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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일 세기 반 동안 성도들의 휴거에 대한 문제는 추구하는 많은 그리스도인들에게 문제가 되어 왔다. 휴거에 대한 견해에는 주로 세 학파들이 있는데, 이것은 곧 환난 전 휴거, 환난 후 휴거, 또한 소위 말하는 부분 휴거설이다. 부분 휴거설의 학파 안에 있는 이들은 이기는 자들이 대다수의 믿는이들보다 일찍 휴거될 것이라고 말한다.
이들 각 학파에는 성경을 아주 잘 아는 매우 영적인 성도들이 몇몇 있었으며 의견들의 충돌로 인하여 휴거에 대한 많은 논쟁이 있었다. 나는 구원받고 얼마 후 예언을 공부하기 시작했고 그 결과 이 모든 학파들에 대해 매우 잘 알게 되었다. 여러 해 동안 연구하고 관찰하고 숙고한 결과로서 나는 이 메시지에서 순수한 성경 말씀에 따라 휴거에 대한 분명하고 순전한 말씀을 제시하고 싶다. 이제 우리는 모든 학설들에 대해서 잊어버리고 오직 순수한 말씀만을 주의하자.
Ⅰ. 이기는 자들의 휴거
성경에서 우리는 휴거의 두 방면을 보게 되는데, 그것은 곧 이기는 자들의 휴거와 대다수 성도들의 휴거이다. 휴거에 두 방면이 있다는 것은 오직 두 번만의 휴거가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이기는 자들의 휴거에만도 최소한 세 가지 범주가 있다. 예를 들어, 첫열매의 휴거는 사내아이의 휴거와 다르다. 사내아이(계 12:5)는 부활한 죽은 이기는 자들로 구성되며, 첫열매(계 14:1-5)는 살아 있는 이기는 자들로서 결코 죽음을 통과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우리가 계시록 12장에 올 때 해로 옷 입은 여인처럼 사내아이도 상징임을 보게 된다. 계시록에서 사내아이는 태어났으며, 출생으로 산출되었다. 주 예수에 대하여 생각해 보라. 그분은 부활 안에서 맏아들이 되기 위해 하나님에게서 태어났다(히 1:5, 행 13:33). 사내아이도 역시 부활 안에서 태어나게 될 것이다. 사내아이의 부활은 그의 출생이 될 것이다.
계시록 12장 11절은 사내아이의 한 부분인 이기는 자들이 죽기까지 충성했으며, 어린양의 보혈과 그들의 증거하는 말과 죽기까지 자신들의 목숨(혼)을 사랑치 아니하므로 원수를 이겼다고 말한다. 이것은 사내아이에 포함된 모든 이들이 죽기까지 충성스러웠음을 가리킨다. 그들 중 많은 이들이 순교당했다. 따라서 사내 아이는 모든 죽은 이기는 자들을 포함하며, 살아 있는 이기는 자들인 첫 열매와는 다르다.
사내아이와 첫열매에 추가하여 15장에는 또 다른 무리의 이기는 자들이 있는데, 이는 곧 적그리스도와 그의 표시 곧 그의 이름의 수와 그의 형상을 이긴 나중 이기는 자들로서, 그들은 휴거되어 유리 바다 위에 서서 주님을 찬양할 것이다. 그러므로 이기는 자들에 관해서도 최소한 서로 다른 세 휴거가 있다. 이 외에도 11장에는 두 증인의 개인적인 휴거가 있다.
이기는 자들의 휴거는 휴거의 첫 부류이며, 대다수의 성도들의 휴거는 계시록에서 추수로(14:15) 생각되는 두번째 부류이다. 레위기 23장 10절에서 우리는 땅에서 익은 곡식들을 휴거의 예표로 볼 수 있다. 어떤 곡식들은 일찍 익고 어떤 것들은 늦게 익는다. 먼저 익은 것들은 첫열매로 여겨진다. 구약 시대에 첫열매들은 언제나 곡간으로 가져가지 않고 하나님의 성전으로 가져갔다. 출애굽기 23장 11절은 『너희 토지에서 처음 익은 열매의 첫것을 가져다가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전에 드릴지니라』고 말한다.
