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성한 말씀을 누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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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우리 겉사람에 대해 파쇄의 일을 하실 뿐 아니라 또한 겉사람을 분리시키신다. 하나님은 우리 겉사람을 파쇄하실 뿐더러 또한 우리 겉사람이 속사람을 묶지 못하도록 우리의 영과 혼-속사람과 겉사람-을 분리시키기를 원하신다.

 

혼잡된 영

 

하나님의 자녀들의 한 가지 문제는 바로 영과 혼의 혼잡됨이다. 언제든지 그의 영이 나올 때 그의 혼도 흘러 나온다. 당신은 사람들에게서 이런 깨끗한 영을 찾기 어렵다. 많은 사람들에게 이 깨끗함이 결여되어 있다. 바로 이 혼잡함 때문에 하나님은 그를 쓰시지 않으신다.

 

사역하는 첫번째 조건은 능력의 크고 작음에 있지 않고 깨끗한가에 있다. 큰 능력은 바라면서 영의 깨끗함을 소홀히 하는 사람은 얼마나 많은지! 그가 건축할 능력을 가진 반면에 또한 깨끗함이 결여되었기 때문에 그의 일은 허물어지지 않을 수 없다. 한면으로 그가 능력을 사용하여 건축하지만 다른 면에서 그는 자기의 혼잡함으로 건축한 것을 허물고 있다. 한면에서 그는 확실히 하나님의 능력을 소유하였지만 동시에 그의 영에는 혼잡한 것이 섞여 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능력을 얻기만 하면 그에게 속한 것들이 다 승화되어 하나님께 쓰임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것은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겉사람에게 속한 것은 여전히 겉사람의 것이다. 하나님을 알수록 우리는 능력보다 깨끗함을 더욱 귀히 여기게 된다.

 

깨끗함은 영적인 능력 외에 겉사람의 혼잡함이 없는 것을 말한다. 우리는 겉사람이 처리되지 않은 사람에게서 나온 능력이 깨끗하기를 바랄 수 없다. 그는 영적인 능력을 소유하고 있고 사역의 열매가 있으므로 자기 자신을 어디에 섞어 놓을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없다. 이렇게 할 때 결국 어려움이 되고 이것은 하나의 죄인 것이다.

 

많은 형제 자매들은 복음이 하나님의 크신 능력임을 알면서도 다른 면에서 복음을 전할 때 그들은 자기의 총명과 경솔함을 전파 가운데에 섞어 놓는다. 자기의 농담과 개인의 느낌을 그 안에 섞어 놓음으로써 사람들로 하여금 한면으로 하나님의 능력을 만지게 하고 또 한면으로는 그들 자신도 만지게 한다. 어쩌면 그들 자신은 이것을 느끼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깨끗한 사람은 즉시 거기에 혼잡함이 섞여 있는 것을 느낀다.

 

많은 때 하나님의 일을 할 때 우리는 겉에서 열심을 갖지만 사실상 거기에는 우리의 애호가 섞여 있다. 많은 경우 겉보기에는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준행하고 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그 때 하나님의 뜻이 우리의 뜻과 일치되었었기 때문이다. 사람의 애호가 섞인 하나님의 뜻이 얼마나 많은지! 사람의 느낌이 섞인 열심도 얼마나 많은지! 사람의 강한 성격이 섞인, 하나님을 위해 서 있음이 얼마나 많은지!

 

혼잡함은 우리의 가장 큰 문제점이다. 그러므로 우리 몸에서의 하나님의 모든 역사는 우리 겉사람을 파쇄하기 위한 것인 동시에 또한 우리의 혼잡함을 제거하기 위한 것이다. 한면에서 하나님은 우리 겉사람의 완전함을 유지하지 못하도록 한 단계씩 우리를 파쇄하신다. 한 번, 두 번, 열 번, 스무 번의 다룸을 거쳐 우리 겉사람이 파쇄될 때,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더이상 딱딱한 껍질을 가지고 있지 않게 된다.

 

그런데 다른 면에서 우리 영 안에 섞여 있는 겉사람은 어떻게 처리되어야 하는가? 이것은 다른 부분의 역사 곧 제거하는 역사가 필요하다.

 

이 역사는 성령의 통제로 말미암지 않는다. 많은 때 이것은 성령의 계시로 말미암아 이루어진다. 혼잡함을 제거하는 길은 겉사람을 파쇄하는 길과는 다르다. 혼잡함을 제하는 길은 더 많은 때 계시로 말미암는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 몸에 행하시는 두 가지 다른 다루심이 있다는 것을 보아야 한다. 하나는 겉사람의 파쇄이고 다른 하나는 겉사람과 영과의 분리이다. 전자는 성령의 통제로 말미암아 이루어지고 후자는 성령의 계시로 말미암아 이루어진다.


