁨을 얻기 위해 자기의 향로에 자기가 가져온 불로 분향한 것이다. 물론 그들의 의도는 좋은 것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하나님께서 명하시지 않은 것을 행하고 하나님의 뜻 밖에서 행한 것은 하나님께 죄를 범한 것이다.
언제든지 하나님을 섬길 때에는, 우리 마음에 좋게 여겨지는 것을 하나님의 보시기에도 좋으리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당신의 뜻이 좋을지라도 당신 멋대로 행한다면 하나님은 그 죄에 대해 형벌을 내리실 것이다. 오늘은 우리 가운데 하나님의 엄격한 심판이 보이지 않더라도, 「다른 불」에서 나온 모든 역사는 장래 심판대 앞에서 심판을 받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 눈을 열어 주사 우리의 죄가 무엇인가를 깨닫게 하시기 원한다. 간음이나 도둑질이나 간사함이나 불의나 더러움이 죄일 뿐 아니라, 하나님의 일을 하고 전도를 하고 사람을 인도하는 일을 하더라도 그것이 하나님의 명령으로 인한 것이 아닐 때에는 죄를 범하는 것이다. 이러한 죄도 하나님은 심판하신다. 무릇 하나님이 명하시지 않은 일을 행하는 것은 다 다른 불의 봉사요 하나님께 죄를 짓는 것이다.
사무엘 상 13장 8절로부터 14절까지에서는, 사울이 스스로 번제를 드린 일이 우리에게 큰 경계가 된다. 사울이 제물을 드린 데에는 세가지의 큰 이유가 있다. 첫째로는 그가 그의 백성들의 흩어짐을 보았기 때문이요, 둘째로는 사무엘이 정한 날에 오지 않았기 때문이요, 셋째로는 그들의 적인 블레셋 사람들이 믹마스에 진을 치고 길갈에 있는 그들을 공격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는 번제를 드린 것이다. 사울은 거기에서 무슨 악한 일을 한 것이 아니라 여호와께 번제를 드렸을 뿐이다. 그는, 『아마 기도를 하지 않아서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았나 보다. 기도를 더하면 하나님이 받아 주실 것이다.』라고 생각했다. 그는 하나님을 더 섬기고 하나님을 더 봉사하면 하나님의 백성을 적의 손에서 구출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사무엘은 사울에게, 『왕이 망령되이 행하였도다 왕이 왕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왕에게 명하신 명령을 지키지 아니 하였도다. 그리하였더면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위에 왕의 나라를 영영히 세우셨을 것이거늘 지금은 왕의 나라가 길지 못할 것이다 여호와께서 왕에게 명하신 바를 왕이 지키지 아니 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그 마음에 맞는 사람을 구하여 그 백성의 지도자를 삼으셨느니라.』라고 말했다.
사울이 말한, 「내가 이르기를 (내가 생각하기를)」이라는 말은 하나님의 명령이 아니다. 형제 자매여, 하나님은 우리가 그의 분부하심을 따라 그분을 섬기기 원하실 뿐, 자기 자신의 생각을 따라 봉사하는 것을 원치 않으신다. 자기의 생각을 따라 한 봉사는 다 하나님의 버림을 받는 것이다. 하나님이 원하는 사람은 그의 뜻에 합한 사람이다. 하나님께 중히 여기는 것은 우리가 무엇을 하느냐에 있지 않고 우리가 그에게 복종하느냐에 있다.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나으니』(삼상 15:22). 이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각 사람이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이다.
많은 경우 우리도 사울과같이 행한다.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신실함을 믿지 않고 하나님의 시간을 기다리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오직 자기의 필요와 환경의 필요만을 보고, 하나님의 시간을 기다리기를 잊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명하시지 않은 것을 행하는 것이다.
사울이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은 것은 그가 너무 열심히, 너무 급하게 제물을 드렸기 때문이다. 그가 이러한 일을 행한 데에는 많은 이유가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분의 마음에 맞는 사람을 택하여 그의 백성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삼았다. 하나님이 원하는 사람은 다급하고 기다릴 줄 모르는 사람이 아니라 그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다.