첫열매는 하나님의 누림과 만족을 위해 토지로부터 하나님의 성전으로 가져갔다. 땅에서 완전히 익는 그 때가 바로 추수 때이다. 추수 후에는 수확하여 곡간으로 가져간다. 이것은 예표이다. 수확물은 하나님의 백성이며(고전 3:9), 수확물의 처음 익은 것은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성전으로 직접 가져가지게 될 첫열매이다. 이런 후에 햇빛이 더 밝게 비취게 되고 아직까지 파란 곡식들은 익기 시작할 것이다. 모든 곡식들이 익었을 때 대다수의 성도들이 추수되어 공중으로 올리워질 것이다. 공중은 곡간에 해당된다.
대부분의 농장에는 곡간이 농가(農家)와 농토 사이에 있다. 추수된 것들은 곡간에 들이지만 첫열매는 농부의 시식을 위하여 집으로 가져간다. 많은 교사들이 휴거에 대해서 썼지만 그들의 대부분이 하나님의 수확의 이 문제를 소홀히했다. 마태복음 13장에서 주 예수님은 그가 땅에 씨를 뿌리기 위하여 왔음을 계시한다. 고린도 전서 3장에서 바울은 고린도 사람들에게 『너희는 하나님의 농장』(헬라어)이라고 말한다. 마지막으로 계시록 14장에서 우리는 첫열매와 추수를 본다. 이것이 우리에게 휴거에 대한 기본적인 관념을 제공한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너무 얕고 시야가 좁다. 그들은 성경을 철저하게 읽거나 연구하지 않는다. 그대신 그들의 주장의 근거가 되는 몇 구절을 뽑아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환난 전에 휴거될 것이라고 가르친다. 그들은 말하기를, 우리는 죄인들이었는데 주님의 보혈로 씻음을 받고 성령으로 거듭나서 구원 받았으며, 이제는 주 예수의 재림을 기다리고 있고, 그 때에 우리는 휴거될 것이라고 말한다. 일반적으로 말해서 이것은 옳은 것이며 틀린 것이 없다. 그러나 그것은 휴거에 관해서 너무나 간단하고 부주의하며 추상적이다.
휴거에 관한 전통적인 가르침의 애매모호함과 너무 일반적인 것에 대한 설명으로 나는 전에 살던 아나하임의 「아든」아파트를 예로 사용하겠다. 모든 사람들이 「아든」이라는 장소의 위치가 찾기 어렵기 때문에 그곳을 잘 모른다. 그곳이 「볼가」와 「유클리드가」 근처에 있다고 알고 있는 사람이 「아든」을 찾기 위해 한 시간 가량을 소비했다. 그들은 「볼가」와 「유클리드가」 모퉁이에 오는 법은 알았지만 거기에서부터 내 아파트까지 오는 작은 골목들에 대한 자세한 안내서는 갖고 있지 않았다. 물론 우리가 「볼가」와 「유클리드가」 근처에 산다고 말하는 것은 옳지만 정확한 지점, 즉 「유노」에 있는 「아든」이란 곳은 감취어진 것이다. 거기에 오기 위해서는 작은 골목들의 미로를 통하여 여행을 해야만 하는 것이다.
신약의 휴거에 관한 문제를 이해하는 것 역시 미로를 운전하는 것과 같다. 이 문제를 정확히 아는 것은 매우 어렵다. 아마 주님께서는 우리의 깨어 있어야 함을 환기시키기 위해 휴거가 이러한 방법으로 되게 하신 것 같다. 여러분은 휴거에 대한 모든 것을 다 안다고 확신하지 말라. 왜냐하면 여러분은 내가 사는 곳이 「볼가」와 「유클리드가」 근처라고 대강 아는 사람들과 같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아마 여러분이 대략적인 방법으로는 휴거를 알고 있지만 자세하게는 모를 것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대략적인 지도가 아니라 상세한 지도이다.
