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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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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우리가 주님과 함께 살고 주님과 함께 걷고 주님과 함께 일하는 부류의 사람들이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 그러한 부류는 존재하지 않는다. 어떤 이들은 그들이 단체적인 생활을 살 수 있는 부류의 성도들이라고 주장할 수 있으나, 사실상 실제적으로는 그렇지 않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사람들에게 라벨을 붙이는가? 이렇게 라벨을 붙이는 것은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고, 약한 자들과 우리보다 부족한 자들을 위한 영이 우리에게 없음을 말해준다. 이것은 또한 우리가 그들을 원하지 않음을 말해준다. 사람들은 내가 사도라고 내게 자주 말했지만 나는 내가 사도라고 주장한 적이 한 번도 없다. 나는 내게 목자가 될 자격조차 있다고 여기지 않는다. 나는 다른 성도들과 똑같다. 일단 우리가 누구를 정죄하면, 그를 돌볼 수 있는 위치를 잃어버리게 된다. 정죄함은 다른 이들에 대한 우리의 돌봄을 불일 듯 하게 하지 않는다. 인류 가운데 그 누가 사랑스러운가? 하나님의 눈에는 모든 사람이 그들 자신 안에서는 사랑스럽지 않지만 하나님은 여전히 그들을 사랑하신다. 즉 그분은 세상을 사랑하신다. 나는 여러분과 이러한 교통을 갖는 것을 좋아하지 않지만 여러분을 목양하기 위해서는 이렇게 여러분을 위해 말해야만 한다...
우리는 이러한 사랑을 가지고 교회가 그들을 정죄한다고 생각하고 있는 물러간 모든 형제들에게 교회는 아무도 정죄하지 않는다고 말해주러 갈 필요가 있다. 오히려, 교회는 물러간 모든 이들이 돌아오는 것을 보고 싶어한다. 그들 모두가 돌아온다면 나는 주님께 감사의 눈물을 흘릴 것이다. 주님은 나를 대신하여 내가 아무도 정죄하지 않는다는 것을 증언하실 수 있다. 우리는 누구도 정죄할 자격이 없다. 주님의 긍휼이 없다면 우리는 물러간 자들과 같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들을 사랑해야 한다. 지혜로운 왕 솔로몬이 『사랑은 모든 허물을 가리우느니라』(잠언 10:12)고 말했듯이, 그 모든 것은 사랑에 달려 있다. 우리는 사람들을 사랑한다. 우리는 반대자들을 사랑하고 최고 반역자들을 사랑한다. 진심이다. 우리는 그들을 사랑하고 미워하지 않는다. 내가 누구인가? 나는 정죄하거나 미워할 자격이 없다. 나는 완전한가? 이사야 선지자도 그가 주님을 뵈었을 때 말하기를,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한다』(이사야 6:5). 오늘날 누가 깨끗한가? 우리가 만일 사람들을 비판하고 그들에 대해 안좋은 말을 한다면 우리는 깨끗하지 않다.
[사랑의 말씀, "주님의 마음을 따라 사람들을 목양함", 한국복음서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