우리는 사울과같이 특별한 사람을 좋아했을 것이다. 사울은 그 키가 온 백성보다 어깨 위나 더 컸다. 그러나 하나님이 원하는 사람은 특별한 사람이 아니라 그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는 목적은 큰 일을 하여 자신과 다른 사람의 기쁨을 구하는 데 있지 않고, 하나님의 마음을 만지고 하나님의 기쁨을 얻는 데 있기를 원한다. 이러한 사람만이 하나님이 쓰실 수 있는 사람이다. 하나님은 지금 이러한 사람을 찾고 계신다.
사무엘 하 6장 1절부터 7절까지를 또 보기로 하자. 『다윗이 이스라엘에서 뺀 무리 삼만을 다시 모으고 일어나서 함께 있는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바알레유다로 가서 거기서 하나님의 궤를 메어 오려하니 그 궤는 그룹들 사이에 좌정하신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이름하는 것이라 저희가 하나님의 궤를 새 수레에 싣고 산에 있는 아비나답의 집에서 나오는데 아비나답의 아들 웃사와 아효가 그 새 수레를 모니라 저희가 산에 있는 아비나답의 집에서 하나님의 궤를 싣고 나을 때에 아효는 궤 앞에서 행하고 다윗과 이스라엘 온 족속이 잣나무로 만든 여러 가지 악기와 수금과 비파와 소고와 양금과 제금으로 여호와 앞에서 주악하더라 저희가 나곤의 타작 마당에 이르러서는 소들이 뛰므로 웃사가 손을 들어 하나님의 궤를 붙들었더니 여호와 하나님이 웃사의 잘못함을 인하여 진노하사 저를 그곳에서 치시니 저가 거기 하나님의 궤 곁에서 죽으니라』.
많은 사람들이 이것을 읽을 때 그 원인이 무엇인가를 묻는다. 웃사가 하나님의 언약궤를 붙든 것은 웃사의 공로일 텐데 왜 여호와께서는 도리어 그를 치셨을까? 하나님의 영광은 언약궤에 있다. 웃사가 언약궤를 붙든 것은 선한 일이 아닌가? 하나님은 무엇 때문에 그를 쳐죽이셨는가? 그것은 바로, 하나님은 사람이 그의 일을 돕는 것보다 그의 명령을 듣는 것을 원하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에게는 그의 영광을 부축할 사람이 필요하지 않다. 누가 언약궤를 만질 때, 하나님은 곧 그를 죽이신다.
여기에서 문제는 언약궤가 넘어지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명하시지 않은 일을 행함에 있다. 사람들은 모두, 『언약궤가 평안하고 무사할 때에는 만질 수 없지만, 언약궤가 위기에 처했을 때에는 넘어지지 않게 만지거나 부축할 수 있다. 이것은 임기응변이므로 죽음을 당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은 상황에 따라 변하지 않는다. 누구든지 하나님이 명령하시지 않은 일을 행하는 사람에게는 육체적인 죽음이 없더라도 반드시 영적인 죽음이 있을 것이다.
여기에서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은 당신이 한 일이 좋은 것인가 나쁜 것인가, 하나님을 돕는 것인가가 아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은, 당신은 언약궤를 만질 수 없으며 만지면 반드시 죽으리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언약궤가 넘어질지라도 사람이 그의 명령 없이 그를 돕는 것을 기뻐하시지 않는다.
많은 경우 우리는 외적 필요만을 보고 하나님을 도우려 한다. 얼마나 무서운 일인가! 하나님의 종 가운데에도 웃사처럼 육의 손으로 하나님의 일을 도우려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형제 자매여 우리는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우리가 주의해야 할 것은 오직 하나, 곧 하나님의 명령이다. 무릇 하나님의 명령을 기다리지 않고 환경의 필요에 따라 하는 일은 하나님의 기뻐하심을 얻을 수 없다. 우리의 일이 잠시(또는 표면적으로) 실패할지라도 일시라도 하나님의 주권을 어겨서는 안 되며, 일시라도 육의 방자함에 빠져서는 안 된다. 육으로 하나님의 일을 부축할 필요 없다. 하나님은 모든 육을 심판하실 것이다.
하나님께서 명하시지도 않은 일을 행하고 자기 뜻대로 하나님의 기뻐하심을 얻으려는 사람이 있다. 이러한 사람은 그의 행함이 하나님의 기쁨을 얻을 수 없을 뿐 아니라 하나님의 정죄를 받는다는 것을 모른다.