파쇄와 분리의 필요성

 

파쇄와 분리는 우리의 필요를 공급하는 데 있어서 각각 다르다. 그러나 이 두 가지는 서로 나눌 수 없는 상당히 깊은 관계를 갖고 있다. 겉사람이 파쇄되어야만 영이 해방될 수 있다. 영이 해방될 때 거기에 겉사람의 상태의 색깔을 띠고 있지 않아야 하고 사람에서 비롯된 어떤 것도 끼어 있지 말아야 한다. 그런데 이것은 영이 해방되는 문제가 아닌 영이 깨끗하고 순결한가의 문제이다.

 

많은 경우 어떤 형제가 일어나 말을 할 때 들어보면 우리는 그의 말 속에 영이 있음을 알 수 있고 또 그의 말에서 하나님을 만질 수 있다. 그러나 동시에 그의 말 속에서 그 사람의 어떠함과 그의 가장 강한 부분을 만지게 된다. 이는 그의 영이 깨끗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의 많은 부분을 우리가 칭찬해야 하지만, 그 반면에 우리는 그에게서 고통스러운 많은 부분을 느낄 수 있다. 그러므로 문제는 영이 해방되는 것만이 아니라 영이 순결한가이다.

 

만일 사람이 하나님의 빛 비춤을 얻지 못하고 겉사람이 무엇인지 모르고 하나님 앞에서 깊은 심판을 받지도 않았다면, 그의 영이 흘러 나올 때 자연히 그의 겉사람도 따라 나오게 된다. 사람을 만날 때 우리는 항상 우리의 가장 뚜렷하고 강한 부분으로 그를 접하게 된다. 겉사람이 아직 심판받지 않은 사람은 다른 사람을 만날 때 그의 겉사람의 가장 강한 부분이 함께 나오게 된다. 이것은 꾸밀 수 없는 일이다.

 

많은 사람이 집안에서는 영적이지 않으면서 강단에서 즉시 신령해지기를 바란다. 그러나 이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어떤 사람은 기억력이 좋지 않을 때 영적이지 못하다고 말한다. 그러면 그는 기억력을 의지하여 신령해져야 하는데 이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당신은 오늘 내가 여기서 말씀을 전함으로 사역하고 있기 때문에 내 기억력으로 내 자신을 붙잡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기억력은 우리의 구원이 될 수 없다. 사람은 기억력으로 구원받을 수 없다. 당신이 어떤 사람이면 입을 열 때 당신의 그런 모습이 드러난다. 사람이 어떻게 가장하든, 어떻게 조작하든, 또는 어떻게 꾸미든간에 입을 열기만 하면 그의 영이 따라 나오기 마련이다. 당신이 어떤 영을 갖고 있고 당신의 영 안에 어떤 것이 섞여져 있는지 입을 열 때 드러난다. 그러므로 영적인 일에서는 외식할 수가 없다.

 

만일 당신이 하나님 앞에서 이로부터 구원을 얻고자 한다면, 당신에게 필요한 것은 부분적인 구원이 아닌 근본적인 구원이다. 하나님은 당신에게서 당신의 강한 부분을 처리하는 역사를 하셔야 한다. 하나님이 당신의 강한 부분을 깨뜨리셔야 비로소 혼잡한 것들이 섞이지 않은 영을 가지고 사람들에게 갈 수 있다. 만일 당신이 근본적으로 하나님의 다루심을 받지 않았다면, 당신이 기억할 때에는 조금 영적인 것 같고 기억하지 못할 때에는 당신 자신이 나오게 된다. 사실상 당신이 당신의 자아를 유념하든 그렇지 않든 당신이 흘러 보낸 영은 똑같은 것이다. 당신의 영과 함께 흘러 나온 것도 달라진 것이 없다.

 

혼잡의 문제가 사역하는 사람에게 있어서 가장 큰 문제이다. 우리가 형제에게서 생명을 만지면서 사망을 만질 때가 얼마나 많은지! 형제에게서 하나님을 만지는 동시에 그의 자아를 만질 때가 얼마나 많은지! 형제에게서 온유한 영을 만지는 동시에 그의 강한 자아를 만질 때가 얼마나 많은지! 사람들은 그에게서 성령도 발견하고 그의 육체도 발견한다. 그가 일어나서 말을 할 때 사람으로 깨끗한 영이 아닌 혼잡한 영을 만지게 한다.