휴거에 대하여 말하는 그리스도인들 가운데 대부분이 너무나 일반적이다. 그것은 마치 나의 아파트에 오는 상세한 안내서가 없이 「볼가」와 「유클리드가」 모퉁이를 알고 있는 것과 같다. 지난 오십 년 동안 나는 많은 시간을 휴거에 대하여 소비했다. 1925년 이래 나는 이 문제에 대한 것을 읽거나 들을 때마다 그러한 것을 연구하는 기회로 붙잡았다. 휴거의 문제에 관하여 나는 주님께서 아주 상세하게 보여 주셨음을 말할 확신이 있으며 이 메시지에서 우리는 이 세부적인 항목들을 살펴보기로 하자.
주 예수께서는 분명히 천년 왕국 전에 오신다. 그런데 주님의 재림이 천년왕국 후가 되리라고 가르치는 학파가 있었다. 심지어 이 학파는 오십 년 전까지도 있었는데 아마 지금은 없어졌을 것이다. 나는 젊었을 때 주님이 천년왕국 전에 오신다고 말하는 학파와 천년 왕국 후에 오신다고 말하는 학파를 모두 공부했다. 지난 오십 년 동안 두번째 학파는 사라져갔으며, 어떤 사람도 그에 대해 거의 주의하지 않는다. 그리스도께서 천년 왕국 후에 오신다는 것은 절대적으로 비성경적이다. 따라서 오직 한 학파가 남아 있는데, 이것은 곧 그리스도께서 천년 왕국 전에 오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매우 일반적이다. 우리는 훨씬 더 정확하고 자세해야 한다. 주 예수께서 천년 왕국 전에 오시고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휴거될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절대적으로 옳지만 우리는 여전히 더 자세한 것들을 알아야 한다.
나는 이 메시지를 읽는 독자들 중 몇몇 때문에 염려가 된다. 무엇이든지 우리 생각 안에 첫번째로 주입된 것은 뽑아내기가 어렵다. 일단 어떤 사람도 모든 믿는이들이 환난 전에 휴거될 것이라는 가르침에 사로잡혀 있으면 그가 그러한 것으로부터 구출되기란 어렵다. 그러므로 모든 낡고 부정확한 관념들은 일소되어야만 한다.
A. 필요
1. 대환난이 오기 때문에
첫번째로 이기는 자들의 휴거의 필요에 대하여 생각해 보자. 마태복음 24장 21절은 대환난이 올 것을 계시한다. 마태복음 24장 22절은 『만일 그날들이 단축되지 않는다면 모든 육체가 구원을 얻지 못할 것이나 택하신 자들을 위하여 그날들이 단축되리라』고 한다. 대환난은 너무나 극렬한 것이기 때문에 누구나 구원받기가 어려우므로 그날들이 단축되어야 한다.
2. 지구상에 거하는 모든 이들에게 덫이 임하기 때문에
휴거의 또다른 필요는 지구상에 거하는 모든 이들에게 덫이 임하기 때문이다(눅 21:34-35). 그것은 마치 어부가 고기를 잡기 위하여 그물을 던지는 것과같이 사탄은 우리를 덫으로 잡기 위해 그의 그물을 던질 것이다. 누가복음 31장 34절에서 주님은 35절의 덫과 관계된 세 가지 것들을 언급하신다.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뜻밖에 그날이 덫과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
이 구절에서 주님은 방탕함(먹는 것)과 술취함(마시는 것)과 생활의 염려를 언급한다. 제 2 차 세계 대전 이후 지구상의 거의 모든 이들이 이 세 가지에 의해서 점령되었다. 예를 들어, 산업은 전적으로 생활의 염려를 위해 있다. 금전도 마찬가지이다. 모든 대학들이 산업을 위해 있고, 산업은 돈을 위해 있고, 돈은 생활을 위해 있다. 오늘날 이 지구상의 수십억의 사람들을 생각해 보라. 그들의 유일한 관심은 생활에 대한 염려이다. 그들에게 관계된 모든 것들 - 교육, 산업, 정치, 전쟁 - 이 생활에 대한 염려를 둘러싸고 일어나는 것이다. 먹는 것과 마시는 것과 생활에 대한 염려가 악한 덫의 세 가지 주요 요소이다. 그 그물은 지구상의 모든 사람을 덫으로 잡기 위해 사탄에게 사용되고 있다.