죄인이었을 때 우리는 자신의 지혜를 따라 생활하여 하나님의 성품을 많이 거스렸다. 이제 구원받은 후에도 우리는 자신의 지혜로 나 보기에 좋은 대로 하나님을 심기고 도우려고 노력한다. 죄인이었을 때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반대한 것이 죄일 뿐 아니라 구원받은 후에 자기 지혜로 하나님의 일을 돕는 것 또한 죄이다. 하나님은 사람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의 일을 돕기를 원치 않는다.
하나님은 사람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을 싫어할 뿐 아니라, 사람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돕는 것 또한 싫어하신다. 하나님은 사람이 자기 힘으로 하나님을 돕는 것을 필요로 하시지 않는다. 우리는 반드시 십자가의 원칙을 받아들여 자아의 활동을 버리고, 육체를 죽음에 넘기기를 원해야 한다. 자신의 뜻은 상실되기를 원해야 한다. 자기 뜻대로 행하여 하나님의 일을 부흥케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자아가 처리되지 않았음을 나타내고 십자가를 모른다는 것을 나타낸다. 우리는 반드시 아무 것도 없는 위치로 인도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이 우리를 쓰실 수 없다.
우리는 자기 뜻을 따라 행동하지 않고, 하나님의 일을 방해하지 않아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명령만을 주의하고 하나님의 뜻 외의 일을 주의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의 역사가 다 무너질지라도 육의 손으로 돕지 말고, 다만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을 해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가 명하시지 않은 일을 책임지라 하시지 않는다. 모든 것이 다 당신 곁에서 무너질지라도 하나님은 당신을 책망하지 않으실 것이다.
사람이 자기 뜻대로 행하는 것은 다 사람의 지혜가 십자가의 처리를 거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하나님이 명하신 것만을 행하고, 하나님이 명하시지 않은 것은 행치 않는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오늘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이다. 우리는 이것만을 붙들어야 한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위치를 굳게 지켜야 한다.
어떤 사람들은 이 길이 너무 좁은 길이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하다가는 하나님의 역사가 너무 평범해지지 않겠느냐고 말한다. 그러나 형제 자매여, 그날에는 이 길이 옳은 길인지 그른 길인지를 알 것이다. 그날에는 하나님의 뜻 밖의 역사가 다 무익한 것임을 알게 될 것이다. 심판대 앞에서 하나님의 뜻 외의 역사는 책망받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역대 하 26장 16절로부터 21절까지에서는, 웃시야 왕이 자기 뜻대로 여호와의 전에 들어가 향단에 분향하려 하다가 하나님의 처벌을 받았음을 말해 준다. 하나님께서는 오직 아론의 자손만이 거룩한 제사를 행할 수 있고 성전에 들어가 분향할 수 있다고 말씀하셨고, 그들 외에는 누구도 이러한 일을 하도록 허락하지 않으셨다. 그러나 웃시야 왕은 고집을 부리며 교만한 태도로 성전에 들어가 분향하려 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그에게 벌을 주어 그의 이마에 문등병을 발하게 하셨다.
이 일은 우리에게 큰 경고를 준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이 명하시지 않은 일은 절대로 함부로 행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함부로 행할 때에는 하나님의 형벌을 면할 수 없다. 문등병의 영적 의미는 바로 더러운 죄이다. 하나님의 명령없이 망령되이 행하는 사람은 모두 하나님 앞에서 더러운 죄를 범한 자이다.
하나님의 역사에 있어서 사람의 열심은 별로 쓸모가 없다. 사람의 열심은 하나님의 일을 지배할 수 없다. 본래 성전에 들어가 분향하는 것은 아름다운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명령에 의한 것이 아니었으므로 처벌을 받을 죄가 된 것이다. 웃시야 왕은 마음대로 성전에 들어가 분향했기 때문에 하나님께 범죄하여 문둥병에 걸려 죽었다. 이것은 평범한 경계가 아니다. 우리는 이를 주의하지 않으면 안 된다.