 

그러므로 만일 하나님이 그분의 말씀으로 그분을 섬기기를 원하시고 당신 또한 반드시 하나님을 위하여 입을 열어야 할 사람이라면, 하나님께 이런 은혜를 구하라. 즉, 『하나님, 내게 역사하사 내 겉사람을 파쇄해 주시고 허물어 주시며 내 겉사람을 분리시켜 주소서.』라고 말해야 한다. 만일 당신이 이런 구원을 받지 못했다면 입을 열 때마다 부지불식간에 겉사람을 사람들 앞에 가져가게 되고 그것을 감출 방법이 없다. 사람의 말이 나올 때 영도 나오게 된다.

 

당신이 어떤 사람이라면 언제나 그런 사람인 것이다. 이것은 가장(假裝)할 수 없다.

 

만일 당신이 하나님께 쓰임받는 사람이 되고자 한다면 당신의 영은 해방되고 깨끗해야 한다. 당신 자신이 정결케 되어야 하며 겉사람은 허물어져야 한다. 만일 우리 겉사람이 허물어지지 않았다면, 말씀의 사역을 할 때 우리 자신의 것이 함께 사람들에게 전달되어 주님의 이름에 손상을 입힐 것이다. 우리가 주님의 생명을 얻지 못했기 때문에 주님의 이름을 욕되게 한 것이 아니라 우리의 혼잡함이 주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고 교회를 욕되게 한 것이다.

 

성령의 통제를 이미 다루었으므로 우리는 이제 성령의 계시에 대해 보기로 하자. 성령의 통제가 성령의 계시 이전에 있을 수도 있고 그 반대로 성령의 계시가 성령의 통제 이전에 있을 수도 있다. 우리가 말하려면 순서를 말할 수 있겠지만, 성령이 역사할 때에는 어떤 것이 먼저이고 어떤 것이 나중일 수가 없다. 그러나 우리의 체험에서는 그렇지 않다. 어떤 사람에게는 이것이 먼저이고 어떤 사람에게는 저것이 먼저이다. 즉, 어떤 사람은 먼저 성령의 통제를 얻고 그 다음 성령의 계시를 얻는다. 그런 다음 성령의 계시를 얻고서 또다시 성령의 통제를 얻는다. 그 다음에 또 성령의 계시를 얻는다.

 

한 가지 다른 것은 하나님의 자녀의 생활에 성령의 통제가 성령의 계시보다 많다는 것이다. 이것은 교리의 면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체험의 면을 말하는 것이다. 많은 사람에게 계시보다 통제가 많다. 어쨌든 영과 혼, 곧 겉사람과 속사람은 반드시 분리되어야만 한다. 우리 겉사람은 온전히 파쇄되고 분쇄되며 완전히 분리되어야 한다. 이럴 때 비로소 당신의 영이 자유로이 해방되고 깨끗해질 수 있다.


분리되는 길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 지으신 것이 하나라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오직 만물이 우리를 상관하시는 자의 눈앞에 벌거벗은 것같이 드러나느니라』. 혹은 『만물이 주님 눈앞에서 벌거벗었나니 주는 우리를 심판하시는 자이시니라』(히4:12-13).

 

첫째로 우리는 성경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 있다고 말했음을 주의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이 참으로 어떤이에게 보여질 때 그 사람은 필히 살아 있는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 있다는 것을 느끼지 못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보지 못하게 된다. 어떤 사람은 성경의 의문을 읽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보지 못한다. 언제든지 우리가 살아 있는 것을 만질 때 하나님의 말씀을 만지는 것이다.

 