누가복음의 이 구절들에서 주 예수께서는 지구상에 거하는 모든이들이 덫에 걸리게 될 때가 오리라고 말씀하신다. 나는 칠십 년 이상 살아오면서 육십 년 가까이 세계 정세를 관찰해 보았다. 나는 인생이 무엇인지를 안다. 나는 인간의 역사를 연구해 보았고, 신문을 읽어 보았고, 세계 정세를 관찰해보았다. 내가 발견한 것은 특히 제 2차 세계 대전 이후 사람들은 그들의 육신의 생활 이외는 아무 것도 주의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이 지구를 되는 대로 아무렇게나 창조하지 않으셨다. 아니다. 그분의 창조는 아름답고 많은 훌륭한 것들을 포함하고 있다. 그러나 만약 우리가 이러한 것들 중의 어떤 것에 의하여 덫에 걸린다면 우리는 그것들에게 붙잡히게 될 것이다. 예를 들어, 우리 자신을 위하여 적합한 거처를 갖는 것은 필요하고 합당한 것이지만 우리는 그것에 의해 덫에 걸리지 않도록 정신차려야 한다.
비록 먹는 것과 마시는 것과 생활로 인한 염려에 의해 덫에 걸릴 심각한 위험이 있지만 우리는 여전히 정상적인 인간의 생활을 해야 한다. 젊은이들은 좋은 교육을 받아야 한다. 왜냐하면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 필요하기 때문이다. 여러분은 『나는 생활을 주의하지 않는다. 나는 주님만을 사랑하기 때문에 공부하는 것을 그만 두고 하루종일 오직 주님만을 찬양하겠다.』라고 말함으로 자신을 변명하지 말라. 만일 여러분이 이렇게 한다면 남에게 짐이 될 것이다. 여러분은 옳을지 모르지만 다른 사람들은 그렇게 여기지 않는다. 여러분은 믿음이 있다고 주장할지 모르지만 여러분이 말하는 소위 그 믿음이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여러분을 위해 수고하게 만들 것이다. 그래서는 안 된다.
여러분은 열심히 공부하고 학교 생활을 잘 해야 한다. 그러나 이렇게 하는 것은 여러분 자신이 명성을 얻거나 유명한 사람이 되기 위한 목적이 아니다. 여러분은 공부를 할지라도 교육이 여러분의 덫이 되게 해서는 안 된다. 그래도 어떤이는 여전히 『나는 덫에 걸리기를 원하지 않기 때문에 학교에 가지 않겠다. 전시간을 성경을 읽고 젊은 친구들과 교제하는 것이 더 낫다. 이것이 좋지 않겠는가?』라고 말할지 모른다. 많은 청년들이 이런 잘못된 관념을 가지고 『주 예수께서 내일 오실지 모르는데 왜 우리가 그렇게 열심히 공부해야 하는가? 이것은 시간을 낭비하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비록 주님이 내일 오시려고 했더라도 여러분의 게으름 때문에 여러분이 공부하기를 배우고 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기다리실 것이다.
우리는 타락한 사람이기 때문에 균형이 잡혀 있지 않다. 마태복음 24장 40절은 밭에 있는 두 사람에 대해 말하고 있다. 그 구절은 두 사람이 자거나 교제하고 있거나 전적으로 주님을 위해 살기 때문에 어떤 일도 하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지 않다. 어떤이는 『주님이 내일 다시 오신다면 왜 우리가 밭에서 일합니까? 필요하다면 주님이 오실 때까지 세 끼 정도는 금식할 수 있지 않습니까?』라고 말할지 모른다. 나는 어떤 설교자가 『주님이 오실 때 나의 아내와 내가 찬양하며 기도하고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메시지에서 말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그러나 성경은 주님이 나타나실 때 우리가 이러한 것들을 하게 되리라고 가리키지 않는다.
오히려 마태복음 24장 41절은 두 여자가 맷돌질을 하는 것에 대해 말한다. 고대에 여자들에게 가장 힘든 일은 밀을 가는 것이었다. 만일 내가 그 당시 여자 중 하나였더라면 나는 아마 『청년 형제들이 주 예수께서 오늘밤에 오실지 모른다고 우리에게 알려 주었다. 그런데 밀을 가는 수고를 할 필요가 있겠는가? 이것은 시간낭비이다. 주님이 오늘밤에 오실지 모르는데 왜 우리가 여전히 밀을 같아야 하는가? 자, 우리는 이제 여기 앉아서 그의 오심을 기다리자.』라고 말했을 것이다. 이것은 한 극단의 예이다.