Ⅳ
바울은 영적 분량이 깊은 사도였다. 그는 고린도에 있는 성도들에게 이렇게 전했다. 『우리는 분량 밖의 자랑을 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이 우리에게 분량으로 나눠 주신 그 분량의 한계를 따라 하노니 곧 너희에게까지 이른 것이라 우리가 너희에게 미치지 못할 자로서 스스로 지나쳐 나아간 것이 아니요... 오직 너희 믿음이 더할수록 우리의 한계를 따라 너희 가운데서 더욱 위대하여지기를 바라노라』(고후 10:13-15).
바울의 말은 참으로 경험 있는 자의 말이다. 바울은 하나님이 나눠 주신 분량 밖의 한계에 미치려고 하지 않았다. 그는 하나님이 그에게 분부하시지 않은 지역에는 가지 않았다. 그는 하나님이 그에게 책임을 맡기신 지역에 대해서는 책임을 느꼈지만, 하나님께서 책임지우시지 않는 지방에 대해서는 하나님보다 지나쳐 책임지기를 원치 않았다. 하나님의 종들이 모두 이렇게 한다면 어찌 교회에 그 많은 분쟁과 파벌이 있겠는가?
하나님의 모든 종들에게는 각기 하나님이 나눠 주신 분량의 일이 있고, 각 성도에게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그의 가야 할 길이 있다. 성도들 각자가 마땅히 서야 할 위치에 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고 마땅히 가야 할 길을 가는 것이 참된 영광이다.
우리는 일을 할 때 그 일이 좋아서, 사람들을 구원하고 도울 수 있다 해서 일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사역을 할 때, 자신이 하나님께서 정해 주신 위치에 있는가를 보아야 한다. 하나의 건물 안에 서는 큰 기둥도 중요하지만 작은 못 또한 없어서는 안 된다. 만일 교회 안에서 모든 사람이 다 부흥사가 되려 하고, 큰 전도자가 되려 한다면 교회가 어떻게 건축되겠는가?
우리는 다만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길을 가야 한다. 우리는 큰 일을 하려고 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정해 주신 위치에 서야 한다. 만일 하나님이 당신에게 잠잠히 작은 일을 하라시면 당신도 기꺼이 해야 한다. 하나님이 원하는 것은 큰 재능이 아니라 그분의 뜻대로 쓰실 수 있는 사람이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정해 주신 위치에 서기를 원해야 한다. 사실상 마음이 변하는 것이나 용감함이나 강한 의지는 다 세속적인 것이고, 혼에 속한 것이며 육에 속한 것이다. 우리는 그러한 것들을 막지 않으면 안 된다. 이것을 밝히 깨닫는다면 하나님의 일을 그렇게 대담하게 함부로 만지지 않을 것이다.
바울은 그의 달려갈 길을 마쳤다고 말했다. 여기에서 말하는 「길」이란 무엇인가? 펜 루이스 여사는 그의 자서전에서 이러한 말을 했다. 『각 신도가 거듭날 때 하나님은 그를 위하여 하나의 길을 예비하신다. 이 길은 그가 받은 새 생명을 원만한 성숙에 이르게 하고 그의 일생을 하나님의 역사 안에서 마지막까지 쓰이게 하는 것이다 각 신도의 책임은 바로 이 길을 찾고, 이 길을 걸어가는 것이다. 누구도 그 길이 어떠한 것인지를 단정할 수 없다. 그 길은 오직 하나님만이 아시며 하나님만이 사람에게 알려 주시고 성도를 그 길로 인도하실 수 있다 오늘 하나님께서 성도를 인도하시는 것은 옛날에 엘리야와 다른 선지자들이나, 바울이나 빌립이나 다른 사도들을 인도하신 것과 똑같다.』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있어서 가장 큰 영광은, 하나님이 주신 위치에 서서 하나님이 하라고 주신 일을 하는 데 있다. 각 성도에게는 하나님이 예정하신 길이 있다.