요한복음 3장 16절은,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말한다. 어떤 사람이 이 말씀을 듣고서, 『주여, 당신이 나를 사랑하시고 나를 구원하심을 인해 감사하고 당신을 찬미합니다.』라고 말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만진 사람을 볼 수 있다. 왜냐하면 이 말씀이 그에게 살아 있기 때문이다. 옆에 앉은 다른 사람도 같은 말씀과 같은 음성을 들었지만 그가 들은 것은 소리일 뿐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는 이 말씀을 듣고서 살아 있는 반응을 갖지 않았기 때문이다. 만일 하나님의 말씀을 살아 있는 말씀으로 듣지 않았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하심을 듣지 못한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그분의 말씀이 살아 있다는 것을 보았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을 뿐 아니라 또한 운동력이 있다. 살아 있다는 것은 그 성질을 말하고, 운동력이 있다는 것은 말씀이 사람에게 이루고자 하는 일을 이룸을 말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공중에 매달려 있지 않고 하고자 하시는 일을 해내고야 만다. 곧 열매를 맺는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말로 끝나지 않고 사람에게서 효능을 발휘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다. 이 말씀이 사람에게 무슨 역사를 이루는가? 「찔러 쪼개기까지」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 예리하다」. 여기에 하나의 대조가 있다. 한면으로는 죄우에 날선 검 대(對) 관절과 골수의 대조가 있고, 다른 면으로는 하나님의 말씀 대(對) 혼과 영의 대조가 있다. 관절과 골수는 인체의 가장 깊은 곳이다. 관절을 분리시킨다는 것은 뼈를 아래 위로 나눈다는 말이다. 골수를 쪼갠다는 것은 뼈의 안과 밖을 나눈다는 것이다. 좌우에 날선 검은 능히 뼈의 상하와 안팎을 다 분리시킨다. 좌우에 날선 검은 물리적으로 이런 정도까지 우리의 몸에서 역사할 수 있다.

 

그러나 관절과 골수보다 분리되기 어려운 것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우리의 영과 혼이다. 가장 예리한 검은 관절과 골수를 쪼갤 수 있지만 영과 혼은 쪼갤 수 없다. 이런 검은 무엇이 영이고 무엇이 혼인지, 어떤 것이 혼에서 나오고 어떤 것이 영에서 나온 것인지 보여 줄 수 없다. 그러나 성경은 좌우에 날선 검보다 더 예리한, 우리의 영과 혼을 쪼갤 수 있는 하나님의 말씀이 있다고 말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은 찔러 쪼개기까지 한다.

 

이 말씀이 찌른 것은 관절이 아니고 쪼갠 것은 골수가 아니다. 이 말씀이 찌르고 쪼갠 것은 사람의 영과 혼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사람의 영과 혼을 분리시킬 수 있다.

 

아마 어떤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이 자기에게 어떤 특별한 역사를 하는 것을 느끼지 못한다고 말할 것이다. 그가 여러 번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보고 하나님의 계시를 얻은 적도 있지만 어떤 특별한 것을 얻지 못 했고, 찌르는 것이 무엇이고 쪼개는 것이 무엇인지를 모른다고 말할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찌르고 쪼갠다는 것을 알고 영과 혼을 분리시킨다는 것도 아는데 그의 체험에서는 찌르고 쪼개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다고 말할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해 성경은 우리에게,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라고 설명한다. 혼과 영을 찔러 쪼갠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그 다음에서는, 『또 생각과 마음의 뜻을 감찰하나니』라고 말한다. 마음의 뜻은 「품은 뜻」으로 번역할 수 있다. 생각은 우리 마음의 생각하는 바를 말하고 품은 뜻은 우리의 목적을 말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능히 우리 마음에서 생각하는 것과 속에 품은 뜻까지도 감찰한다.

 

많은 때 우리는 무엇이 우리 겉사람에게서 나온 것이고 무엇이 혼에 속하며 육체에 속한 것이라고 말할 것이다. 또한 이것은 혈기이고 우리 자신이라고 말할 것이다. 우리는 말만 그렇게 하고 사실상 우리가 말한 것을 보지 못한다. 어느 날 하나님이 우리를 긍휼히 여기사 우리를 빛 비추시며 우리에게 다음과 같이 강하고 엄숙한 말씀을 하실 때 비로소 눈을 떠서 보게 된다. 즉, 『네가 수차 말하던 네 자아는 바로 네 자신이다! 네가 평상시 함부로 논한 그 육체는 바로 이것이다! 이것이 바로 내가 미워하고 용납하지 못하는 그것이다.』

 

이것을 보지 못할 때 우리는 농담하듯이 육체를 말할 것이다. 그러나 빛 아래 있을 때 우리는 엎드려서, 『바로 이것이다! 내가 말해 왔던 육체가 바로 이것이었다!』라고 말할 것이다. 이 때 우리의 영과 혼의 분리는 지식적인 것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임하여 우리 마음의 생각의 어떠함과 마음속의 뜻의 어떠함을 지적하는 분리이다. 영과 혼의 분리는 곧 하나님의 빛 아래서 본래 내가 생각했던 것과 내가 의도했던 것이 육체에 속했고 내 가 이렇게 행한 것도 육체에 속했으며 원래 나의 동기가 내 자신을 위했음을 보는 것이다.