또 다른 극단의 예는 돈을 벌고 쓰는 것에만 주의하는 그리스도인들이다. 그들은 『오! 우리는 너무 영적이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실제적이어야 하며 우리의 아내와 자녀를 주의해야 한다. 나는 교회 집회에 참석할 시간이 없다. 우리가 집에서 하나님을 예배할 수 없단 말인가?』라고 말한다. 이런 극단의 사람들에게 주님은, 『내가 도적같이 올 것이다. 나는 네가 나를 아주 제쳐놓았을 때 올 것이다. 아마 나는 네가 돈버는 데 열중하고 있을 때 올 것이다.』라고 말씀하시리라.
그러나 다른 극단의 사람들에게 주님은 『너희들 때문에 나는 오는 것을 연기해야겠다. 너희는 나의 재림에 너무 열중하고 있다. 너희는 너무나 열심이어서 아무 것도 하지 않는구나. 심지어 음식 만드는 것조차도 주의하지 않는다. 나는 네가 음식 만드는 것과 돈 버는 것과 네 자신과 남들을 돌보는 것을 배울 때까지 오는 것을 연기하겠다.』라고 말씀하실 것이다. 내가 이렇게 말하는 것은 그런 것이 너무 신중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오늘날 그리스도인들 가운데 있는 가련한 상황이다.
우리는 모두 생활하기 위해서 우리의 책임을 다해야 하지만 그것에 의해서 덫에 걸리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많은 것들을 가질 수 있지만 결코 그것들이 우리를 지배하게 해서는 안 된다. 균형 잡히기를 배우라. 게으름의 극단이나 생활의 여러 가지 것들에게 점령되어 버리는 극단에 빠져서는 안 된다. 수많은 것들과같이 이 문제에도 양면이 있다. 사도 바울의 예를 생각해 보라. 그가 주님이 다시 오심을 기다리지 않았겠는가? 만일 여러분이 그의 글들을 살펴본다면 그것들 모두가 장기적인 것임을 볼 것이다. 그는 결코 『사랑하는 성도들이여, 주 예수께서 내일 오실지도 모르니 여러분은 너무 많은 일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여러분은 단지 둘러앉아서 기도해야 합니다.』라고 말하지 않았다.
그렇지 않다. 오히려 바울은 그의 서신에서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우리는 주님의 다시 오심을 기다리는 동안 여전히 정상적인 방법으로 살아야 합니다.』 비록 우리가 주님이 언제 오시는지를 모른다 할지라도 우리는 이 땅에 있는 한 주 예수의 합당한 간증이 되도록 정상적인 생활을 해야 함을 알아야 한다. 우리는 최선의 교육을 받아야 하며 균형 잡힌 일상생활을 해야 한다. 우리는 또한 우리의 집을 가져야 하며 모든 면에서 정상적인 사람이어야 한다.
주님의 다시 오심을 기다리는 사람으로서 우리는 어떤 것에 의해서도 덫에 걸리지 말고 합당한 생활을 해야 한다. 우리의 마음은 어떤 것에도 있지 않고 주님에게 있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가 공부하지 않는다거나 일하지 않는다거나 청소와 같은 매일의 세세한 일을 돌보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다. 『왜 나는 내 옷을 잘 정돈하고 깨끗하게 해 놓아야 하는가? 세탁소에 웃을 맡기는 것은 시간과 돈을 낭비하는 것이다. 주님은 육신을 관심하시지 않고 오직 나의 영을 관심하신다. 나의 영이 깨끗한 한 모든 것이 다 좋다.』라고 말하지 말라.
