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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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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은 처음에 기독교인이 된 것을 말할 때 '예수님을 믿었다'
거나 '교회 나가기 시작했다'라고 하는데, 지방 교회측 분들은
'생명을 영접했다' 라고 말하기도 하나요?
생명을 영접했다는 말은 저희도 자주 사용하는 표현은 아닙니다.
보통은 '구원받았다' 또는 '거듭났다' 라는 말을 쓰지요.
어떤 경우는 '교회생활을 시작했다' 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생명이신 주 예수님을 영접한 것이 믿음 생활의 시작임을
잘 알고 있지요.
-왜 요 3장 16절에도 예수님 믿으면 영생을 얻는다고 하잖아요.
여기서 '영생'은 멸망의 반대말이고, 죽지 않고 천국가서 예수님과
함께 영원히 사는 것을 말하는 것 아닌가요?
'영생'(eternal life)을 죽지 않고 오래사는 것을 가리킨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더군요. 그런데 어떤 분은 그런 개념이라면 심지어 지옥간
사람도 거기서 죽지 않고 영원히 산다고 하더군요. 물론 고통이지요.
예수 믿으면 물론 죽지 않고 영원히 삽니다. 그러나 위 문맥에서
<영생>이라고 할 때 그 의미는 영원한 생명이신 분, 즉 주 예수님
자신을 새로운 생명으로 우리 안에 영접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면 승천하신 후 하나님 보좌 우편에 계신 예수님이 이 땅에
사는 믿는 우리 안에 실제로 들어 오신다는 것인가요?
예. 이해가 쉽지는 않습니다만 성경은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로마서 8장 10절은 (생명이신)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계신다
고 하고, 또한 34절은 그분이 하나님 우편에서 우리를 위해 중보기도
하신다고 말합니다. 둘 다 사실이고 성경의 가르침입니다.
-하지만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 계신다는 말은 보혜사 성령님이
그리스도를 '대신해서' 우리 안에 계시는 것을 말하는 것 아닌가요?
목사님들이 그런 식으로 설교를 하는 것으로 압니다만.....
아무튼, 주 예수님이 직접 우리 안에 계신다는 말은 조금은 생소하게
다가옵니다.
충분히 이해합니다. 저도 예전에는 그랬지요. 성령님이 예수님을
'대신해서' 우리 안에 계신다는 교리는 주로 장로교단 쪽 분들이
하시는 주장인데, 그 근거로 요일 3:24를 제시하더군요.
사실 이 부분에 관심이 많아서 조금 연구를 해 보았습니다만,
결론부터 말한다면 그분들이 성경 본문을 오해한 것이었습니다.
아래 출처에 가셔서 정리된 글을 읽어보시면 도움이 되실 것입니다.
(http://blog.chch.kr/7777/32684.html )
무엇보다도 성경 본문 자체가 그리스도가 우리의 생명이시고
그 생명이신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 살고 계심을 여러 곳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골3:4는 '우리의 생명이신 그리스도'라고 했고, 고후13:5는
'그리스도가 너희 안에 계신 것을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다면
너희가 버리운 자'라고 했고, 골1:27은 ' 이 비밀은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시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요일 5:11-12도 '하나님의
아들이 있는 자는 생명이 있다'라고 말합니다. 물론 주 예수님 자신이
스스로를 생명이다 라고 소개한 곳도 있지요(요11:25, 14:6).
-성경에 그런 구절이 있는 것은 알았지만 이렇게 한 곳에 모아서
이야기를 해 주시니까 또 다른 느낌이 있군요. 그런데 주 예수님이
우리 안에 들어오신다면 어디로 오신다는 말씀인지요?
평범하면서도 예리한 질문이십니다. 사실 개혁신학을 하신 분들은
주 예수님이 우리 안에 계신다는 말을 문자 그대로 이해하는 것을
조금은 주저하는 편입니다.
'유한은 무한을 담을 수 없다'(Finitum non sapax infinit)는 원칙을
고수하기 때문인데, 사실 이 문제는 주 예수님이 육신으로 오셨을 때
이미 깨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분은 유한한 참 사람으로서 무한한
참 하나님을 그 안에 '담으신' 분이라고 할수 있으니까요(요1:14).
그것은 그렇고, 대개는 예수님이 우리 마음 안에 계신다 라고 하지요.
그러나 정확히 말하면 생명이신 주 예수님은 우리의 거듭난 영 안에
계십니다(요3:6, 고전6:17). 그후 우리의 마음으로까지 점차적으로
그분의 거처를 확대해 간다고 성경은 말합니다(엡3:17).
-예수님이 지금 우리 안에 계신다면 나중에 공중 재림하신다는
말씀은 안 믿으시는 것인가요?
그렇지 않습니다. 주님은 장차 재림하실 것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것은 다 아멘입니다. 현재 우리 안에 생명으로 계신 것과 나중에 재림하시는 것을 그리피스 토마스(W.H. Griffith Thomas)라는 저명한 신학자는 자신의 <성령론>에서 미래에 있을 재림 즉 '파루시아'와 구분하여 오늘날 주님의 내주하심을 '현재의 파루시아'로 표현했더군요
-'생명'을 안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런 식으로 대화를 하다보니
앞으로 시간을 내어 제대로 한번 이 주제에 대해서 연구해 보고 싶은
생각이 드네요.
끝으로 지방 교회 측은 '하나님이 우리를 직접 낳으신 것이 아니고
양자로 삼아 주신 것이다' 라는 말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지요?
그런 오해가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창조주 하나님과 피조물인
사람의 간격을 너무 강조하고, 또 '양자의 영'(롬8:15)에서 보듯이 개역
성경이 번역시 '양자'라는 말을 사용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러나 양자로 번역된 '휘오데시아'(5206)은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양자개념이 아닙니다. 우리는 직접 낳지 않고 법적으로 입양한 자녀를
양자라고 하지만, 원문의 의미는 법적인 상속을 받을 만큼 장성한 자녀를
가리킵니다(엡1:5, 갈4:5 참조). '장성한' 이란 말을 잘 새겨야 합니다.
히2:11은 '거룩하게 하시는 자와 거룩하게 함을 입은 자들이 다 하나에서
난지라'라고 함으로 거룩케 하시는 주 예수님과 거룩케 함을 받고 있는
그분의 많은 형제들(롬8:29)이 다 한 근원인 아버지에게서 난 것을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사실 이 부분은 매우 중요한데, 오늘은 너무 많은 것들을 다룬 것같아서
이 주제는 나중에 기회가 되면 좀 더 자세히 다루고 싶네요.
-긴 시간 제 질문에 대해 성의있게 답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런 대화가 서로 간에 알게 모르게 쌓였던 오해를 해소하는 기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우리는 다 동일한 하나님을 믿고 있으니까요.
맞습니다. 저도 이런 진지한 대화가 매우 유익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시간이 되는 대로 또 다른 주제를 가지고 계속 교제를 이어 갔으면 합니다.
안녕히 가십시오.