 

가령, 여기 죄인 둘이 있다 하자. 두 사람이 다 죄인이지만 좀 차이가 있다. 한 사람은 지식이 있는 죄인이어서 집회에 올 때 많은 말씀을 듣고서 그 사람은 죄인이 되어, 이런 사람 저런 사람이 죄인이라는 것을 안다. 말씀 전하는 사람이 분명하게 말했기 때문에 그는 많은 지식을 듣고서 자신이 죄인인 것을 시인한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에 대해 말할 때 항상 농담하듯이 말하고 조금도 신중하게 말하지 않는다. 다른 한 사람은 같은 말씀을 듣고 동시에 그에게 하나님의 빛이 있어서 땅에 엎드려, 『아! 내가 바로 그런 사람입니다! 나는 죄인입니다!』라고 말한다. 그는 자신이 죄인이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을 뿐 아니라 또한 자신이 참으로 죄인인 것을 보았다. 그래서 그는 자신을 정죄하고 땅에 거꾸러졌다.

 

하나님의 빛 비춤을 받은 두번째 사람은 엎드려 죄를 자복함으로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얻을 수 있다. 그러나 말재주가 있고 농담하듯 자신을 죄인이라고 말한 사람은 참으로 보지 못했기 때문에 구원을 얻지 못한다.

 

오늘 당신은 겉사람이 심각한 문제이고 혈기에 속한 사람은 반드시 파쇄되어야 한다는 것을 들었다. 만일 당신이 함부로 이런 말을 주제로 하여 남에게 전한다면 이는 당신에게 아무런 소용이 없다. 하나님의 긍휼을 입고 하나님의 빛을 본 사람은, 『주여! 오늘에서야 내 자신을 알았습니다. 오늘에서야 이것이 나의 겉사람임을 알았습니다.』라고 말할 것이다. 하나님의 빛이 당신을 비추어 당신의 겉사람을 보여 주실 때 당신은 땅에 엎드러져 일어나지 못할 것이다. 그 때 당신은 즉시 자신이 그런 사람이었다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본래 당신은 주님을 사랑한다고 말했었지만 이제 하나님의 빛 비춤을 받을 때 당신은 자신을 사랑했음을 보게 될 것이다. 이 빛이 비췰 때 당신은 분리된다. 당신의 두뇌가 당신을 분리시킨 것이 아니요 당신의 교리가 당신을 분리시킨 것도 아니며 하나님의 빛이 당신을 분리시킨 것이다.

 

원래 당신에게 열심이 있다고 말했지만, 이제 하나님의 빛은 당신의 열심이 완전히 혈기의 행위였음을 당신에게 보여 주신다. 본래 당신의 복음 전파가 죄인을 사랑함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생각했으나 나중에 빛이 임할 때 당신의 복음 전파가 당신의 활동적인 기질과 당신의 말하기를 좋아함과 당신의 천연적인 성향에서 비롯된 것임을 보게 된다. 빛이 당신을 비출 때 당신의 마음속에 품은 뜻과 마음의 생각이 다 드러난다. 본래 당신의 생각과 의도가 주님에게서 나왔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빛이 임할 때 이것들이 주님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 당신 자신에게서 나온 것임이 드러날 것이다. 이 빛이 당신을 비출 때 당신은 하나님 앞에 엎드러진다.

 

주님에게서 비롯되었다고 말한 일 중 실지로 우리 자신에게서 비롯된 것이 얼마나 많은지! 우리가 엉뚱하게 이것도 주님을 위한 것이고, 저것도 주님을 위한 것이라고 말했지만 빛이 임할 때 우리는 비로소 주님을 위한 것이 얼마나 적고 우리 자신을 위해 행한 것이 얼마나 많은지를 보게 될 것이다. 주님이 하신 것이라고 말한 일 중 실지로 우리 자신이 한 것이 얼마나 많은지!

 

주님께서 당신에게 주셨다고 한 많은 말씀도 전혀 주님이 당신에게 말씀하신 것이 아님을 볼 것이다. 주님이 당신에게 분부하신 것이라고 생각한 많은 일들도 하늘로부터 빛이 임할 때 그 많은 일들이 혈기의 활동에 지나지 않았음을 볼 것이다. 진상을 드러내는 실제적인 노출은 우리를 맑게 하며, 우리에게서 난 것이 얼마나 되고 주님에게서 난 것은 얼마나 되며 혼에서 비롯된 것은 얼마나 되고 영에서 비롯된 것은 얼마나 되는지를 알게 할 것이다. 빛이 임할 때 영과 혼이 분리되고 마음의 생각과 의도가 감찰된다.