나는 많은 청년들이 여전히 이러한 태도를 갖고 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그들은 심지어 아침에 그들의 침구 정돈조차도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런 것은 시간 낭비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누울 장소가 있는 한 만족하며 그런 시간을 성경을 읽거나 영적인 책을 읽는 데 쓸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왜 그들의 방을 아담하고 깨끗하게 잘 정리해 놓아야 하는지를 모른다. 그들의 나태함이 주님의 다시 오심을 연기할 것이다. 주님은 그들에게 말씀하실 것이다. 『너는 아침 일찍 너의 침구를 정돈하는 것과 머리 빗는 것과 너의 구두 닦는 것을 배워야 한다. 그리고 너의 모든 책들을 잘 정돈해야 한다. 신약을 구약 전에 놓지 말아라.』
부주의한 장로는 교회를 건축하는 데 유용하지 못하다. 우리는 근면함과 매사를 질서 있게 간수하기를 배워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밤에 그러한 것들에 대해 꿈을 꾸어서는 안 된다. 그대신 주님이 『볼지어다. 내가 속히 오리라.』고 말씀하실 때는 모든 것들을 잊을 수 있어야 한다. 어떤 사람들은 그들의 소유품을 잘 정돈하지만 이것이 그들에게 덫이 되어 버린다. 이것은 우리가 어디에 있는가를 결정하는 시험이다. 우리는 예수의 간증으로서 여기에 있다. 우리는 정상적인 삶을 사는 정상적인 사람이지만 이런 생활의 어떤 것도 우리를 손상시킬 수 없다. 우리는 나태하거나 할 일 없이 놀고 있거나 게으르거나 부주의하지 않다. 그러나 이 세상의 어떤 것도 우리를 지배할 수 없다. 이 문제의 이러한 두 면은 우리로 하여금 주님과 하나 되게 한다.
휴거의 의미는 무엇인가? 그것은 주님의 임재 안으로 이끌려지는 것이다. 만일 당신이 그분의 임재 안으로 이끌려지려면 오늘 그분의 임재 안에 있어야 한다. 여러분의 많은 찬양과 교통이 그분의 임재 안에 있지 않고 단지 여러분 자신의 선택을 따른 것일 수 있다. 여러분은 주님의 임재 안에 있지 않고 여러분의 취향과 기호에 있다. 여러분이 교통하기를 갈망할 때 주님은 『가서 일하거나 공부하라.』고 말씀하실지 모른다.
3. 땅에 거하는 모든 이들에게 임할 시험이 오기 때문에
이기는 자들의 휴거가 필요한 또 다른 방면은 땅에 거하는 모든 이들에게 시험이 오기 때문이다(계 3:10). 이 시험은 아마 여섯째 인과 처음 네 나팔들의 초자연적인 재난을 동반하는 나중의 세 나팔들의 세 가지 화로 구성되는 대환난이 될 것이다. 그 화들과 재난들은 지구상에 거하는 이들에게 가장 맹렬한 시험이 될 것이다. 이 시험으로부터 구원받기 위하여 우리는 그 시험이 오기 전에 휴거되는 것이다.
4. 멸망이 평안하다 안전하다 말하는 이들에게 산고(産苦)와같이 이르기 때문에
데살로니가 전서 5장 3절은 『저희가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그때에 잉태된 여자에게 해산의 고통이 이름과같이 멸망이 홀연히 저희에게 이르리니 결단코 피하지 못하리라』고 말한다. 이 구절은 멸망이 평안하고 안전하다고 말하는 이들 위에 해산의 고통과같이 이를 것을 가리키고 있다. 미국에 있는 사람들은 평화와 안전을 하나의 구호로서 취하고 있다. 사람들이 평화와 안전에 대하여 말하고 있을 때 멸망이 갑자기 그들 위에 임할 것이다.
5. 마귀가 크게 분내어 내려옴으로 땅과 바다에게 화가 있기 때문에
이기는 자들의 휴거의 필요성의 또다른 면은 마귀가 크게 분내어 땅과 바다에게 하나의 화로서 땅에 내려오기 때문이다(계 12:12). 그때 그는 그의 때가 얼마 남지 않은 줄을 알고서 사람을 극도로 괴롭히기 위하여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할 것이다. 우리는 그의 악한 괴롭힘으로부터 우리를 지키기 위해 참으로 휴거되어야 한다.