하나님은 그가 선택하신 사람으로 하여금 그의 일을 하게 하신다. 하나님은 사람이 자신의 원함대로 일하게 하시지 않는다. 하나님이 택하신 사람들은 절대로 자유롭지 못하다. 만일 당신이 자유를 원하여 자기의 길을 가려고 한다면 더 실패하고 더 고생할 것이다. 이러한 사람은 결코 하나님께 쓰임받지 못할 것이다. 당신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길에서 벗어날 수 없다. 당신이 다시스로 도망갈지라도 풍랑으로 바다에 빠져 물고기가 당신을 도로 데려올 것이다. 당신은 도망갈래야 갈 수 없다. 하나님의 종은 결코 자기 뜻대로 행할 수 없다. 하나님이 원하는 사람은 오직 하나님이 명하신 일만을 하고, 하나님이 정해 주신 길만을 가고, 자기 뜻을 따라 행하지 않는 사람이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데리고 광야를 지날 때 하나님은 그들에게 안식일을 지키라는 분부를 내리셨다. 어떤 사람이 모세에게, 안식일에 나무하는 이가 있음을 고했을 때 모세는 그를 어떻게 처리할지에 대해 자신의 주장을 내놓지 않았다. 그것은 하나님이 그에게 아직 그러한 사람을 처리하는 길을 지시하시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분부 하시기를, 안식일을 범하는 자는 돌로 쳐서 죽이라 하셨을 때 그들은 감히 그를 돌로 쳐죽일 수 있었다(민 15:32-36). 모세는 하나님의 명령을 기다렸고 하나님의 명령을 들은 후에야 비로소 시행했다. 그는 감히 자기 자신을 주장하지 않았다.
우리도 기다리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일에 큰 손실을 입힐 것이다. 우리는 얼마나 급한지! 우리는 언제나 하나님이 너무 느리시다고 느낀다. 우리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기다리며 한발한발 나아갈 줄을 모른다. 우리는 우리에게 좋게 느껴지는 일은 급히 행하려고 한다. 어디에 부족함이 있는 것을 알면 빨리 도우려고 한다. 『만일 우리가 모든 일에 기다려야 한다면 평생 기다리다가 끝나지 않겠는가? 그러면 아무 일도 하지 못하겠다.』고 말하는 자여, 당신은 하나님 앞에서 기다리며 그분의 명령을 듣고 일하는 사람이 복 있는 자임을 잊어버렸다.
Ⅴ
우리의 중대한 책임은, 바로 하나님의 분부를 분명히 깨닫는 것이다. 하나님의 분부 하에서만 하나님의 일을 하고, 하나님의 명령이 있기 전에는 아무 일도 하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의 명령은 하나님의 마음의 원함을 나타낸다. 우리가 그의 손에 유용한 그릇이 되려면 반드시 하나님의 명령이 있은 후에 행동해야 한다. 하나님의 명령이 없는 일은 하나님의 기쁨을 얻을 수 없다.
어떠한 일이 우리 앞에 놓여졌을 때 우리는 먼저 그 일이 하나님의 원하시는 일인지, 하나님의 마음을 얻을 수 있는 일인지를 알아야 한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뜻만을 구해야 한다. 우리는 영적 일을 할 때 그 일이 좋은 일이라 해서 하는 것이 아니다. 환경의 필요를 따라, 도울 필요가 있다 해서 다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먼저 하나님의 뜻을 찾고,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지를 살펴야 한다.
하나님의 손에 쓸모 있는 사람이 되려면 반드시 하나님의 뜻을 따라 행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산에서 지시하신 식양을 사람이 자기 뜻대로 바꿀 수 없다. 사람은 반드시 그 식양을 따라 만들어야 한다. 우리는 이것이 우리의 일이므로 하나님의 뜻을 따를 필요가 없다고 말할 것인가, 아니면 이것이 하나님의 일이므로 반드시 하나님의 뜻을 따라 해야 한다고 말하겠는가? 우리가 탄식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많은 경우 하나님의 역사가 사람의 육의 손에서 실패되었다는 것이다.
형제 자매여, 당신의 지혜가 심판을 거치지 않는 한, 당신의 의지가 끝나지 않는 한, 당신은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없음을 알아야 한다. 우리들 자신의 뜻은 없고 하나님의 뜻만 있는 경지로 하나님이 우리를 이끄시기 원한다. 우리가 주님의 일을 할 때 이것이 하나님의 뜻인가를 반드시 먼저 알아야 한다. 우리가 참으로 하나님의 뜻을 알았다면, 우리는 하나님께서 지시하신 식양대로 할 것이다.
워치만 니
[워치만니 전집 제 18권, "하나님이 산에서 지시하신 식양대로", 한국복음서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