 

이것은 교리로 설명할 길이 없다. 무엇이 자신에게서 비롯된 것이고 무엇이 주님에게서 비롯된 것이며 무엇이 육체로 비롯된 것이고 무엇이 성령으로 비롯된 것이며 무엇이 주님의 은혜로 비롯된 것이고 무엇이 겉사람이 한 것이며 무엇이 속사람이 한 것인지 등의 이 모든 교리를 낱낱이 장부에 기록하고 세세히 그것들을 외운다 할지라도, 당신은 그것들에 대해 분명하지 앉을 것이며 겉사람을 제할 수 없을 것이다.

 

이것들은 계속 당신 몸에 머물 것이고 당신은 결코 그것으로부터 벗어 날 수 없다. 당신이 입으로 육체와 혈기가 제해져야 한다고 말하고, 육체와 혈기는 이런 저런 것이라고 흥미롭게 말할 수 있다 하더라도, 당신은 그것들로부터 구원받을 수 없다. 구원은 이런 것으로부터 오지 않고 하나님의 빛으로부터 온다. 하나님의 빛이 당신을 비출 때 비로소 육체를 거절했던 당신의 많은 행위가 육체였고 혈기를 비평했던 그 많은 행위가 혈기였다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주님이 당신의 마음의 생각과 마음의 의도를 드러내심으로 당신의 마음속에 있는 당신의 실지 생각과 마음에 품은 실지 의도를 보았을 때, 당신은 무릎을 꿇고, 『주여, 지금 이것이 나의 겉사람인 것을 알았습니다.』라고 말할 것이다.

 

형제 자매들이여, 오직 이 비춤만이 우리 겉사람을 분리시킬 수 있다. 겉사람의 분리는 우리의 거절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믿을 만한 것이 아니다. 많은 때 죄에 대한 우리의 자백까지도 깨끗하지 않다. 우리의 자백의 눈물도 피의 씻음이 필요하다. 당신은 당신의 머리 속에서 이해한 것이 모두 당신의 소유라는 어리석은 생각을 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내 말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의 날선 검보다 예리하고 빨라서 사람에게 임할 때 관절과 골수 및 영과 혼을 분리시킬 수 있다.』고 말씀하신다. 어떻게 분리시키는가? 당신의 마음의 동기를 드러내고 당신의 생각을 드러냄으로써이다. 자기 마음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형제 자매들이여, 오직 빛 아래 있는 사람만이 자기의 마음을 안다. 빛 아래 있지 않은 사람은 자기의 마음을 모른다. 자기의 마음을 아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우리는 자기의 마음을 조금도 모른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이 임할 때 비로소 본래 우리의 모든 것이 다 자기를 위한 것이었으며, 자기의 뜻을 구한 것이었으며, 자기의 지위를 높인 것이었으며, 자기를 내세우기를 바란 것이었음을 보게 될 것이다. 형제 자매들이여, 빛이 임할 때 당신 자신이 드러나고 당신은 하나님 앞에 엎드러진다.


어떻게 계시를 얻을 수 있는가

 

성경은, 『지으신 것이 하나라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오직 만물이 우리를 상관하시는 자의 눈앞에 벌거벗은 것같이 드러나느니라』고 말한다. 여기서 주님은, 그분이 빛으로 우리를 비추어 우리의 생각과 마음의 동기를 분리시키는 데 있어서의 표준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어떤 것이 성령의 계시인가? 우리는, 우리가 어느 단계에 이르러야 계시를 얻었다고 말할 수 있는지를 보아야 한다. 이것이 13절이 말한 바이다. 한마디로 말해서 빛의 표준은 곧 하나님의 표준이다. 계시는 곧 하나님의 표준 아래서 우리로 무언가를 보게 하는 것이다. 만물이 그 앞에 다 드러나고 한 가지도 가리워질 수 있는 것이 없다. 모든 가리움은 자기 눈을 가리울 수 있을 뿐 주님의 눈은 가릴 수 없다.

 

계시란 그분이 우리를 아시는 것처럼 우리가 우리의 동기와 가장 깊은 속의 생각을 알도록 하나님이 우리 눈을 열어 주시는 것이다. 그분 앞에서 우리가 벌거벗은 사람인 것처럼, 우리의 모든 것이 드러나 있는 것처럼, 계시를 얻은 후에 우리는 자신 앞에서 그렇게 드러나게 된다. 이것을 계시라고 한다. 계시란 곧 주님이 보신 것을 우리가 보는 것이다.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긍휼히 여기사 그분이 아는 우리, 즉 그분 앞에서의 우리의 어떠함을 계시하고 보여 주신다면, 우리는 즉시 땅에 엎드러질 것이다. 그 때에는 고의로 겸손하려고 하지 않아도 엎드러질 것이다. 빛 안에 있는 사람은 교만하려고 해도 교만할 수 없다. 오직 어두움 안에 있는 사람만이 교만하다. 사람이 의기 양양해 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빛 밖에 있기 때문이다. 빛 안에 있는 사람은 누구나 다 엎드러진다.