6. 큰 용-사탄-이 여자에게 분내며 그 여자의 남은 자손과 싸우려 하기 때문에
큰 용 곧 사탄이 땅에 내려온 후 그는 여인에게 분낼 것이며, 그 여자의 남은 자손과 싸울 것이다(계 12:17). 계시록 12장에 있는 여인은 교회와 이스라엘 자손을 다 포함하는 하나님의 백성의 총체이다. 그 여인의 자녀는 두 부류로서 율법을 지킨 자들과 예수의 간증을 가진 자들이다. 이스라엘의 남은 자 십 사만 사천은 분명히 율법에 신실할 것이며, 구속받은 믿는이들은 예수의 간증에 신실할 것이다. 이 여인에게 분내게 될 큰 용은 그녀의 자손의 남은 자들, 즉 모세의 율법을 지키는 유대인들과 예수의 간증을 가진 그리스도인들과 싸울 것이다. 이른 휴거는 이일 이전에 있어야 한다.
7. 짐승-적 그리스도-이 성도들과 싸워서 그들을 이기기 때문에
계시록 13장 7절은 적 그리스도에 대하여 『성도들과 싸워 이길 권세가 그에게 주어졌다』고 말한다. 성도들은 계시록 12장에서 여인에 의해 상징된 하나님의 백성이다. 이것은 대환난에 많은 믿는이들이 적그리스도를 대항하여 싸울 것이고, 적그리스도가 승리할 것이며, 여전히 거기에 있을 것임을 가리킨다. 이것은 그가 대환난 동안에 믿는이들을 핍박할 것을 의미한다. 우리가 그 전에 휴거됨이 얼마나 필요한지!
이 모든 끔찍하고 무서운 것들이 오기 때문에 우리는 들림받아야 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이 무섭고 소름끼치는 사건들이 일어나기를 기다리지 않는다. 우리는 이런 일들이 일어나기 전에 주님께서 우리를 이끄시기를 기다리고 있다. 그러므로 분명히 이기는 자들의 휴거에 대한 필요가 있는 것이다.
B. 약속들
1. 이 모든 일들을 능히 피하게 되고 인자 앞에 서게 됨
이제 우리는 이기는 자들의 휴거와 함께 약속들을 보겠다. 누가복음 21장 36절은 『이러므로 너희는 장차 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고 말한다.
헬라어에 의하면 「능히」라는 말은 「충분히 강하여짐」으로 번역될 수 있다. 헬라어에서 이 구절은 두 가지 의미를 다 가지고 있다. 우리가 충분히 강해질 때 우리는 능하게 된다. 우리는 덫을 피하고 인자 앞에 서기 위하여 충분히 강해져야 한다. 주님이 다시 오시기 전에 인자이신 그분은 삼층천에 계실 것이다. 누가복음 21장 36절은 이기는 자들이 인자 앞에 서게 될 것을 계시하는데, 이것은 그들이 하늘에 있는 주님의 임재 앞에 휴거될 것을 의미한다. 덫이 임하려 하지만 우리는 덫을 피하기 위하여 충분히 강해져야 한다. 만일 여러분이 고기잡이에 익숙하다면 좀 강한 고기는 그물을 피할 수 있다는 것을 알 것이다. 마찬가지로 이기는 자들은 덫을 피하고 하늘의 주님의 임재 앞에 서도록 충분히 강해질 것이다. 이것이 대환난 전에 휴거됨에 대한 약속이다.
2.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함
휴거에 관한 또 다른 약속은 계시록 3장 10절에서 볼 수 있다.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내가 또한 너를 지키어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니 이는 장차 온 세상에 임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할 때라』.
어떤이들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환난 후에 휴거될 것이라고 말한다. 이런 관념은 다비의 모임으로부터 분리된 형제회의 소위 뉴톤의 모임 가운데서 볼 수 있다. 나는 뉴톤 모임의 지도적인 교사에게 계시록 3장 10절에 대하여 물어 본 적이 있었는데 그는 이 구절이 그들에게 문제였음을 인정했다. 이 구절에 따르면 이기는 자들이 단지 시험을 면할 뿐 아니라 또한 시험의 때를 면하리라고 말하는데, 이것은 그들이 대환난 전에 휴거될 것임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이기는 자들의 휴거는 대환난에 앞서 일어날 것이다.
위트니스 리
[요한계시록 라이프 스타디, "믿는이들의 휴거(1)", 한국복음서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