 

그러므로 어떻게 영적인 것과 혼에 속한 것을 구분하는가, 속사람이 행한 것과 겉사람이 행한 것을 구분하는가의 문제를 교리로 말하며 설명하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계시가 있다면 이 문제는 매우 간단해진다. 오직 하나님이 당신의 마음의 뜻을 드러내시고 당신의 동기를 보실 때 당신의 영과 혼은 분리된다. 언제든지 당신의 마음속의 생각과 동기가 분별될 때가 곧 당신의 영과 혼이 분리될 때이다.

 

만일 당신이 유용한 사람이 되고자 한다면 언젠가 이 빛을 보아야 한다. 또 오직 이 빛이 당신에게 임할 때만이 주님의 심판을 받을 수 있다.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때 당신은 고개를 들어 이렇게 말할 수 있게 된다. 『하나님이여, 내 자신은 신뢰할 만하지 못합니다. 내 자신을 책망할 때에도 문제이고 나의 죄를 자백할 때에도 무슨 죄를 자백했는지 모릅니다. 오직 빛 안에 있을 때에만 알 수 있습니다.』

 

빛 비췸을 얻기 전에 자신이 죄인이라고 말하지만 죄인이라는 느낌을 조금도 갖지 않는다. 당신은 자아를 미워한다고 말하지만 자아를 미워하는 느낌이 조금도 없다. 당신이 자아를 거절한다고 말하지만 당신에게는 자아를 거절한다는 느낌이 조금도 없다. 이 모든 것들은 오직 주님만이 비추실 수 있다. 빛이 당신을 비출 때 당신의 그 「원래 모습」을 볼 수 있게 된다.

 

본래의 나는 일평생 나 자신만을 사랑하고 주님을 사랑하지 않는 나였다. 본래 나는 자기를 속이고 주님을 속인 사람이요 주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이런 빛은 당신이 어떤 사람인가를 보여 주고 전에 당신이 행한 일이 어떤 일이었는지를 보여 준다. 그 날부터 당신은 영에서 비롯된 것과 혼에서 비롯된 것을 구분할 줄 알게 된다. 오직 그 날부터 당신의 많은 것들이 당신에게서 비롯되었음을 속에서 알게 될 것이다.

 

빛 가운데서 심판을 받은 사람만이 이것을 안다. 만일 빛 가운데서 심판을 받지 않았다면 이것을 배우지 못한다. 하나님의 큰 빛이 당신을 비출 때 비로소 당신의 혼을 보게 된다. 빛의 심판은 당신의 속사람과 겉사람을 분리시킨다. 속사람과 겉사람이 분리될 때가 바로 당신의 영과 혼이 분리될 때이다.

 

주님이 우리 몸에서 하시는 일은 바로 비할 데 없는 큰 빛으로 우리를 비추시는 것이다. 우리가 말씀을 들을 때 혹은 기도할 때 혹은 다른 형제 자매와 함께 교통할 때 혹은 길을 걷고 있을 때, 큰 빛이 임함으로 우리는 우리로부터 비롯된 것이 얼마나 되는지를 보게 될 것이다. 이 큰 빛 아래 놓여질 때 비로소 우리 일생에 주님에게서 비롯된 것이 얼마나 적은지를 알게 된다. 말도 우리 스스로 했고 활동도 스스로 했으며 사역도 우리 스스로 했다. 우리 스스로 분주하였고 열심도 우리 자신이 낸 것이다. 설교한 것도 우리 자신이고 형제 자매를 도왔던 것도, 복음 전했던 것도 우리 자신이었다.

 

빛이 당신을 비출 때 비로소 당신이 얼마나 자신으로 가득한 사람이고, 당신의 활동 영역이 얼마나 넓으며, 당신의 성분이 얼마나 많았는지를 알게 된다. 전에 속에 감취었던 자아가 이제는 드러났다. 전에 느끼지 못했던 자아를 이제는 감지하게 되었다. 이제 당신은 당신 자신이 포함한 것이 이렇게 넓고 당신 스스로 행한 것이 이렇게 많다는 것에 대해 분명해진다. 전에 주의 이름으로 행했다고 생각했던 그것들이 이제는 뼈 속 살 속에서 당신 자신으로부터 비롯된 것임을 알게 되었다.

 

이것을 볼 때 당신은 겉사람을 정죄하게 된다. 사람은 오직 빛 가운데서 본 것만을 심판할 수 있다. 빛 가운데서 한 번 보았다면 당신은 다시 같은 원칙의 일과 말과 동기가 나타날 때 전에 처리받은 것이 이것임을 알고서 즉시 그것들을 거절하게 된다. 만일 빛 가운데서 심판을 거친 것이라면, 다음에는 거기서 나온 것이 조금이라도 싹이 트고 줄기가 나올 때에 당신은 즉시 그것을 심판하게 된다.

 

이 비췸이 있은 후에 비로소 당신은 영과 혼을 분리할 수 있다. 이 비췸 아래 있기 전에 당신의 모든 것은 교리에 지나지 않았다. 이것은 마치 죄인이 웃으면서 자신을 죄인이라고 한 것과 같다. 만일 빛이 없다면 당신의 다룸도 무익하다. 오직 빛 가운데서 받은 다름만이 유용하다. 당신이 이렇게 주님 앞에 살 때 당신의 영이 해방되고 깨끗케 될 수 있으며 당신을 쓰시는 데 있어서 주님에게 문제가 없게 된다.

 

영과 혼의 분리는 비췸에서 나온 것이다. 비췸이란 무엇인가? 하나님이 우리를 비추사 비췸이 무엇인지를 보여 주시기 바란다. 비췸은 하나님이 보신 것을 우리에게 보여 주는 것이다. 하나님이 보신 것은 무엇인가? 이는 곧 우리가 보지 못한 것이다. 우리가 보지 못한 것은 무엇인가? 이는 곧 하나님에게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하나 실지로는 하나님에게서 나오지 않은 것, 즉 우리들에게서 비롯된 일들이다.

 

비췸이란 우리의 생활에서 우리가 하나님에게 속했다고 생각했으나 사실은 우리 자신에게 속했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 비췸이란 우리가 본래 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을 이제는 할 수 없음을 보여 주고, 본래 영적이라고 생각했던 것을 이제는 그것이 혼에 속한 것임을 보여 주는 것이다. 본래 하나님에게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했던 것이 이제 보니 다 자아에서 비롯되었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 그 때 우리는, 『주여, 이제서야 제 자신을 알았습니다. 저는 눈이 먼 사람이었습니다. 이십 년, 삼십 년 동안 이것을 몰랐습니다. 당신이 보신 것을 저는 보지 못했습니다.』라고 말할 것이다.

 

바로 그 본 것이 당신의 어떤 것을 제거한다. 봄이 곧 처리됨이다. 보는 것과 처리받는 것을 별개의 일로 생각하지 말라. 하나님의 말씀은 운동력이 있어서 빛이 당신에게 비췰 때 당신의 겉사람은 즉시 제해진다. 당신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서 앞으로 점차적으로 처리하는 것이 아니다. 또한 하나님의 빛이 당신을 먼저 비추고 그런 다음 당신이 그 본 것을 제거하는 것도 아니다. 보는 것과 제거하는 것은 별개의 두 단계가 아니다. 비췸은 곧 제함이다. 비췸과 제거함은 동시에 이루어진다.

 

빛이 비췰 때 육체는 즉시 죽는다. 사람의 육체가 빛 아래 놓여질 때 육은 더이상 살 수 없게 된다. 이 빛을 만난 사람은 고의로 겸손하려고 할 필요 없이 완전히 엎드러진다. 이 빛 아래 있는 사람의 육체는 다 메마르게 된다. 형제 자매들이여, 이것이 바로 운동력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하나님의 말씀은 운동력이 있다. 하나님은 먼저 말씀하시고 그 다음 다시 운동력을 만들어 내시는 것이 아니다. 당신에게 있는 말씀이 곧 운동력인 것이다.

 

주님께서 우리 눈을 열어 주사 성령의 통제와 성령의 계시의 두 방면을 볼 수 있게 하시기를! 이 두 방면이 합해질 때 우리의 겉사람이 파쇄된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은혜를 주사 우리로 우리 자신을 하나님의 빛 아래 두게 하시고 또한 이 빛이 한 번은 우리에게 임함으로 엎드려 이렇게 주님께 말할 수 있기 바란다. 『주여, 저는 어리석고 눈이 멀었습니다. 내 자신의 것을 당신의 것이라고 여길 정도로 어리석고 눈이 멀었습니다. 주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워치만 니
[자아의 파쇄와 영의 해방, "분리와 계시", 한국복음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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